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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y 22. 2023

왜 해야 되냐고 묻는 아이에게 답하기

그들은 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답을 꼭 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수학 문제집을 풀던 아이가 대체 이걸 왜 해야 하냐고 물었는데, 대답해 주다가 된통 싸움만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른들은 처음엔 그럴싸하고 설득력 있는 답을 열심히 만들어 제시해 본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수학 공부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납득을 하지 못한 뾰로통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걸 보면 살짝 답답하고 화가 난다. ‘이 녀석이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군.’하는 생각이 든다. 속에서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게끔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올라온다. 툴툴대며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자녀의 감정은 애써 무시하고, “그럴 시간에 문제집 한 장이라도 더 풀어라” 하는 말이 나오면 대화는 이어지기 어렵다. 

     

아이들은 가끔 ‘왜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예를 들어 ‘수학을 왜 해야 하는지’, ‘숙제를 왜 해야 하는지’ 같은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교생활을 넘어 학교와 교육의 본질을 묻기도 한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나오는 질문인 ‘왜 학교에서 ○○은 못하게 하는지’, ‘학급 회의는 왜 해야 하는지’, ‘왜 다 같이 여행을 가야 하는지’ 정도는 그나마 나은데,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뭔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들으면 고민하게 된다. 그런 질문들을 대하다 보면, 정말 답을 듣고 싶은 것일까 싶다.   

     

어떤 답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학부모를 만나면, 다시 질문을 해보시라고 권하곤 한다. 답변이 아니라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너는 수학을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하고. 물론 “생각해 보니 열심히 해야겠네요”와 같이 어른들이 원하는 결론을 술술 말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은 수학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수두룩하게 댈 수 있다. 조리 있게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견을 묻고 그 내용을 잘 귀담아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해소된다. 답답한 마음이 풀리고, 오히려 스스로 고민하면서 관심이 유지될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쓰면 좋을지도 물어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어설프더라도 스스로 찾은 방법을 지지해 주는 것이다. 어른들의 생각을 주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키울 기회를 얻는다. 


또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의견을 물으면 참여의 의미가 살고, 주체적으로 고민할 기회를 주게 된다.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에서는 스웨덴 가정의 가족회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가족회의에서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아이들도 의견을 내도록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한다. 의견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배운다. 가족들도 다 다른 생각이 있고 그래서 설득과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특히 집안에 심각한 일이 일어났을 때도 아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의논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의견을 받는다.1)  


우리는 아이들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가 참 적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일상과 관련된 일에서도 정작 아이들은 배제되곤 한다. 학교의 교육내용이나 운영 등은 분명 학생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도 학생들이 논의에 참여하는 일은 드물다. 가정에서도 아이의 하루 일과와 학습 등의 계획을 부모가 맡는 경우가 많다. 몇 시까지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학원에 다니고 등등.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이 제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제 ‘너의 의견은 어떤지’를 물어보는 것부터 하면 좋겠다. 너의 생각을 고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자유롭고 당당한 자기표현을 하는 아이들로 자란다. 


     

안전하고 편안한 대화

걱정거리와 고민을 가진 아이들이 자기표현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때 고개를 숙이고 쭈뼛거리거나 반대로 툴툴거리며 반항하는 것이 소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아이들도 잘 안다. 하지만 많이들 그런다. 아이들이 속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어렵고, 어른들의 이야기는 잔소리나 통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안전하고 편안한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 수평적인 관계와 안전한 환경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상호 존중하게 되고 연결될 수 있다. 마음 편하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은 갈등과 부딪힘의 원인이 아니라 자유로운 소통의 재료가 된다. 


EBS 다큐멘터리 <학교란 무엇인가>에서 상위 0.1% 아이들이 부모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조사했다. 그들도 부모와 나누는 대화 시간은 다른 그룹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부모와 나누는 대화에 대한 느낌은 차이가 있었다. ‘편하다’, ‘즐겁다’, ‘유익하다’ 등 긍정적인 부분이 74%로 다른 그룹보다 3배 정도 높았다. 부모들의 태도 역시 달랐다. 일반적인 부모의 경우 ‘비난’ 40%, ‘분노’ 34% 등 부정적인 반응이 높았지만, 0.1% 아이들의 부모는 ‘수용’, ‘애정’, ‘관심’ 등 긍정적인 대화가 높았다.2) EBS 다큐프라임 <마더쇼크>에서는 아이의 연령별 부모의 역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7~12세 자녀에게는 ‘격려자’로서, 13~20세 자녀에게는 ‘상담자’로서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3) 


부모는 왕처럼 명령을 내리는 역할이나, 판사처럼 결론을 내리고 상벌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잘 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을 통제하는 말보다는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그럴 때 하루 일상에서 가장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 된다.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방향을 찾고 있는지를 편안하게 내놓을 수 있는 곳이 집이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든 자식이든 모두가 공평하게 말할 기회를 가지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말이든 이 안에서는 수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서로 간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택과 결정은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는 아이 스스로 자기 생각을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로서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진 힘을 양분 삼아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자란다.  



평등한 존엄성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댓말을 하는 학교와, 서로 별명을 부르고 반말을 사용하는 학교를 모두 경험한 적이 있다. 존댓말을 사용하면 교사가 학생을 하대하지 않게 되고 서로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은 정중한 대화를 하게 된다. 서로 반말을 사용하면 누구와도 편안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형식은 다르지만 교사와 학생이 수평적인 관계임을 드러내고 자연스레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가 된다. 공통적으로 학생들은 누구나 자신 있게 자기주장을 하고, 잘못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책임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말의 형식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만나는 것이다.                    


덴마크의 가정교육 전문가 예스퍼 율은 ‘평등한 존엄성(equal dignity)’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경청하는 것, 편안하고 안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이 평등한 존엄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격과 인간성도 존중해야 한다. 온전한 한 명의 개별 인격체로서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하는 것은 어른이든 아이든 마찬가지다. 이 평등한 존엄성 아래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통제하거나 일방적으로 명령해서는 안 된다.4) 북유럽의 교육과 가정의 문화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동등하게 의견을 나누는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바르게 표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불분명하게 말하거나 반대로 거칠게 생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예의 바르고 분명하게 말하는 습관이 든다. 주장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은 물론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자유롭게 낸다. 가정에서 일찌감치 연습이 되려면 평등한 가족문화를 만드는 것이 먼저여야 할 것이다. 당당한 자기표현의 능력은 어떤 이야기든 편안하게 수용되는 환경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의 의견이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얼토당토않은 논리와 황당한 고집이 얼마나 많은가. 이때 부모와 자녀 이전에 ‘평등한 존엄성’을 가진 동등한 인격체로 서로를 보면 대화의 방향은 달라진다. 어차피 개별 인격체로서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무시하거나 배제할 수 없고, 그저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를 설득하는 대화가 가능할 뿐이다. 가족 간에도 비판적으로 토론하며 타협하고 협상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간혹 수평적인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맞춰준다는 의미로 해석될 때가 있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을 이해하듯, 자녀 역시 부모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갈등을 줄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녀도 부모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관계는 아이에게도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폐가 되는 행동마저 다 용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례한 말과 행동에 제한 없이 웃어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부모가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대를 존중하며 정중하게 의견을 말하고 경청하는 것은 부모와 자녀 모두가 익혀야 할 태도인 것이다. 





학교에서 공동체여행을 가기 위해 논의를 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이 다르고 그걸 하나로 모으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결국 “대체 왜 다 같이 여행을 가야 되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빙자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이 내놓는 답에는 만족할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아이들은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러게? 왜 학교에서 다 같이 공동체 여행을 가도록 하는 걸까?” 하고 되물었다. 


학교 공부가 힘드니까 오래간만에 쉬기 위해서.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 색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서. 서로 이끌어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 등등의 이야기들이 나왔다. 낯선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나와 함께 웃었다. 그리고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요.”


아이들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참고문헌

1)『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황레나, 황선준. 위즈덤하우스. 2020. p.132, p.137

2)『학교란 무엇인가 1』. EBS 학교란 무엇인가 제작팀. 중앙북스. 2011. p.243, p.245

3)『학교란 무엇인가 2』. EBS 학교란 무엇인가 제작팀. 중앙북스. 2011. p.268

4)『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 생각정원. 2019.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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