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공기가 기억을 건드리는 순간
비행기 문이 열리고
나는 가장 먼저 공기를 들이마신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묘하게 정돈된 온도.
비가 와서
어딘가 부드럽다.
공항 특유의 소독약 냄새 사이로
희미하게 섞인 커피 향.
갓 닦은 바닥의 은은한 냄새.
아, 일본이구나.
이전에도 맡아본 공기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 먼저 들어오는 게 아니라
공기가 먼저 기억을 건드린다.
예전의 나는
이 공기를 지나쳐
목적지로 향했을 것이다.
지도에 찍힌 곳,
사진으로 남길 장면,
빨리 봐야 할 목록들.
이번의 나는
잠시 멈춘다.
공기는 늘 비슷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는
더 이상 같지 않다.
나는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신다.
추억이 아니라
지금의 공기.
이번 일본 여행은
젊은 날의 추억을 확인하러 온 시간이 아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도시에 세워 두는 시간이다.
80일의 여정 속에서
덤처럼 얻은 시간이다.
도쿄는 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분명히 변한 것은
나의 시선이다.
여행은
멀리 와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바꾸는 순간 시작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이제,
여행을 공기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