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타시(Potash)

땅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도시의 번영

by Mansongyee


동토 속의 오아시스 ④


이 글은〈사스카툰의 크기〉에서 시작된 시선이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온 기록이다.



판 위에 새겨진 예술의 흔적이 삶을 기록한다면, 이 도시의 땅속에는 또 다른 흔적이 존재한다.

사람의 손길로 파 내려간 보이지 않는 깊이, 포타시(Potash)다.


도시는 눈에 보이는 건물로만 서 있지 않다. 어떤 도시는 땅 위보다 땅속에서 먼저 완성된다.

오랜 시간 빛을 보지 않은 광물과 보이지 않는 통로들이 조용히 도시의 균형을 떠받친다.


나는 이제 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또 다른 시간의 층을 따라 조금 더 깊이 내려가 보려 한다.





사스카추완 포타쉬 홍보 이미지. 지하의 자원과 지상의 식탁을 한 화면에 겹쳐, 광물과 식량이 연결된 캐나다의 산업 구조를 상징한다.



보이지 않는 깊이, 포타시(Potash).

땅에서 캐는 광물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칼륨, 포타슘(Potassium)이라고도 부른다.

이 칼륨은 식물의 잎을 세우고 사람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사스카툰의 땅속에서 시작된 것이 결국 우리의 식탁으로 이어진다. 이 땅 깊은 곳에서 조용히 인간의 삶을 지탱한다.


사람들은 캐나다를 자원이 풍부한 나라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그냥 아는 사실로만 여겨 왔다.

눈 덮인 평야와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 나는 이 도시를 그 풍경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도 비슷하다.


“그 동토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나요?”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이 도시의 겨울은 반년 가까이 이어진다. 강은 얼어붙고,

땅은 단단히 잠기며, 도시는 긴 적막 속으로 들어간다. 눈 위를 걷는 소리만 또렷하게 들리는 계절.


나는 그 시간을 이 도시가 견뎌야 하는 침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이 동토의 땅 아래, 약 1킬로미터 깊은 곳에서는 영상 20도를 넘나드는 온도가 유지된다는 사실. 같은 땅 위에서 영하 30도의 겨울과 정반대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깊은 곳에는 포타시가 있다.


비료의 핵심이 되는 광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계의 식탁과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포타시 매장지라고 한다. 눈으로 덮인 땅 위에서는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그 아래 깊은 곳에서는 세계를 지탱하는 시간이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캐나다가 자원이 풍부한 나라라는 말을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내 이웃은 이 도시에서 그토록 단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부라는 결과보다 그 삶을 가능하게 만든 시간의 구조가 궁금해졌다.


그동안 나는 영어의 한계 때문에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이 도시가 가진 시간의 결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조용하고 작은 도시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포타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이 도시의 또 다른 층을 보게 되었다.


이 땅 아래에는 세계의 식탁을 지탱하는 시간이 잠들어 있고, 그 깊은 시간 위에서 사람들의 삶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포타시는 땅 아래에서 자라지 않는다. 사람이 파 내려가야 비로소 드러난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조용히 생각하게 되었다. 삶의 깊이도 어쩌면 그와 비슷하다.


나는 내 이웃을 이해하려다가 이 도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사람과 도시를 겉으로 보이는 장면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시간으로 읽는 법.


십 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문장을 겨우 읽기 시작한 것 같다.

뮤지엄에서 만났던 예술처럼, 대학 동물병원에서 보았던 마지막 순간을 배웅하던 태도처럼, 이 도시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단단한 결이 있었다. 그리고 포타시는 그 결이 땅 아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생각한다. 이 도시는 위로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래로도 깊은 도시라는 것을. 동토는 삶을 막는 환경이 아니라, 이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조건일지도 모른다. 풍경만으로는 도시를 이해할 수 없다. 도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이제 나는 강과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그 아래에 잠든 시간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강이 흐르는 방향과 하늘이 열리는 방향을 따라, 이 도시의 깊이와 높이를 함께 읽어 보기 위해서.




동토 속에도

오아시스는 있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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