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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Aug 16. 2023

왕의 DNA를 가진 아이도 특별하지 않다

얀테의 법칙. 모두가 소중할 뿐 특별한 존재는 없다.

  

스웨덴 출신의 영화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2018년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다. 세계적인 상을 받은 그는 미국 CBS의 토크쇼인 레이트쇼에 출연해 후기를 나눴다. 바로 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랑 좀 했나요?”

“(우물쭈물하며)...... 아니오.”


그는 주변에서 다들 축하한다고 할 때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트로피를 진열장에 올려놓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친구 집에 맡겼다가 여행 가방 안에 숨겼다가 나중에는 벽장 안에 숨겨놓았다. 그는 자신이 ‘스웨덴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들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소개했다.1)




얀테의 법칙

그가 트로피를 보이는 곳에 전시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북유럽인의 사고를 지배하는 ‘얀테의 법칙(Jantelagen, the law of jante)’ 때문이었다. 얀테의 법칙은 북유럽 사람들에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문율처럼 작용하는데, 사실 진짜 법률 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가짐과 행동의 기본 지침이 되어 있다. 그리고 유럽권과 구분되는 특유의 북유럽 문화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 


얀테의 법칙은 1933년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작가 액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의 소설  『도망자,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서 건너다(A Fugitive Crosses His Tracks)』에서 시작되었다. 얀테는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 이름이다.2) 이 마을에서는 ‘잘난 사람’은 대우받지 못한다. 소설에서 마을의 십계명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북유럽 전반에 암묵적으로 퍼져있는 것이다. 이 내용을 특별히 따로 배우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매우 일상적인 것이라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예의범절처럼 습득한다. 


[얀테의 법칙]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 당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선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3.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확신하지 마라.

5.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당신이 뭔가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다른 사람들을 비웃지 마라.

9. 누구든 당신한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10.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얀테의 법칙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겸손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자신을 싫어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자신이 더 귀하거나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금지하는 것이다. 누구나 나름의 강점이 있지만 그렇다 한들 그것이 우쭐거리며 자랑할 일도 아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남을 업신여기거나 하대하는 것은 못난 짓이다. 비싼 차를 몰면서 과시하거나 SNS에 명품 사진을 올리며 자랑하는 것은 바보 취급을 받게 된다.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남들에게 주목받을 일이 생기면 오히려 당황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스타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자신의 성공을 내보이지 못했던 이유다.   


여기에 얀테의 법칙에는 미묘한 의미가 좀 더 담겨 있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방송에 나와 자신의 겸손한 성품을 보여주었다면, 그의 북유럽 팬들은 댓글을 통해 그를 존경하면서도 특별대우 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알렸다. 북유럽에서 연예인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나 혜택을 받는 일은 없으며, 동네 슈퍼마켓에서 만났다고 사인을 받으려 다가가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직업이나 돈과 명예가 그 사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얀테의 법칙은 단순히 과시하거나 튀지 말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북유럽 사람들은 더 우월한 사람, 더 뛰어난 사람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흔히 성공했다는 사람, 즉 돈과 명예를 가진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을 우러러보거나 호들갑 떨며 다가가는 것도 없다. 그냥 평등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쓸데없는 비교로 자괴감도 갖지 않는다. 친구의 명품 가방을 질투하지 않고, 멋진 스포츠카가 지나간다고 해서 오래된 자기 차를 보며 한탄하지도 않는 마인드인 것이다.  


얀테의 법칙을 내면화한 북유럽 사람들은 격차가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비슷하고 공평한 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특별하게 대우받는다면? 혹은 남들은 가지지 못한 비싼 차를 가진 사람이 바로 자신이 된다면? 그것 역시 옳지 않다는 의식이 있다. 북유럽에서 수많은 복지정책이 사람들에게 수긍되는 것도 얀테의 법칙과 일부분 관련이 있다. 이익이나 혜택을 독차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자신이든 타인이든 불편해한다. 그래서 공동체 전체를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한다.3) 



▪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그래서 누구나 소중하다

얀테의 법칙 첫 번째로 제시되어 있을 정도로 북유럽 사람들은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아이들에게 “최고다!”, “너는 특별해” 등의 칭찬을 하지 않는 편이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부모의 감정이 메말라서도 아니다. 아이에게 ‘특별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칭찬도 아니고 기운을 북돋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특별한 사람은 없으므로 늘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더불어 ‘누구나 소중하다’고 고 강조한다.4) 


그들에게 얀테의 법칙은 무의식에 장착되어 하나의 문화가 되어있다. 회사 사장과 평사원은 업무가 다른 사람일 뿐이다. 사장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며 평사원이 올려다볼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왕도 그저 나라의 대표자일 뿐이다. 모두 소중할 뿐 특별한 존재는 없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토크쇼에서 얀테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진행자는 그럼 왕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며 가진 것이 많은 왕은 ‘특별’ 하지 않겠냐고 물은 것이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얀테의 법칙을 내면화한 사람이라면 왕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 왕을 연기하여 관객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음... 제가 왕이에요... (긁적)... 미안해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우리로서는 참 생소한 문화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너는 특별한 아이야’라는 말은 아이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특별한 존재임을 주지시키고, 아이가 특별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주변에서 아이를 특별하게 대해주기는 바라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람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라는 말은 폭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동 교육 프로그램에 그런 말을 자녀에게 하는 부모가 등장한다면,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화제가 될 것이다. 혹은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상당한 수의 민원이 예상된다. 


하지만 오히려 ‘너는 특별하다’는 메시지가 부정적일 때도 있다. 오만과 자만도 문제이고, 의외로 꽤 많은 아이들이 자의식 과잉으로 괴로워한다. 또한 특별함에 대한 강조는 과도한 기대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대부분 아이가 커가면서 이루는 작은 성취들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때 진취적으로 한계를 극복하며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네가 가진 특별함’을 언급하는 어른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는 반대가 될 때도 많다. 아이의 머릿속은 실체 없는 높은 이상을 기준으로 비교하느라 늘 복잡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늘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고 실패감에 힘들어한다. 결국 그 무엇에서도 자기 존재감을 확인할 수가 없어 한없이 우울한 아이들을 자주 본다. 


게다가 난사람이 인정받고 주목받는 문화에서 사는 우리는 ‘특별함’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다. 방송에는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아이돌(우상!)이 등장해 시선을 모은다. 성공 신화를 써낸 기업가와 경영자, 어릴 때부터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등장해 부러움을 산다. 우리는 돈과 명예를 차지한 사람들의 화려한 삶을 구경하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에너지를 쏟으며, 열광했다가 실망했다가 한다. 재산과 지위가 곧 권력인 사회이다 보니 부당한 갑질에 당당히 제 말을 못 하는 을의 삶을 살기도 한다.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닦달하고 괴롭힌다.    



▪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아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은 존재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넌 별것 아니다’와 같이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을 재지 않고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성공을 향한 맹목적인 열망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을 향해 안달복달하는 사람은 이상하게 보인다. 부자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므로, 돈 있는 사람을 부러워할 일도 그 앞에서 위축될 일도 없다.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므로 소유로부터 자유롭다. 성공에 집착하지 않기에 실패에 너그럽다. 권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므로 권력 앞에 당당하다. 


주목받는 것이 부럽지 않으니 관심을 끌기 위해 애써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어떤 일의 성공 여부나 타인의 관심으로 자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도 올려다보지 않으며 누구도 내려다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을 존중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유명세나 권위에 맞춰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의미 없으므로 아무것도 아니어도 자유롭고 평온하다. 


누구나 소중할 뿐, 특별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오히려 각자의 특별함이 빛을 발하게 된다. 다른 이의 등불을 부러워하거나, 내 등불을 봐달라고 애원한다고 해서 불을 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이들의 관심과 찬탄을 받으려 서커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삶, 혹은 그 서커스를 못하더라도 그런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굴러가는 삶이 좋은 것이다. 무엇이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내 안의 등불이 스스로 온기를 만드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게다가 내 등불을 켜고 살피는 일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다.   


이처럼 바깥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존감은 겸손함 속의 당당함을 만들고 곧 그 사람의 성품이 된다. 저 혼자 활활 타는 불을 만들겠다고 다른 이의 불이 꺼지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과 다르다. 모두의 등을 소중히 하고 서로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며 함께 빛나는 것이다. 즉 자기 삶을 사랑하듯 타인의 삶 역시 소중히 여기는 그런 모습이다.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로 아이들을 기르면서 전해야 할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참고자료

1) Alexander Skarsgård Is Too Swedish To Be Cocky. 2018. 11. 10. 

     https://www.youtube.com/watch?v=fzIa_FNNkWo

2)『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아누 파르타넨. 원더박스. 2017. p.349

3)『North 리얼 스칸디나비아』 브론테 아우렐, 안나 야콥센. 니들북. 2019. p.176

4)『상상 속의 덴마크』 에밀 라우센. 틈새책방. 2018.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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