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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Apr 30. 2023

우리 집에 호텔 투숙객이 산다

독립적인 개인이 모일 때 가족의 의미도 살아나는 것


늦지 않게 깨워주는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식사를 마치면 그대로 일어선다. 남은 그릇이나 쓰레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뒤처리가 된다. ‘배고파’ 한마디에 간식이나 야참이 제공되고, 불편 사항이나 원하는 것을 말하면 제까닥 처리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픽업 차량이 온다. 말끔히 정리된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든다. 


     

     

건강한 독립이 교육의 목적이다

요즘 아이들이 집과 가족을 대하는 모습이 마치 ‘호텔 투숙객’과 같다는 말이 있다. 하루 일상이 다른 사람의 노고로 이루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여기에는 자녀 양육과 교육에 많은 에너지를 쓰는 부모들이 함께 있다. 일상에 불편함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모습이 세심하게 돌본다는 느낌을 넘어설 때가 있다. 성인이 된 뒤에도 ‘학부모’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종종 자녀의 직장 상사에게도 부모로서 직접 연락한다고 한다. 매니저라도 되는 듯 자녀의 삶에 ‘노심초사’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오히려 삶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힘이다. 타인의 힘으로 사는 것이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세상에 제 몫을 하며 건전하게 독립하는 것은 교육의 목적 중 하나이다. 독립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온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딸린 사람이 아니라 독자적인 한 개인으로 세상에 대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경제적 활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은 물론 생각이나 판단의 중심이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거기에 정서나 감정적인 면도 포함된다. 이는 법적으로 성인이 된 어느 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에서는 아이들이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식구들과 집안 살림을 나눠 함께 한다. 청소를 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원을 관리하는 등의 일도 어린이의 능력에 맞게 담당한다.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 동시에 가족 구성원으로서 나이에 맞는 역할을 나눠가지며 자기 생활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13-15세가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를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적극 권유한다. 


‘자립’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중요하다. 아르바이트를 긍정적으로 여기며 권유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자립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1) 또한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만 18세 이후에는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 모두가 성인으로 대한다. 부모가 더 이상 자녀의 삶에 관여할 권리가 없고, 문제가 생겨도 동의 없이는 부모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한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의 태도는 개인의 의지와 더불어 개별 국민을 독립된 존재로 보는 사회 문화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독립된 개인을 보는 국가 제도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의 저자 아누 파르타넨은 핀란드에서 태어나 자랐다. 미국 남성과 결혼하고 미국에서 살게 되는데, 그 덕분에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북유럽 사회의 특징들을 새롭게 보게 된다. 사회적 제도의 차이가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의 형태를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저자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학습을 관리하며 좋은 학교와 과외 등을 알아보느라 바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심리적 압박도 받는다. 입시 때가 되면 경쟁의 한복판에 부모들이 서서 긴장한다. 자녀가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비싼 등록금을 내주고, 생활비를 보내준다. 그러다 보니 자녀의 진로 결정에 관여하고, 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참견하게 된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의존하고, 부모는 자녀의 양육과 교육 문제로 애를 쓴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서는 의료비 등의 문제로 부모가 자녀에게 의존한다. 아누 파르타넨은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미국에서의 경험이, 마치 과거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2) 


북유럽의 제도와 문화는 이와 대조적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설계된 복지 제도를 가지고 있다. 행복한 ‘개인’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교육, 의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부부의 소득은 따로 관리하고 세금도 각자 따로 낸다. 부부가 되었다고 하나로 묶어 생각하지 않고 각각의 개인으로 본다. 어린이 역시 부모에게 속해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개인으로 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부모의 의견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간다.3)


핀란드는 17세부터 소득과 같은 기준에 따라 약 100~250유로(약 13~33만 원)의 학생 수당을 받는다. 이때 학생 수당은 부모가 아니라 학생 개인에게 전달한다.4) 한국 학생의 교육지원금이 부모에게 전달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대학생이 되면 등록금이 없고 심지어 교육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생활비도 충당이 된다.5) 따라서 부모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 한 개인이 교육받는 일에 부모의 경제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부모도 늦은 나이까지 양육이나 자녀교육에 매인 삶을 살지 않는다.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노인에게는 노인수당과 국립 요양소가 제공되기 때문에 늘그막에 성인 자녀에게 기댈 필요가 없다. 



▪ 진정한 사랑은 의존이 없을 때 가능하다

국민을 독립된 ‘개인’으로 보는 북유럽 제도의 바탕에는 ‘스웨덴식 사랑 이론(swedish theory of love)’이 있다. ‘사랑 이론’이라니 생뚱맞지만 실제로 2011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스웨덴 역사학자 라르스 트래가르드(Lars Trägårdh)가 발표한 이론이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 의존하지 않고 평등한 관계의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이 이론의 요지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교류는 서로 의존적이거나 권력관계가 있으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것이 부모와 자녀 사이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관점은 스웨덴을 넘어 북유럽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자녀를 독립된 사람으로 보는 동시에 스스로 책임지는 인간으로 자라도록 기른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이 사랑 이론에 따라 가족 간에 종속이나 의존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제도를 만든다.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떤 형태이든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너무 강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국가가 가족에게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부부는 서로 경제적으로 기대지 않고, 독박육아와 같이 치우친 부담도 가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권리를 존중해 주며 일찍부터 스스로 자립하도록 권유한다. 그럴 때 비로소 가족은 사랑과 지지 같은 온전한 가치로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6)  


이처럼 북유럽 아이들이 의연하게 독립할 수 있는 이유는 사회적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의 혜택이나 기회가 평등하게 제공되므로 운이 좋아 얻는 배경들이 의미가 없어진다. 가족이 있거나 없거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상관이 없다. 국가가 개인을 기준으로 제도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가정환경이나 인맥 등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제도가 어떤지에 관심을 둔다. 


『이상한 정상가족』에서도 스웨덴식 사랑이론을 언급하며 한국의 제도와 비교하고 있다. 삶은 개인적으로 살되 해법은 집단주의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살면서 부딪치는 교육, 육아, 주거 등 갖가지 문제들은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7) 즉,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에 대한 탓을 넘어,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서로가 의존하지 않고,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 삶을 가꿔나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존하는 삶이란 결국 종속된 삶이다. 부모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일상을 꾸려가는 것은 삶의 주인으로 서는 첫 번째 단계이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자녀, 그런 자녀가 늘 걱정이라 애를 태우는 부모. 각자의 삶이 바로 서지 못하고 있음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가 먼저 자립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녀가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가꾸는 연습을 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부모 역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 


더불어 누구나 홀로 서는 것이 두렵지 않도록 사회적 바탕도 마련되어야 한다. 자립이란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차곡차곡 쌓이고, 이를 사회가 뒷받침해 주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설 수 있는 개인으로 모일 때 가족은 더 평등하고 든든해진다. 죄책감이나 조급함 없이 서로를 보는 관계, 단단한 개인이 모여 서로의 삶에 응원을 보내는 사이, 의존이 아닌 지지로 동반자로서 함께하는 삶. 그게 가족이다.




 ※ 참고문헌

1) <독일․프랑스․덴마크의 청소년활동정책 현황과 과제(세미나 자료집)>. 한국 청소년 정책 연구원.  2013.8.20. p.86

2)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아누 파르타넨. 원더박스. 2017. p.44

3)『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동아시아. 2017(구판).  p.215 

4)『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하수정. 한빛비즈. 2017. p.111

   『평등,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 오준호. 생각과 느낌. 2019. p.95

5)『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황레나, 황선준. 위즈덤하우스. 2020. p.103

6)『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아누 파르타넨. 원더박스. 2017. p.74

7)『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동아시아. 2017(구판) p.221,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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