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을 돌아 나오는 법
오늘,
“할아버지 생신 선물”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밴쿠버에서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작은 등이 골대 뒤로 사라진다. 나는 순간 놓쳤나,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아이는 반대편 포스트로 번개처럼 튀어나오더니 골키퍼의 발치, 가장 좁은 틈으로 퍽을 밀어 넣었다.
골.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넣었니?”
여덟 살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하다.
“할머니, 그건 랩 어라운드(Wrap-around)예요!”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영상을 돌려 보았다. 그리고 아들에게 물었다.
랩 어라운드는 공격수가 퍽을 몰고 골대 뒤로 돌아 반대편 빈 공간을 노려 넣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묘하게 멈췄다. 골은 정면에서만 넣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의 삶은 대개 정면을 향해 서 있다. 곧장 가야 하고, 빨리 보여야 하고, 앞에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막히면 더 밀어붙인다. 문이 닫혀 있으면 더 크게 두드린다.
그러나 랩 어라운드는 정면을 버린다. 골대 뒤, 관중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로 잠시 사라진다.
그 어두운 사각지대를 전력으로 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속도를 유지한다. 상대의 시야에서 벗어나 타이밍을 만든다. 그리고 가장 얇은 틈으로 조용히 돌아 나온다.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 준비하고, 반복하고, 각도를 잃고 다시 찾는 시간. 그 시간은 환호를 받지 못한다. 골대 뒤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구간이 결과를 만든다.
랩 어라운드는 도망이 아니다. 우회다. 방향을 잃는 것이 아니라 각도를 바꾸는 일이다. 정면이 막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길은 잠시 시야에서만 사라질 뿐이다.
손자는 골을 넣고도 과하게 기뻐하지 않았다. 다음 라인을 준비하듯 담담히 스케이트를 밀었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내 삶의 장면들을 보았다. 억지로 밀어붙이던 날들.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자존심부터 세웠던 시간들.
혹시 조금 돌아갔더라면 더 부드럽게 열렸을 순간이 있었을까.
랩 어라운드.
보이지 않는 곳을 통과하는 용기. 사라졌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다시 나타나는 기술.
골은 힘으로만 열리지 않는다. 리듬과 인내, 그리고 보이지 않는 구간을 견딘 시간 끝에서 조용히 열린다.
빙판 위를 돌아 나오던 작은 등을 보며 나는 배운다. 인생에도 랩 어라운드가 있다는 것을.
정면이 막혀도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 돌아 나오면 된다. 조금 더 버티면 된다. 조금만 더 정확한 타이밍을 기다리면 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마침내 자기만의 각도로 세상을 통과한다.
직선이 막힐 때, 길은 옆으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