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브랜드, 다른 시간

같은 브랜드가 도시마다 다른 시간을 만드는 방식

by Mansongyee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나는 어느 도시에서든 비슷한 간판을 먼저 찾게 된다.

낯선 거리에서도 그 간판은 이상하게 나를 안심시킨다. 맛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보낼 시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스프레소(Nespresso) 한 캡슐로 내려지는 커피가 하루를 깨우는 시간이 되었고,

집을 나서면 나는 다시 어느 도시에서든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수많은 커피숍이 있지만 그 맛을 하나하나 검증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가장 익숙한 선택이 스타벅스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선택이 완전히 만족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캐나다에서 느끼게 되었다.


코비드 이후 그 익숙한 풍경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의자는 줄어들고, 머무는 자리는 사라지고, 공간은 점점 지나가는 사람을 위한 형태로 바뀌고 있었다.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커피를 건네는 곳.


앉아 있는 시간은 짧아지고, 대화의 길이도 함께 줄어들었다. 커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안에서 머무를 이유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에게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지 한 잔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정신이 잠시 머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 변화가 낯설었고, 조금은 아쉬웠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커피의 맛에서 시작해 그 안에 머무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지 한 잔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그런 변화를 지나 도쿄에서 나는 전혀 다른 스타벅스를 만났다.


강을 따라 흐르는 자리,
책 사이에 스며든 공간,
공원 안에 놓인 조용한 테이블.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고 커피는 쉽게 식지 않았다.

그곳에서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머물게 하는 공간이었다.

한 잔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사용했다.


그제야 궁금해졌다.

왜 같은 스타벅스인데 어떤 도시에서는 커피가 속도가 되고, 어떤 도시에서는 시간이 되는 걸까.


그러자 캐나다의 스타벅스에서 변화를 하고 있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머무를 자리를 줄이며 한때 효율을 선택했던 매장들이 다시 편한 의자를 놓기 시작하고,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하는 공간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커피에서 다시 머무는 커피로.


어쩌면 캐나다 스타벅스는 잊고 있던 본연의 온기를 다시 기억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커피의 맛을 기억하기보다 그 안에서 보내던 시간을 기억한다.

그래서 오늘도 커피를 찾기보다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먼저 찾는다.


커피는 여전히 한 잔이지만 그 한 잔이 담고 있는 것은 도시마다 다른 시간의 밀도다.



도시는 머무는 방식으로 기억된다.


월요일 연재
이전 10화폭동이 아니라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