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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y 26. 2023

기분이 변하는 게 두려워 약을 먹는 아이

나를 모르는데,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청소년기에 많이들 그러긴 하지만, 간혹 부정적인 느낌이나 감정 기복 때문에 스스로를 문제라 여기는 아이들이 꽤 있다. 기분이 가라앉아서 우울증인가 의심 했다가, 또 잠시 후 재미있는 일에 깔깔 웃는 자신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다 스스로 판단을 내려버린다.

‘이렇게 기분이 자꾸 변하다니 분명 문제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응? 나도 그러는데….’ 하는 생각에 뜨끔하다. 그래서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다.


우리는 원래 매 순간 감정의 파도를 탄다. 아침엔 찌뿌둥하니 기분이 가라앉았다가도 밥 한 그릇 먹고 나면 기운이 나서 콧노래 부르는 것이 우리 삶이다. 수많은 감정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게다가 같은 상황이어도 사람들마다 느낌은 다르다. 이런 모습들을 편안하게 보는 연습이 되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분이 좀 변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문제 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한 공감도 이렇게나 어려우니 타인에 대한 공감은 멀기만 하다.  

     



▪‘미친!’ 하나면 다 된다

감정의 변화를 여유롭게 바라보기는커녕,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도 어렵다. 옛 어르신들이 웬만한 일은 ‘거시기하다’고 다 표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 대화에도 여러 감정을 한두 가지 언어로 대신해 버리는 것들이 있다. 한 때는 ‘짜증 나’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기분이 나쁘고 언짢을 때 짜증 난다고 하다가 화가 날 때도 짜증 난다고 하고, 슬플 때도 울면서 ‘짜증 나…’라고 했다. 어떨 때는 친구와 깔깔대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하하하! 짜증 나!’를 외치곤 했다. 최근에는 ‘미친…’이 대신하는 것 같다. 화가 나도, 슬퍼도, 기뻐도 ‘미친!’ 외치면 해결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조금씩 억양이나 표정이 달라지므로 우리는 충분히 맥락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미세하게 다른 감정들을 한 단어에 욱여넣는 동안에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잃게 된다. 결국 자기감정을 잘 알지 못하게 된다. 예전에, 감정이 복받치면 울어버리는 학생이 있었다. 친구들이 장난을 쳐서 깜짝 놀라면 울고, 화가 나면 울었다. 친구가 학교를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많은 학생이구나 했는데 어느 날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다가 너무 웃긴다며 울었다. 그냥 눈물이 많은 게 아니었다. 수많은 감정이 있지만, 이를 표현할 단어가 없었던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자기감정을 잘 모를뿐더러, 그것을 표현할 말과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모르겠어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를 반복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소리를 질러버리거나, 욕설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나름 치미는 감정을 드러낸 것이긴 한데, 감정을 어떻게 구분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런 아이들이 자기중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반대 결과가 나오고 답답한 마음은 쌓여간다. 나이가 좀 되는 아이들은 신경정신과 약을 처방받으며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남의 기분을 헤아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  



▪감정을 읽고 돌보는 방법 배우기

덴마크의 공감 전문가인 헬레 옌센(Helle Jensen)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것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공감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면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 읽기’를 중요시하는 교육철학이 바탕이 되어 덴마크는 이와 관련된 내용을 교육과정에 배치한다. 어릴 때부터 수업시간에 감정을 읽고 표현하는 활동을 가르친다. 예를 들어 그림을 보고 감정을 추측하거나, 토론을 통해 왜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지도 나눈다.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 등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감정을 읽어보는 활동도 한다.1) 


핀란드는 ‘상호작용’과 ‘자기표현 능력’을 미래 핵심역량으로 여긴다. 따라서 학교에서 다양한 감정을 배우고, 감정의 폭을 중요하게 학습한다. 학교에서는 어떤 감정이든 수용되는 것을 중요시한다. 감정은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허용한다. 학생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로운 표현이 지지받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구분하고 표현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도 배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싶다고 해서 자유롭게 할 수 이는 것은 아니다. 남을 헐뜯고 싶은 마음과 기분은 인정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도록 교육한다.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소통과 협업을 위한 주요한 능력이라 보기 때문이다.2)  


이런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읽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연습이 된다. 우리의 감정은 매우 여러 가지이고 이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매우 많다. 슬프다는 느낌만 해도 ‘먹먹하다’, ‘울적하다’, ‘서글프다’ 등 미세하게 다른 감정들로 나뉜다. 이런 단어들을 배우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을 잘 이해하게 되어야 표현도 달리 나올 수 있다. 소리를 치거나 울어버리지 않고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양한 감정언어를 배우고 자기감정을 돌보는 연습이 된 사람이 타인의 감정도 세심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럴 때 원하는 것을 얻고 원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결국 공감은 자기 돌봄과 온전한 자기표현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연습의 결과

교육은 교과교육과 더불어 훌륭한 시민을 기르고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목표가 있다.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많은 부분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하고 서로 배려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중요하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태도는 착하게 태어나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연습하고 몸과 마음에 스며들도록 할 때 형성된다.


공감은 타인과 같은 편이 되어 동일한 감정을 느끼는 ‘동감’과는 다르다. 나와 타인은 다르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감정의 바탕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살펴 이해하는 것이 공감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의미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맥을 같이한다. 이런 공감을 통해서 각자 따로따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연결되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 공감을 위해서는 타인을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인사말처럼 ‘당신을 봅니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기중심이 강한 시기를 있어서 자신의 입장이 더욱 잘 보이고, 주관적 감정에 몰입한다. 공감을 위해서는 눈을 돌려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스위치를 바꾸듯 세상을 보는 시선에 반전이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몸짓이나 표정에 집중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경험을 하고 각자의 욕구와 느낌이 달라서 그 안을 이해하는 것은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말처럼 쉬울 리가 없다. 이는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북유럽과 유럽권 나라들은 아이들 갈등에 부모나 교사가 끼어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다. 놀이터에서 벌어진 어린아이들의 다툼에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모나 선생님께 고자질하는 것을 몹시 나쁘게 본다.3) 갈등이 벌어지면 같은 상황을 자신과 타인의 입장에서 번갈아볼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례하게 대하도록 두지 않고, 자신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갈등을 다뤄야 한다. 어른들이 대신 나서서 해결하는 것 대신, 스스로 다툼을 해결해 가며 어릴 때부터 공감 연습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처럼 공감능력은 어릴 때부터 이루어지는 의도적인 연습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몸에 타고나는 재능 같은 것이 아니다. 반복적인 행동으로 내면화되었을 때 얻어진다. 학교에서도 지식 교육뿐 아니라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배치해야 한다. 타인의 입장에 서는 연습은 자기의 말과 행동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집에서는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지 않는 것부터, 학교에서는 눈을 보고 인사하는 것부터가 시작일 수 있다.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훌륭한 시민으로 자라게 된다.



▪마음공부하는 부모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돌보고 적절한 표현법을 익히려면 당연하게도 부모가 먼저 연습이 되어야 한다. 꾹꾹 참았다가 터뜨리거나 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전에 먼저 들여다보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어른들이 어린 시절에 받은 교육은 감정을 돌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꾹 참고 인내하는 것을 더 많이 배웠다. 그러니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것은 언감생심. 어른들이 자신의 감정도 잘 모르는데, 자녀의 감정을 헤아리기가 쉬울 리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들다. 하지만 많은 어른이 아이들의 감정 표현을 ‘문제’ 삼곤 한다. 부정적이고 변화무쌍한 감정표현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극단적으로는 ‘병’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별 것 아닌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내놓는 부정적인 내용이 부모의 감정 어딘가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탓하며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부모가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그림자와 욕구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즉각적인 반응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감정을 드러냈을 때 부모는 가장 먼저 공감해 주는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른들이 편안하게 ‘괜찮아’, ‘그럴 수 있다’는 말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자녀의 감정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함께 나누는 대화상대가 되어 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진지하게 함께 나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집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된다. 감정을 내놓고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늦게라도 부모로서 감정을 돌보는 마음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자신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서로 존중하며 소통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를 다루는 교육과 연습 모임이 많이 있다. 부모가 먼저 자녀의 입장에 서서 공감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려와 존중을 연습하게 된다. 가족 간에 서로 공감하고 신뢰를 만들어갈 때 아이들이 공감 능력자로 자라게 된다.

     


※ 참고문헌

1)『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 생각정원. 2019. p.129, p.101

2)『핀란드 교육에서 미래 교육의 답을 찾다』. 카르시티 론카. 테크빌교육(즐거운 학교). 2020. p.122

3)『프랑스 아이처럼』. 파멜라 드러커맨. 북하이브. 2014.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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