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아의 마지막을 지켜준 태도들에 대하여
이 글은〈사스카툰의 크기〉에서 시작된 시선이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온 기록이다.
첫 번째 오아시스에서 나는 이 도시가
예술을 품는 방식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또 다른 자리에서
이 도시가 생명을 바라보는 풍경 앞에 서 있다.
작아 보이던 도시 안에는
생각보다 오래 머무르게 하는 조용한
오아시스들이 여전히 곳곳에 숨어 있다.
나는 그 두 번째 숨 고르는 자리를 천천히
들여다보려 한다.
19년, 캐나다에서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말티즈 짱아는 3년 전 하늘나라로 갔다.
마지막 1년은 좋았다 나빴다를 오갔다.
노심초사.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까지 갔었다.
우리는 준비를 했다.
만약을 대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깨끗한 담요와 필요한 절차까지.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마지막 날,
퇴근 후 돌아와 짱아를 반갑게 맞았다.
남편이 옷을 벗으러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짱아는 잽싸게 따라 들어가
일을 저지르고는 복도 한가운데에 길게 누웠다.
남편은 평소 자기 방만은 내어줄 수 없다고
꼭 닫고 다녔다.
이상하게도 짱아는 그 방을 늘 탐했다.
그날,
마침내 점령했다.
짱아는 끝내 해냈다.
나는 웃으며 “잘했다, 잘했어.”
쓰다듬어 주는데
손끝에 느껴지는 심장 박동이 유난히 느렸다.
“쉬어.”
복도에 그대로 누워 있는 걸 보고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저녁을 먹고
괜찮은지 마음이 쓰여 다시 올라갔을 때
짱아는
숨을 아주 천천히,
겨우 눈을 조금 뜬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다른 날과는 달랐다.
나는 얼른 안아 올려 쓰다듬으며 말했다.
“짱아야, 잘 가거라.
그래도 마지막에
아빠 방에 하고 싶은 건 다 했네.
엄마 아빠 저녁 먹을 시간도 줬네.
끝까지 기특하다, 우리 짱아.
캐나다의 히스토리, 다 안고 가거라.”
그리고
5분쯤 뒤,
스르르 갔다.
나는 계속 안고 있었고
남편은 갈 곳을 찾느라 분주했다.
일요일 밤이었다.
알아둔 곳들은 이미 문을 닫았다.
우리는
서스캐처원 대학교 수의과 대학병원
(Western College of Veterinary Medicine)
으로 향했다.
깨끗한 담요에 짱아를 싸서
차를 몰았다.
가는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민 와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아이와 함께 버텨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병원에 도착했고
의사는 진찰 후
이미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을 조용히 전했다.
절차를 맡기고 나오는데
접수처 직원, 가운을 입은 학생, 담당 의사까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I'm so sorry.”라고 말했다.
우리가 문을 나설 때까지
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이 조그만 생명체의 마지막을
이렇듯 온기로 대하는 이곳의 태도는
인연의 끝맺음에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곳 서스캐처원 대학교 수의과 연구소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임상 연구 기관이다.
말로 아프다 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고통을
눈빛과 떨림으로 읽어내는 학문.
작고 고요한 도시 안에 있지만
세계적인 이유가 분명한 곳이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 한 생명들의
마지막 앞에서
그 존엄을
사람의 태도로 보여준 이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한다.
생명을 마지막까지 돌보는 자리를 지나 나오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떠나는 생명을 정성껏 배웅하는 방식이 있다면,
남겨진 생명을 기억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라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 도시가 간직하고 있는 또 다른 자리로 나를 이끌었다.
수백 장의 판화로
삶의 얼굴을 끝까지 기록하려 했던 한 예술가가 머무는 곳.
나는 그 조용한 기록의 공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