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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Nov 03. 2024

가을폭풍의 눈을 걷어내며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가르치는 것

창밖에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미나 샘이 지금은 노르웨이의 가을폭풍(Høststorm) 기간이라고 했다. 밤이 점점 길어지면서 오후 4시쯤이면 해가 지고, 어두워진 뒤에는 작정한 듯이 거센 바람이 불면서 비나 눈이 내린다. 거의 우박에 가깝다. 새벽녘에 얼음이 창을 때리는 소리가 어찌나 대단한지 일찍부터 잠이 깬 적도 있었다. 노르웨이는 눈이 많이 와서 그런가, 눈과 관련된 단어도 이것저것 많다. 눈 표면이 녹았다 다시 얼어붙은 딱딱한 눈, 바람이 많이 불어서 쌓인 눈, 눈 표면에 생긴 결정, 눈이 많이 쌓여서 다져진 눈 등등에 이름이 다 붙어있다. (당연하게도 그 이름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은 아침에 나가보니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벌써 겨울이 온 것인가! 빙판에 가까운 길 위로 뒤뚱뒤뚱 위험스럽게 아침모임에 갔다가, 안 되겠다 싶어 빗자루를 들고 한동안 눈을 쓸었다. 얼음을 깼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 같기도 하다. 오래간만에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올라왔다. 다들 신발에 장착하는 아이젠을 필수로 갖고 있을 만큼 눈이 온다는데, 나도 하나 장만해야 하나. 오늘 세탁기방에 내 순서가 오려나. 방에 있는 쓰레기 내다 버려야 되는데. 도서관에 책 반납하려면 다 읽어야 하는데... 아니, 그런데, 이렇게 눈이 쌓여 있구먼 누구 하나 쓸어내는 사람이 없네!




대안학교의 신입 교사로 일하던 때, 나의 사수 선생님은 큰 키와 어울리지 않게 선한 웃음이 얼굴 전체에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부담임으로 함께 하며 선생님이 아이들과 지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는데, 가끔은 답답할 정도로 착하다는 생각을 했다. 극성맞은 아이들이 거칠게 반응할 때도 화 한번 내지 않고 조용조용 존댓말을 하며 아이들을 달랬다.


툭하면 발끈하는 성정을 가진 나는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한탄하듯 묻곤 했다. 아이들이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게! 함부로 하지 않게! 정신 똑바로 차리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었다기보다는 '샘 너무 답답하십니다!'라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그런가요..."

하고 조용히 답하며 그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 나는 더 답답해지고 화가 났다. '교육적'으로 따지고 싶은 마음에 할 말이 많았지만, 혼자 곱씹다가 종국엔 스스로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일도 많았다.


제천의 겨울은 몹시 춥고 눈이 정말 많이 왔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이는 날이면 마을을 오가는 버스가 끊겼다. 풀이 자라난 부분으로 알 수 있었던 운동장의 경계도 사라졌다. 자는 동안 내린 눈에 다음날 아침이면 세상이 갑자기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렇게 눈이 쌓인 날 학교 가는 길, 누군가가 일찌감치 쓸어놓은 길 위로 걸으며 남이 들인 수고를 느꼈다. 새벽같이 일어나 눈을 쓸어낸 사람은 나의 사수 선생님이었다. 밤새 눈이 내린 다음 날이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길을 냈다. 사람들이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학교 이곳저곳 비질을 해놓았다. 옹기종기 여러 채의 건물이 늘어서 있는 아이들 기숙사 앞도 빼놓지 않았다. 본관까지 열 걸음이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살뜰하게 눈을 걷어내 주었다. 그저 넘어지지 않게 해 주었는데, 아이들은 그 길 위로 폴짝대며 뛰어다녔다.


어쩌다 일찍 출근하게 되면, 홀로 눈을 쓸고 있는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새하얗고 너른 들판에 긴 그림자와 함께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았다. 긴 빗자루가 좌우로 움직이는 것에 맞춰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는 많은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말 없는 가르침에 그 후엔 나도 덩달아 거들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지내는 동안 이내 달라졌다. 그렇게 험상궂게 대들다가도 갈수록 표정이 유해지고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깨달았다. 때로는 제풀에 꺾여 눈물로 반성하곤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좋아했고, 나도 긴 시간이 지나도록 선생님을 생각했다. 교사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의문이 들 때면 선생님의 비질을 떠올리곤 했다.


가르침을 멈춤으로써 그 이상을 가르치는 것.

선생님은 그것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방에 들어와 쉬는데, 카를라에게서 스냅챗이 왔다. 눈을 쓸고 있는 나를 어디선가 보고 찍어서 보낸 영상이었다. 하트가 붙어있는 영상에 괜히 민망했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얼음을 깨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할머니여서 '하하하! 진짜 할머니 같네!'하고 답장을 보냈다. 카를라는 모두가 고마워할 수 있게 전체 채팅방에 올렸어야 했다며 호들갑스럽게 아쉬워했다. 나도 모르게 훗 하고 웃음이 나왔다. 당장 나와서 다들 눈을 쓸어내라고 하고 싶었던 처음의 마음이 너무 옹졸하게 느껴져서 스스로가 웃기다는 생각도 들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카를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앞으로 눈은 점점 더 많이 올 예정이고 걷어내야 할 것들이 또 계속 생길 것이다. 카를라의 반응을 보니, 얘도 언젠가 당연스럽게 눈을 쓸어 길을 내는 걸 하게 될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배우는 존재들이므로, 이 말 없는 가르침 안에서 서로를 어른으로 성장시키고 있을 것이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뜬금없는 도전으로 나이 마흔세 살에 노르웨이 폴케호이스콜레에 학생으로 왔습니다. 그냥 기록하고 싶어서 일기 쓰듯이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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