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Jun 22. 2023

맘대로 살아도 된다. 다만...

남 해치지 말고, 자신을 해치지 말고.

 

“자유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 수학자 피타고라스




▪ 다 해도 괜찮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한 아이가 고민이 있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는 늘 자기와의 투쟁, 가족과의 투쟁이다. 뭘 하고 싶어 그러냐고 물었는데 선뜻 대답을 못한다. 먼저 물어놓고는 정작 내가 물어보면 연신 비밀이란다. 가족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도 문제지만, 스스로도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다. 머뭇대는 아이와 계단참에 앉아 함께 침묵했다. 한동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하고 싶으면 다 해도 된다고 해주었다.  

“다 괜찮아. 남 해치지 않고 너 자신을 해치는 거 아니면.”


가끔 아이들이 “해도 될까요?”, “가능할까요?”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일상에서는 사소하게 어떤 일의 허락을 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이다. 때로는 진로와 관련된 거창한 대화에서도 이런 질문을 한다. 자기 능력에 대한 의문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다. 어른들도 저마다 기준이 달라서 답이 다 다르다. 경제적 안정에 대해 답하기도 하고, 사회적 기여를 강조하기도 한다. 대단한 가치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그런 고민을 말할 때 ‘무엇이든 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준다. 이 답변을 들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 아이들 표정이 밝아진다.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에게 이 말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도 되는 말로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자유로운 선택범위 안에서 실제 실행에 옮기기 위한 기준은 무엇일까. 해도 되는 것의 범위를 무한정 정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범위를 정해서 전제조건을 붙인다. 바로 ‘남을 해치지 않고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쉽고 당연한 이 말을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수많은 존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는 일 자체가 다른 존재에 폐를 끼치는 일이 될 때가 많다. 한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내 마음대로 한 일이 나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 이것을 매 순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아마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삶의 기준을 세워가는 것은 교육의 목적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한 가장 기본은 자기 말과 행동을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바로 자기 스스로 통제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얻는 자유

대개 지금의 어른들은 정해진 것을 따르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할 때가 많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쭉 그렇게 자라온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녀들만큼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아이로 기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방임과 통제 사이의 균형은 늘 어렵다. 어린아이들을 자유로운 환경에서 기른답시고 무엇이든 용인해 주다가 막무가내의 행동이 습관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강한 통제 속에서 키우면 다를까.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힘이 약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아이들은 모처럼 자유가 주어지면 마냥 태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외부의 통제 없이는 스스로를 조율하는 힘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아이들 스스로 “우리에게는 통제가 필요하다.”, “강제로 못하게 해야 된다.”라는 말을 할 때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나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것을 믿지 않고 계속 잔소리로 강제하거나 억지로 칭찬하며 통제하려 들 뿐이다. 자신을 통제하는 힘은 아주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일상에서 길러져야 한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어른들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작은 일부터 바르게 판단하는 연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자율적인 판단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행동 기준에 대한 질문이다. 이때 제시되는 최소한의 기준이 바로 ‘남을 해치지 않고,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경계’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타인의 욕구와 권리 등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경계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때 인간은 함께 행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듣고 싶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친구와 씨름하는 것이 재미있지만, 그전에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즉 누구에게나 자유가 중요하지만 남의 권리를 침해할 자유는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말초적인 즐거움에 탐닉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살고 있으며 그 삶을 가꾸는 주체가 자신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모인 공동체는 평화롭다. 떼쓰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아이가 있는 가정이 평화로운 것이 단적인 예다. 군대처럼 규율에 맞춰 움직이는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꾹꾹 눌러 참으며 자신을 옭아매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가 조화를 이루도록 조율할 힘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은 강압적인 통제와 감시에 에너지가 덜 든다. 서로의 경계를 알고 조화롭게 지내므로 상호 간의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에 동시에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개인의 자기 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는 행복도가 당연히 올라간다.   



▪ 남을 해치지 않는다

핀란드는 2000년대 초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라는 슬픈 일을 겪었다. 범인을 잡아 벌을 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올 수 있었지만, 핀란드는 그 이후 타인에게 상처 주는 일을 막는 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핀란드는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만든다고 믿었다.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괴롭힘의 주동자가 되기 쉽다고 여기기 때문에 안전하고 서로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크리스티나 살미발리 교수는 괴롭힘 방지 프로그램 ‘키바’를 개발하였고 학교에서는 적극적으로 교육한다. 그 결과 핀란드 젊은이들의 폭력은 해가 갈수록 점점 감소했다.1)


자기표현과 자기 관리를 미래 핵심역량이라 보는 핀란드는 감정을 알고 바르게 표현하도록 가르친다. 즉 모든 감정은 허용되지만, 표현방법은 달리 해야 함을 가르친다. 감정은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분노가 치미는 것은 응당 그럴 수 있다고 이해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조절해야 할지는 학습의 영역이다. 또한 장소마다 규칙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에서 허용되는 것과 공공장소에서 허용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마찬가지다.2) 


이는 북유럽권 나라의 가정에서 공통적으로 교육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욕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등의 나쁜 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도록 가르친다. 나쁜 말을 절대 하지 말라는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은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하라는 것이다.3) 다양한 감정을 존중하고 지지하지만, 남을 해치는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은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 부모는 평소에 아이들이 말을 걸어오면, 귀 기울여 잘 들어준다. 하지만 혼자 너무 길게 이야기하는 것까지 받아주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하며, 내용을 잘 정리해서 상대방이 듣기 편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4)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유로운 환경이 규칙 없는 혼돈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함께하는 공간과 시간이 있음을 알고 그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선택이 어떠한 것이든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말과 행동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 나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

예전 시골 학교에서 운동장 구석에 개 두 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 점심시간에 남은 소시지나 고기반찬 같은 것들을 주면 아주 좋아했다. 개밥 챙겨주는 일은 가끔 아이들도 맡았다. 그런데 밥을 줄 때마다 그 개들의 반응이 참 달랐다. 한 마리는 얌전히 앉아서 밥그릇에 담기는 것을 보고 조용히 일어나 먹었다. 나머지 한 마리가 문제였는데, 일단 음식 냄새를 맡을 때부터 빨리 내놓으라는 듯이 엄청난 소리로 짖어댔다. 목줄을 끊을 것처럼 달려들면서 짖는 바람에 다들 두려워했다. 무서우니 제대로 밥을 담아줄 수 없었고, 멀찍이서 한두 개씩 던져주곤 했다. 결국 그 험상궂은 개는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늘 목줄에 매여 있었다.    


때로는 자기 행동이 자신을 해치기도 한다.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가 정작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기 위해 힘으로 빼앗는 것은 친구와 싸우고 멀어지는 결과를 만든다.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재밌자고 한 행동에 사고가 일어나며 즐거움과는 정반대로 가기도 한다. 혹은 삶의 일부분을 망치기도 한다. 잠깐의 일탈이 결정적 사건을 만들기도 하고, 별생각 없이 반복되는 습관이 쌓여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몸이 편한 쪽을 선택해 게으름을 부리면 열매를 얻을 수 없다. 혀의 즐거움을 위해 선택하는 많은 음식이 사실은 몸을 망친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으며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쉽지 않다. 매 순간 자기 성찰이 필요한 일이다.   


칸트는 “자신을 벌레로 여기는 사람은, 짓밟히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게랄드 휘터는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칸트의 말을 소개하며 상처는 타인에게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자신을 함부로 대할 때도 자기 존엄성에 상처가 남는다.5)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말과 행동이 자신에게 이로운지 생각해 볼 기회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편하고 만족스러운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성찰이라는 의미심장한 단어를 말했지만, 이것은 최근 강조되는 메타인지와 관련이 있다.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없이 마냥 ‘원하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은 방향키가 없는 것과 같다. 목적지도 없을뿐더러 여기저기 부딪치며 좌초하는 배와 같다.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그저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냥 그대로 내던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기 내부를 정리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 거기서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



※ 참고문헌

1)『핀란드 교육에서 미래 교육의 답을 찾다』 키르시티 론카. 테크빌교육(즐거운학교). 2020.  p.145

2)『핀란드 교육에서 미래 교육의 답을 찾다』 키르시티 론카. 테크빌교육(즐거운학교). 2020. p.122

3)『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황레나,황선준. 위즈덤하우스. 2020. p.145

4)『프랑스 아이처럼』 파멜라 드러커맨. 북하이브. 2014. p.209, p.310

5)『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드 휘터. 인플루엔셜. 2019. 73p




이전 10화 왜 해야 되냐고 묻는 아이에게 답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