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본 Handsworth Songs
유리 곡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전시관 안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도쿄 국립신미술관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이곳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는
《YBA & BEYOND》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Young British Artists 세대의 작업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그 시대 영국 사회가 품고 있던 긴장과 질문이 미술의 언어로 펼쳐지고 있었다.
여러 작품 사이에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영상이 있었다.
〈Handsworth Songs〉
영상 속에서는 타버린 자동차와 깨진 유리창이 천천히 지나간다.
하지만 화면은 분노의 순간보다 그 뒤에 남은 도시의 침묵을 더 오래 보여준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서 있고 카메라는 그 얼굴들을 조용히 지나간다.
그때 나는 이 영화가 폭동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폭동이 지나간 뒤의 공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대 런던에서 활동한 흑인 예술가 집단 Black Audio Film Collective가 만든 에세이형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1985년 영국 버밍엄의 Handsworth에서 일어난 폭동을 배경으로 한다.
경찰의 추격을 받던 흑인 청년의 죽음 이후 흑인 공동체와 경찰의 충돌이 도시 전체로 번져 갔다.
하지만 이 영화는 폭동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뉴스 영상과 기록 사진, 그리고 시처럼 흘러가는 내레이션이 겹치며 그 시대 영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긴장을 드러낸다.
폭동은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폭동은 오래 쌓인 공기의 결과다.
1980년대 중반의 영국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나라를 지탱하던 철강, 자동차, 조선 같은 제조업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도시의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 시기 영국은 Margaret Thatcher 정부 아래에서 강력한 시장 개혁과 산업 구조 조정을 겪고 있었다.
경제의 방향은 바뀌고 있었지만 그 충격은 먼저 도시의 노동자들과 이민자 공동체에 떨어졌다.
Handsworth는 카리브해와 남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미 영국에서 태어난 도시의 청년들이었지만 높은 실업률과 차별, 그리고 경찰과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게 도시의 공기 속에는 보이지 않는 마찰이 천천히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공기는 폭동이라는 형태로 표면 위로 올라왔다.
폭동은 지나가지만 그 공기는 오래 도시 위에 남는다. 폭동은 사건이 아니라 오래 쌓인 긴장이 어느 날 도시의 표면으로 올라온 순간이었다.
그 시대의 공기를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노래가 있다.
1981년 발표된 Ghost Town. 영국 밴드 The Specials의 곡이다.
키보디스트 Jerry Dammers가 만들고 보컬 Terry Hall의 건조한 목소리가 노래를 이끈다.
“모든 클럽이 문을 닫고 있다.”
“정부는 젊은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레게와 스카가 섞인 기묘하게 스산한 멜로디 위로 쇠락해 가는 산업 도시의 풍경이 흐른다.
놀랍게도 이 노래가 영국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실제로 영국 여러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어떤 시대의 긴장은 역사책보다 먼저 음악 속에서 울린다.
나는 그 영상을 도쿄의 미술관에서 보고 있었다.
영국의 폭동, 영국의 이민자 공동체, 영국의 산업 도시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민자인 내가 타국의 미술관에서 또 다른 이민자의 이야기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이 영화는 영국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폭동은 어떤 도시에서 갑자기 터지는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말해지지 못한 질문이 어느 날 표면으로 올라오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때때로 그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용히 기록해 둔다.
어쩌면 예술은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오래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폭동이 아니라
그 도시가 오래 품고 있던 질문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