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Apr 26. 2023

'나'에 대해 물어본 적 없이 살았습니다

진정한 교육은 나다운 삶을 찾도록 하는 것

한 식당에서 짬뽕 하나를 시키며 무수한 질문을 받았다.

빨간 짬뽕과 하얀 짬뽕 중에 고르라 해서 하얀 짬뽕을 말했더니, 국물 맛을 해물과 닭 중에서 골라야 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어서 맵기의 단계는 가장 낮은 것으로 정했다. 무엇이 들어가는데 괜찮으냐는 질문도 있었다. 짬뽕 하나 먹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여 정성을 다해 대답했다. 그러자 주인장이 허허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를 잘 모르더라고요.


답이 나오면 다행이고 대부분 “뭐가 인기 있나요?”라고 되묻거나 “추천해 주세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 ‘나’에 대해 스스로 물어본 적 없는 삶

메뉴판을 놓고 고르는 일은 차라리 쉽다. 하지만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객관식이 아니니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맛집을 검색하고 추천메뉴 후기를 찾아 읽으며 고민하면서도 자신을 찾는 일에는 그보다 시간을 들이지 못한다. 게다가 쏟아지는 정보의 폭풍에 휩쓸리며 산다.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느라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나’의 삶을 살게 된다. SNS나 광고에서 본 것에 비판 없이 열광하고 사회가 암시하는 기준에 나도 모르게 얽매인다.


상대적으로 경험의 폭이 작은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어렵다. 특히나 청소년기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 남아있는 동시에 사회적 요구가 늘어나는 시기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거기에 대학입시와 취업을 목표로 바쁘게 사느라 ‘나’에 대해 질문하기는 어렵다. 대학의 이름이나 직업의 종류를 고민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보이는 것에 휘둘리고, 또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져 버렸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성인이 된다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기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청소년기 ‘자아 정체감’에 대해 중요하게 다룬다. 자아 정체감이란 자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와 관계가 있다. 자신의 성격이나 관심사를 알고 있으며, 자기 능력을 가늠할 수 있을 때 자아 정체감이 잘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자기 가치관과 미래에 대한 생각도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조율할 수 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자기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다. 미국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청소년 시기에 자아 정체감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면 건강한 성인이 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되어서도 가장 큰 난제는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바야흐로 ‘퇴사’의 시대이다. 잡코리아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입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2년 이내에 퇴사한다. 또한 5년 이내에 90% 이상이 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 직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괜찮을까. 3개월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반복적으로 겪는 ‘3.6.9 증후군’이 이들을 지배한다. 일의 보람을 느끼기 어렵고,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최근에는 ‘조용한 퇴사’라는 말도 생겼다. 주어진 일만 최소한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대(大) 퇴사 현상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은 괴로움의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퇴사학교』에서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20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12년은 수능시험과 대입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린다. 그러다 대학에서는 4년 동안 취업만을 바라보며 질주한다. 휴학하거나, 남자의 경우 군대까지 다녀오고 나면 서른쯤이 된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 입시와 취업이라는 목표만 보며 달린 시간의 합이 거의 20여 년에 달한다.2) 실적이며 성과를 위해 또 달린다. 왜 하는지 모르는 일을 꾸역꾸역 하던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게 된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무엇 때문에 달리고 있는 걸까.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

최근 갭이어(Gab Year)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갭이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1~2년간 공백기를 갖는 것을 말한다. 갭이어는 17~19세기 영국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그랜드 투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지 등을 돌아보며 경험을 쌓는 활동이었다.3) 목적은 곳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세상을 배우는 것이다. 현재에도 많은 청년이 갭이어 기간을 가지며 세계 여행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다녀오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갖는 이 공백기는 자아를 찾는 시간으로 의미가 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면서 자기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면들도 만난다. 그리고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에는 스스로 묻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것이다. 즉 틈새의 시간을 통해 ‘자기 탐구’의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부모님 도움 없이 스스로 서는 연습을 하면서 자기 생각의 기준을 세우게 된다.


덴마크는 이러한 자기 탐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를 만들었다. 1851년부터 시작된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Afterschool)’는 직역하면 ‘방과 후 학교’처럼 들리지만 덴마크 고유의 기숙학교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14~18세의 청소년은 누구나 입학할 수 있고, 1~2년간 다닌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짧게 다니는 학교다. 여기서는 교과목 공부보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청소년들이 인생을 공부하는 학교인 셈이다. 기숙사에서 자기 생활을 스스로 꾸리면서 독립을 연습하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법도 배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자신은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길 원하는지 그려본다.


에프터스콜레는 덴마크 전국에 260여 개가 있는데 사립학교임에도 예산의 약 66%를 국가가 지원한다. 덴마크 사람들 대부분이 에프터스콜레의 1년을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한다. 건전한 성인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잠시 자기 고민의 시간을 갖는 것이 이후의 중퇴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국가가 에프터스콜레에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교육예산 낭비를 막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4)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라는 이름의 성인을 위한 학교도 있다. 이후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일찌감치 받아들여 북유럽 고유의 고등교육기관이 되었다.5) 폴케호이스콜레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이나 직업을 갖기 전의 청년들이 많이 다닌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나 혹은 직장을 잠시 쉬는 사람들이 재충전의 의미로 다니기도 한다. 노인을 위한 학교도 있다. 이는 덴마크 근현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콜라이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그는 학교가 직업훈련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삶의 깨달음을 주는 곳이 되기를 원하였다. 즉 자신에 대한 이해, 자기 삶에 대한 이해를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룬트비의 철학에 따라 폴케호이스콜레에서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학습하지 않는다. 직업교육도 일절 하지 않는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다른 학교와 경쟁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졸업장이나 학위는 없다.6)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학생들이 섞여 공통 관심사를 나누고, 여러 가지 문제를 다각도에서 논의한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공동체 안에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세상에 이바지하는 지혜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만들어간다. 삶의 방향을 깨우치고,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폴케호이스콜레를 인생 학교라고 부르는 이유이다.7)  



▪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행복의 길

아이들과 진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대부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직업이 좋다, 어떤 학과가 좋다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룬다. 특정 직업이나 학과를 놓고 점수 등급에 따라 대학 정보를 수집한다. 하지만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다운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제일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질문 없이 겉면만 건들고 만다. 여기에 부모님이나 선생님, 혹은 사회에서 제시하는 여러 말들이 합세한다. 학교도 사회도 ‘나’에 대해 스스로 물어볼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 스무 살이 인생을 결정짓는 나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급해지면 자신을 들여다볼 틈이 없어진다.  


앞만 보고 내달리게 하는 교육은 정작 스스로 자기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은 키워주지 못한다.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자신을 놓치고 허상을 좇는 데 혈안이 되는 것과 같다. 입시와 취업으로 정신없이 달리느라 자신에 대한 질문을 미처 하지 못했다면, 잠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뒤늦게 공허한 일상을 만나지 않도록 삶을 길게 보고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학교와 사회는 이 과정을 충분히 겪을 수 있도록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마음에 남겨지도록 해주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격을 온전하게 완성할수록, ‘자신을 잘 꿰뚫어 볼수록’ 더 강해진다고 하였다.8) 온전한 인격, 강한 인격은 무엇일까.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중심을 잘 세우고 단단하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 각자가 나답게,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행복이 다가오지 않을까. 당당한 삶의 주체가 되어 많은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계속되는 것이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사회가 제시하는 목표를 좇아 달리느라 자기 자신은 뒷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모습이 다음 세대에게도 세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추고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 참고문헌

1) 잡코리아. MZ세대 신입사원 10명 중 3명, 입사 1년 안돼 짐쌌다. 2021.11.11. https://www.jobkorea.co.kr/goodjob/tip/view?News_No=19299&schCtgr=0&TS_XML=

2)  『퇴사학교』. 장수한 외. 알에이치코리아. 2016. p.22-23

3)  『갭이어 쫌 아는 10대』. 박승오. 풀빛. 2021. p.22

4)  자유학교. jayuskole.net

5)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오마이북. 2015. p.250

6)  andersen. [덴마크 자유학교] 인생을 위한 학교. Naked Denmark. 2017. 03. 10. http://nakeddenmark.com/archives/8406

7) andersen. 한국형 폴케호이스콜레 ‘자유학교’ 문 연다. Naked Denmark. 2017. 11. 29. Naked Denmark http://nakeddenmark.com/archives/9549

8)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나무생각. 2016. p.97

이전 04화 우리 집에 호텔 투숙객이 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