사후세계와 진화론(1)

영원한 삶(永生)의 비밀

이제 다른 형태의 영생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바로 사후세계의 존재 가능성이다. 사실 이 주제는 몇 권의 책으로도 다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그 내용이 방대해질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학문적으로 사후세계의 가능성을 분명히 부정하는 이론인 진화론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려 한다.


잘 알다시피 지구상 생명체의 기원에 관한 이론으로는 대표적으로 창조론과 진화론이 있다(여기서는 유신론적 진화론은 다루지 않겠다). 전자에 따르면 사후세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반면 후자에 따르면 사후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생명체의 기원과 사후세계의 유무에 대해 두 이론은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펼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자면, 한 이론이 틀렸다면 다른 이론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나는 두 이론 가운데 하나를 지지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비판하고자 한다. 내가 지지하는 이론은 창조론이며, 비판하려는 이론은 진화론이다. 지금부터 진화론이 왜 잘못된 이론인지를 설명해 보겠다.


그에 앞서 먼저 독자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이전 여러 장에서 나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을 설명해 왔다. 그런 내가 갑자기 진화론을 비판한다고 하니,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사실 나는 진화론보다는 창조론을 더 신뢰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와 융은 자신의 심리학 이론을 설명할 때 분명 진화론을 활용했기 때문에, 나 또한 부득이하게 진화론이 옳다는 가정 아래 글을 전개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제시할 몇 가지 근거를 살펴보면, 진화론은 확립된 진리가 아니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이론으로서의 가치도 없다고 본다).


진화론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한 가지 중요한 논리적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다음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증거: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


증거는 크게 직접 증거와 간접 증거로 나눌 수 있다. 직접 증거란 어떤 사실이 있었음을 다른 추론 과정 없이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증거를 말한다. 반면 간접 증거는 그 자체만으로는 사실을 바로 보여 주지는 않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하여 사실을 추론하게 하는 증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집 문 앞에 놓인 택배가 도난당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CCTV 영상에 도둑이 택배를 가져가는 장면이 찍혀 있다면, 이는 범행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직접 증거에 해당한다. 반면에 범행 장면을 찍은 영상이나 이를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현장에 남아 있는 발자국이 특정인의 신발과 일치하고 그 사람이 사건 당시 그곳에 있었음이 밝혀진다면, 이는 간접 증거에 해당한다. 이러한 증거들은 각각만으로는 범행 사실을 바로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증거를 함께 살펴보면 도난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직접 증거가 없더라도, 여러 다른 간접 증거들이 충분히 모이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져 보겠다. 여러분은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해주기 바란다. 아마도 창조론보다 진화론을 믿는 비율이 조금 더 높을 것이다. 실제로 2012년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진화론을 믿는 비율은 45%, 창조론을 믿는 비율은 32%로 나타났다.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년 이상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배워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여러분은 진화론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유는 그렇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여러분은 진화론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루하루 살기도 바빠죽겠는데, 그런 고리타분한 문제로 씨름할 시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장에서 진화론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진화론이라는 사상이 우리의 정신(의식과 무의식 모두)에 끼치는 해악(害惡)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비록 진화론의 창시자였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한 말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진화론을 통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대단히 비인간적인 생각을 집단무의식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살아 있을 때 나만의 쾌락을 위해 나와 다른 타인을 물리적·정신적으로 짓밟는 행동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범죄와 전쟁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물론 여기서 말하는 창조론이란, 소위 사이비 종교가 아닌 역사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기존의 종교들을 말한다)? 사람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보상을 희망하며, 당연히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할 것이다. 그 결과 범죄나 전쟁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번 장은 우리 사회에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기 위한 것이다.


사실 주변에는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조차 진화론이 맞을 수도 있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진화론(進化論)은 그 한자 의미 그대로 ‘사실’이 아니라 단순한 ‘이론(理論)’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이론으로서의 엄밀성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지금부터 나는 그 이유를 화석학적인 증거 두 가지와 양자론적인 관점으로 설명하겠다.


먼저 진화론의 직접 증거로 제시되는 중간 화석에 대해 살펴보겠다. 진화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은 중간 화석을 진화론의 직접적인 증거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굳이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인 관점에서만 보아도 중간 화석은 결코 진화론의 직접 증거가 될 수 없다. 진화론자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중간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중에게 진화론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중간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A라는 생명체가 변화하여 B라는 생명체로 진화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라는 생명체와 B라는 생명체가 진화라는 현상으로 서로 묶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완전한 개별적인 생명체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그것은 과학적 사고가 아니라 단순한 말꼬리 붙잡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과학적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바로 실험적인 증거다. 과학에서 어떤 가설이 하나의 이론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결과를 제시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 결과란 바로, A라는 생명체에서 B라는 생명체로 변화하는 과정이 눈으로 직접 관찰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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