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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Apr 24. 2023

질문을 안 하는 거야, 못하는 거야?

시간을 줘야 생각을 하죠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개최국을 언급하며 한국 기자들에게 먼저 질문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드리고 싶군요… 누구 없나요?”

 하지만 이어진 것은 정적.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중국인 기자가 손을 들었다. 오바마가 재차 한국 기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한국 기자들은 질문하지 않았다. 이 장면은 그 후 온라인상에서도 오랫동안 회자하였고, 세계적으로도 쟁점이 되었다. 질문을 안 한 것인가, 못한 것인가! 1)






▪ 뭘 모르는지 몰라요

EBS 다큐멘터리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에서는 이 장면을 주요하게 다루었다.2) 질문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멀리 국제 회의장까지 갈 필요도 없다. 교실에서 질문이 나오는 일은 매우 희귀하다. 어린 학생들은 그나마 해맑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질의응답 시간은 침묵으로 채워진다.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게 부끄럽거나, 질문 내용에 대한 평가가 두려울 수도 있다.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 때 주변에서 던지는 시선을 생각해 보면 그런 두려움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을 들여다보면 질문하는 일은 부끄러움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 상태일 때가 더 흔하다. 뭘 질문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주어진 보기에서 옳고 그른 답을 구분하는 일은 많이 하지만 정작 질문할 기회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질문은 자기 생각을 들여다보았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답을 내는 데 급급한 교실에는 ‘왜 그렇지?’라는 의문을 가질 여유가 없다.


이에 대해 엄기호는 한국 교실에서 질문이 억압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나 한국 교실은 늘 아는 것이 무엇인지만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뭘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질문이 불가능하다. 거기에 ‘모르는 것’은 ‘틀린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질문을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3)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 낼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요즘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다. 메타인지는 ‘어떤 사실을 안다’를 의미하는 단어 ‘인지(cognition)’에, ‘한 단계 더 높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 ‘메타(meta)’가 붙은 단어이다. 초(超)인지라고도 한다. 인지를 뛰어넘는 인지, 즉 자기 생각을 한 단계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능력이다. 대표적으로, 자신이 제대로 이해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이해 못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 메타인지의 본질은 스스로 겪는 생각의 과정

최근 들어 메타인지가 성적이 잘 나오게 하는 방법과 관련되어 이야기되고 있다. 일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메타인지 능력이 있는 학생은 자신의 학습상태를 잘 알고 있다. 즉 자기 능력이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학생은 학습 정도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고, 그에 맞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어떤 공부가 더 필요한지, 혹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안다. 따라서 스스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공부할 수 있다. 그야말로 자기주도학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메타인지가 학습의 중요한 요소로 뜨면서 메타인지를 키울 방법들도 많이 소개된다. 그러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것보다는, 잠시 멈추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자기 생각을 돌아볼 때 메타인지 능력이 큰다. 따라서 문제집을 풀며 훈련하거나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듣는 것은 메타인지 능력을 높이는 것과 거리가 있다. 스스로 겪는 생각의 과정 그 자체가 메타인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학원과 과외로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도 학업성취도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이유 중 하나는 부족한 ‘숙고’의 시간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서, 학생들이 사실들을 배우는 데만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느라 정작 사고를 할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집어넣기만 하고 생각할 시간은 없다는 의미이다. 배운 것 없이 사고만 하는 것은 공허하다. 하지만 정보만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사고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4) 학습에 들인 시간 자체보다는, 배운 것을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의 중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혼자서 막무가내로 공부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동떨어진 자리에서 벽을 치고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는 배운 것을 스스로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의미한다. 학습 일기를 작성하며 무엇을 배웠는지 되새겨보거나, 마인드맵으로 개념을 구조화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단순하게는 잠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던 시간을 잠시 멈추고 그 정보들을 곱씹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는 값비싼 사교육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자기주도학습의 본디 모습이기 때문이다.  



▪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메타인지 능력을 키우는데 큰 장벽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생각할 틈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일상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고, 생각할 여지도 없다. 들통을 채우듯 학습에 열을 올리기보다 아주 잠깐의 여유가 오히려 아이들의 생각이 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메타인지 학습법』에서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소개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객관식 문제를 풀게 하였는데, 문제와 선택지 사이에 ‘짧은 시간차(delay)’를 둔 것이다. 학생들은 문제를 읽고 나서 몇 초 지난 뒤에 선택지를 보게 된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스스로 정답을 유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저자는 객관식 시험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문제와 선택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5) 


생각해 보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짧은 몇 초를 그동안 주지 못하고 있던 셈이다. 게다가, 생각을 다양하게 펼쳐보기도 전에 정해진 보기를 내밀면서 범위를 제한시켜 버렸다. 곰곰이 들여다볼 여유와 여러 번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단시간 안에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조급함까지 더해지면 생각의 틈은 더욱 좁아진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일상에 의도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 그 시간에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학습의 효과를 높인다.


무한한 정보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학습에 관해 이야기를 했지만, 나아가서는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되어 있다.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돌아보고, 비판적인 사고로 정보를 판단할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메타인지는 미래의 인간에게 필요한 유일한 능력일지 모른다는 평가가 많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고 성장하기 위해 중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자신을 잘 알고 조화롭게 통제할 수 있을 때, 학습 능력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다. 생각을 들여다보고 질문할 수 있을 때 온전히 자기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앞으로 인간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문제를 푸는 것으로는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이 이미 개별 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바로 질문을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즉 인간의 장점은 과제 ‘설정’ 능력에 있는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탐구하게 되고 이는 곧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즉,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바로 미래형 인간이다. 바쁘게 답을 맞히는 것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느리지만 잘 들여다보는 일, 멈춰 서서 질문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고요한 생각의 시간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참고문헌

1) 이정환 기자. 미디어오늘. 질문 안 하는 기자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2014.02.03.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621

2) EBS 다큐멘터리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5부. 말문을 터라

3) 엄기호. 시사IN. ‘쪽팔릴까 봐’ 질문 못하는 한국의 교실. 2013.10.09.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38

4)『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나무생각. 2016. p.95

5)『메타인지 학습법』. 리사 손. 21세기북스. 2019.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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