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하고 있니?
아이에게 그만 놀으라는 말을 대놓고는 못하고 넌지시 돌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녀들과 친구같이 편한 사이가 되고 싶다는 요즘의 부모들도 놀고 있는 아이를 편히 보지 못한다. 어릴 때는 밝고 건강하게 뛰어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놀이 중심의 학교에도 보낸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한국 아이들은 “그만 놀고 공부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아쉬운 마음으로 털고 일어나야 한다.
▪ 교육의 핵심적 방법론. ‘자유롭게 놀기’
세계적인 블록 장난감 기업 레고(Lego)는 덴마크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다.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푹 빠져서 노는 장난감이 레고다. 어지간한 것은 다 만들 수 있어서 움직이는 자동차와 호텔 방까지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레고는 1932년에 시골 목수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Christiansen)이 나무 장난감을 만들면서 창업했다. 회사의 이름은 덴마크어로 ‘Leg Godt’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는데, 번역하면 ‘잘 놀다(Play Well)’이다.1) 아이들은 잘 놀아야 잘 큰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덴마크에서는 1871년 ‘자유롭게 놀기’가 교육이론으로 등장해 현재는 핵심적 교육 방법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에서는 6~10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여가 학교(Free Time School)를 운영한다. 여기서 아이들은 완전히 놀기만 한다.2) 핀란드는 오후 3시면 학교 일과가 끝난다. 핀란드는 ‘아이들은 놀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최대한 충족시켜야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된다’는 교육철학이 있다. 7~16세까지는 석차가 있는 성적표를 제공하지 않고 자유롭게 오후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3) 더불어 아이들은 공부와 놀이가 구분되지 않은 환경에 있다. 놀이도 공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따로 체육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팔운동, 목운동 웬만한 움직임은 자연스레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체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더불어 창의력의 발달과 정서에도 유익하다. 서로 소통하고 협상하는 방법도 배운다. 놀이의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것은 물론, 때로는 양보하며 자제하기도 하는 등 일종의 사회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도전적인 일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기초능력을 놀이를 통해 학습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서 놀이와 학습을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하다.
영국의 서머힐(Summerhill School)을 설립한 닐(A.S. Neill)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서머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안학교이다. 닐은 책이나 수업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배운다고 말했는데, 이때 스포츠나 규칙이 있는 활동은 놀이라 하지 않았다. 규칙이 있거나 숙련이 필요한 활동은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며 아무런 구속 없이 노는 것이 진정한 놀이라고 보았다.
놀이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수많은 놀이 유치원이나 놀이 학교에서 틀에 짜인 활동을 하는 것을 본다면, 닐은 한숨을 쉴 것이다. 놀이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닐은 어린 시절의 놀이가 인간의 심성에 큰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노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재앙’에 가깝다고 여겼다. 심지어 “현재 문명의 병폐는 어린이들을 자유롭게 놀지 못하도록 하는 데서 생긴 결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4)
일반적인 학교에는 공격적이거나 늘 심통이 나있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머힐에는 그런 아이들이 없었다. 학교에 경쟁도 없고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니, 아이들이 인간적인 생활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닐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도록 하는데 큰 바탕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마냥 놀게 둘만큼 부모들의 인내심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 쉬지 않고 끊임없이 가속 중인 한국
2009년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취임 초기 한국 교육에 대해 극찬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 아이들은 미국 아이들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1개월 정도 더 많다는 것이었다. 이를 본받아 미국 학생들도 더 많은 시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한국 학생들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열병을 앓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학원과 독서실에서 지쳐가던 학생들은 이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2022년 7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유기홍 국회의원과 함께 경쟁교육 고통 지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조사에서 초중고 학생의 47.8%가 평소 잠이 부족하다고 대답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잠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48.9% 학생이 학원, 과외, 숙제, 인터넷 강의 등에 시간을 쏟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5) 전체 학생의 절반 정도가 공부하느라 잠을 포기하고 있다.
잠을 포기하고 그렇게 시간 들여 공부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할 것 아닌가. 「아동․청소년의 생활패턴에 관한 국제비교연구」에서는 PISA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여준다. 핀란드, 일본 등 학업성적이 유사한 국가들을 비교하였다. 평일 전체 학습 시간은 한국의 경우 8시간 55분이다. 핀란드의 경우 4시간 22분으로 한국의 절반에 가까웠는데, 정작 수학 점수가 한국보다 2점이 높았다. 일본도 6시간 22분으로 한국보다 학습 시간이 짧았으나, 점수 차이는 8점에 불과했다.6)
몸과 마음이 피곤한 상태이니 매사 무기력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위의 경쟁교육 고통 지표 설문조사 결과 학생 4명 중 1명이 ‘학업성적으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으로 자해・자살을 생각’ 한 것으로 응답했다. 한국 청소년들의 마음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쉬는 것이 부족하다. 들숨과 날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고무줄이 팽팽히 당겨져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게 많은 힘이 든다. 물처럼 에너지 음료를 달고 사는 청소년들이 건강할 리 만무하다.
학생들만 쉬지 못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는 것을 잘 못한다. 우리는 노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쉬는 시간을 아껴 뭔가를 한다. 이후에 얻어야 할 것들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하면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다. 돈이든, 성적이든 나중에 더 이득이 되는 것들을 생각하며 마음 놓고 휴식하지 못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경쟁의 철학 때문에 여가도 오염된다고 말했다. 조용히 편안함에 머무는 것은 왠지 지루하고 권태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비생산적으로 느껴진다.
아이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휴식 중인 아이들을 보면 왠지 그 시간에 책이라도 읽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혹은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한다. 잠시 쉬다가도 왠지 모르게 시간 낭비를 하는 듯 죄책감이 든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것을 쉬는 중에도 끊임없이 가속해야 하는 상태라 하였다. 그리고 그 종착점은 탈진상태일 것이라 예견하였다.7) 이 극단적인 피로 상태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잠도 부족하고 그래서인지 미래에 대해 꿈을 꿀 시간도 없다.
▪ 학교는 원래 쉬는 곳이었다
‘스쿨(school)’의 어원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어 ‘스콜레(schole)’를 만나게 된다. 이 단어는 ‘여가(leisure)’의 의미가 있다. 더불어 쉼(rest), 편안함(ease), 게으름(idleness)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학교는 원래 ‘쉬는 곳’이었던 것이다! 즉 일손을 놓고 느긋하게 사색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지금의 학교를 떠올려보면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다.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공부하는 지금과는 다르다. 먹고사는데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발견과 깨달음은 잠시 멈추었을 때 일어난다.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보고 알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는 사물이나 현상을 조용히 관찰하며 토론을 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가 유유자적 거닐며 대화하는 교육법도 있었다. 이 교육법을 사용한 이들을 소요학파(逍遙學派) 또는 산책 학파라고 불렀다. 숲 속을 느리게 산책하며 스승과 제자가 묻고 답하는 과정이 수업이었다. 이미 결론이 난 지식을 채워 넣느라 급급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고대의 학교에서는 느슨한 시간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진실을 논하는 학습이 이루어졌다.
하위징아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를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로 도입했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를 단순히 ‘논다(play)’는 뜻만으로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여가는 물론 학습과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8) 말 그대로 우리 삶과 인류문화는 목적 달성을 위한 열띤 생산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풍성함과 윤택함은 여가와 놀이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어떤 기능을 익히기 위해서나 성취를 위해서 놀지 않는다. 그저 즐겁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놀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규칙을 발견하게 되고 즐겁게 참여하며 얻는 교육효과가 있다.
놀이와 쉬는 시간을 통해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놀이와 여가를 통해 경험하는 빈 시간은 학습 그 자체일 수 있다. 문자로는 배울 수 없었던 그 이상의 것들, 건강한 삶의 방식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바깥을 향한 시선을 돌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배운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되는 활동을 함으로써 행복과 여유를 중시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즉 채워 넣기만 할 때는 불가능했던 질문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자기 삶의 기반을 닦는 것이며, 배움의 골자이다.
※참고문헌
1)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하수정. 한빛비즈. 2017. p.105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오마이북. 2015. p.52
2)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 생각정원. 2019. p.48
3) 학교란 무엇인가<2>. EBS학교란 무엇인가 제작팀. 중앙북스. 2011. p.190
4) 서머힐. 알렉산더 닐. 산수야. 2014.p.99, p54, p.101
5)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회견보도] 전국 초중고생 25.9%, 학업 성적 때문에 자해자살 생각해... 2022.07.07. https://noworry.kr/policyarchive/?idx=12151228&bmode=view
6) 「아동․청소년의 생활패턴에 관한 국제비교연구」 보건복지가족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09. 5p.
7) 행복의 정복. 버트런트 러셀. 사회평론. 2005. p.62
8) 메타버스 스쿨혁명. 김은형. 서사원. 2021.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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