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지우다 종이를 찢어먹었다. 원하는 대로 그려지지 않아 그리고 지우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지우는 것에 더욱 정신이 팔려 종이가 으그러지는것도 몰랐고, 지우개는 종이를 무자비하게 밀어내었다. 결국 종이의 한 부분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나는 찢어진 부분의 한쪽 면에 투명한 테이프를 붙였다. 자세히 보면 상처는 남아있지만 그 부분을 자세히 보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다.
사람 일도 마찬가지다. 지우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지우려고 하다 보면 일그러지고 상처만 남을 때가 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나의 면에 적당한 대안을 붙여놓는다.
누군가는 상처를 꺼내고, 살펴보고, 돌봐주라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건들지만 않으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테이프로 붙여놓은 마음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 테이프도 언젠가 떨어지겠지. 예기치 못한 충격에 더 크게 찢어질 수도 있겠지. 상처를 지키기 위해 상처를 보여주어야 하는 모순. 혹은 꼭꼭 숨겨놓는 것도 제 맘대로 안되는 인간의 으그러짐.
무엇이 맞는 걸까. 정답이란 없는 건데도 계속 정답을 갈구하며 지우개질을 하는 사람들. 이번에도 알 수 없는 기록을 해가며 나는 앞으론 지우개질을 조금 더 살살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