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장님이 어쩌다 문고리 한번 잡다

세입자 고르기는 운이 99.9%

by 하얀 나비


제가 그린 습작 입니다



렌트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전화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세입자들의 전화는

언제나 좋지 않은 소식을 실어 왔기에....



주로 렌트비가 며칠 늦겠다거나

이사를 나가겠다는 말이거나

집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었다.



이사를 나가겠다고 하면 광고를 내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고쳐 주어야 했다.



심지어 변기가 막혔다거나

싱크대나 샤워실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연락도 받았다.



그런 일은 원래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만

원래 그랬었다고 하면서

우리가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또다시 21층 아파트에서 문제가 생겼다


세입자가 나간다고 해서 이사를 나간 뒤

점검을 했는데 이중으로 되어 있는 커다란 유리창 아래쪽에 무언가에 부딪힌 듯 작은 홀이 생기며 금이 가 있었다



처음에는 세입자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아들이 그 방을 써서 몰랐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들이 사람을 고용해서 고치고 그 비용을 내야 했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백인 남자 두 명이 왔다.


아파트 26층 옥상에 줄을 묶고


벽을 타고 내려와 21층 창문을 교체했다.



우리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그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그들이 베란다를 통해 안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도 모르게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얼마 후 또 다른 아파트에서 문제가 생겼다.


관리소에서 주인인 우리에게 편지가 왔다


세입자가 개 목줄을 하지 않고 건물을 돌아다녀서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었다



“개?”



우리는 개를 키우는 것을 계약서에 허락한 적이 없었다.

바닥이 마루로 깔려있어서 개오줌으로

오염이 되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애완용 동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으면 개를 키울 수가 없다.



주인이 애완용 동물을 허락한다 해도


애완용 동물로 인한 손상에 대한

보증금을 따로 내야 한다.



그들은 몰래 개를 키우며 우리의 방문을 우려해

출입문 열쇠를 바꾸고 집안에는 cctv까지

설치해 놓고 있었다.



렌트비만 제때 내면 우리는 절대 방문하지 않아서

전혀 알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들이 벌금 통보를 받은 뒤

이사를 하겠다고 해서 집안을 확인해 보니

마루는 개 오줌으로 찌들어 군데군데 까맣게 마루색이 변해 있었고 벽과 문 구석구석 개가 이빨로 만든 상처가 많았다.



놀라운 건 대형 유리 어항이 설치되어 있었고 작은 물고기가 몇백 마리였다.



만약 어항의 물이 쏟아진다면 이것 또한 대형사고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도 세입자는 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않으면 돈이 없어서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세입자를 구할 때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렌트비를 잘 내줄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집주인의 연락처와 신용등급이 나온 서류를 받더라도 그걸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다.



전주인에게 전화를 하면 당연히

좋은 세입자였다고 말해야 그들도 이 세입자를

내보낼 테니 믿을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전주인이 그 말에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세입자들은 계약 전까지는 천사 같은 얼굴을 하기 때문에 이것도 판단하기 어렵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과의 다툼은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아들이 말했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아파트를 비우는 게 최고의 선택이라고 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분쟁위원회에서

힘들게 이겨봤자 돈이 없다고 하면

돈을 받아낼 방법 또한 없다.

더 이상 아파트를 손상시키지 않고 나가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일인 거다.


우리는 마루를 교체하고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22년 동안 사연도 많았던 그 아파트를 팔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데

가지 하나를 잘라내면 조금은 바람이 잦아들까 싶었다.


한 번은 세입자가 음식물을 끓이다가

깜빡 잊고 외출을 했다.

집안에 연기가 가득하니 센서가 작동하여

알람이 울렸고 소방차가 왔다.


소방관이 도어록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사태를 수습했다.


우리가 연락을 받고 갔을 때

집안은 냄새로 가득했다.

불이 안 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아파트를 팔려고

세입자에게 연락을 했다.


세입자는 부동산의 방문을 자꾸 미루더니

자기가 먼저 나가고 팔면 어떻겠냐고 했다.

우리는 흔쾌히 허락했다.


밴쿠버 세입자와 집주인과의 법은 매우 까다롭다.

집을 팔거나 집주인이 들어와 살더라도

계약기간이 끝난 후나 끝나는 날짜에 맞춰

세입자에게 3달 전 문서로 통보를 보내고

나갈 때는 세입자에게는 1달치 렌트비를 돌려주어야 한다.


매매가 이루어져도 3달 후 새로운 주인이 직접 살아야만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새로운 주인도 현재 세입자를 다른 목적으로

내보낼 수 없다.


원래는 4개월 전 통보를 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법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3개월 통보로 바뀌었다.


집을 매매하고 자기 집을 3개월 만에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새로 산 집은 4개월 후에 들어갈 수 있으니 그동안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되니 법이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집을 사려는 사람은 현재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집을 사고 본인이 들어와 살려고 하더라도

세입자가 못 나가겠다고 하면

이 또한 머리 아픈 일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은

세입자와 협상을 하여

몇 달 치 렌트비와 이사비용을 쥐어주고 내 보낸 뒤

판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입자가 이사 나가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집주인에게 1달 전 통보를 하고 그냥 나가면 된다.

집주인은 1달 렌트비를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하는 게 반가운 소리였다.


보증금 전체와 페인트를 했다고 해서

1달치 렌트비와 맞먹는 페인트비용

모두를 지불했다.


세입자가 너무 고맙다고 하며 네가 제일 좋은 집주인

이라고 나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집을 살펴보니 개를 키웠던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베이스보드를 개가 물어서 코너마다 동그랗게

되어있고 냉장고에서는 물이 줄줄 흐르고 등은

떨어져 간신히 줄에 매달려 있었다.


한 달 동안 정리를 한 것이 이 정도니

부동산에게 문을 열어줄 수 없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보통의 세입자라면 당장 연락이 왔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낮은 렌트비와

개의 존재를 숨겨야 했기에

우리의 방문을 원하지 않았다.


마루도 군데군데 개오줌의 상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 도어록을 교체했다고 새로운 열쇠를

우리에게 건넸던 일이 생각났다.


우리는 개로 인해 상처 난 부분을 수리하고

페인트도 일부 다시 했다.


가전제품도 새것으로 교체하고

부동산을 통해 팔려고 내놓았다.


모든 일이 잘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노란 조끼를 입은 법 집행원이 우리 집 문 앞에 서류를 들고 서 있었다


세입자가 분쟁위원회에 판결을 요청한 것이다.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한 게 아니고

렌트비를 올려서 받으려고 자기들을

부당하게 내보냈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한 달치 렌트비도 아니고 무려 1년 치

3만 불이 넘는 렌트비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 세입자는 렌트비를 매달 일주일 전에

꼬박꼬박 보내왔었다.


그게 늘 고마웠고 3년 동안 한 번도

뭘 고쳐 달라는 말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렌트비를 올리지 않았고

그들은 현재 시세보다 천불 가까이 싸게 내고 살았다.


최고로 착실한 세입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캐나다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들이 많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1년 치 렌트비를 테난트에게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20년 넘게 렌트를 줘 봤지만 분쟁위원회에 가는 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실수도 하고 우왕좌왕 마음고생이 심했다.


분쟁위원과 세입자와의 삼자 통화를 앞둔 어느 날

팔려고 내놓은 아파트를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가 어느 층에서 멈추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머리가 수박만 한 핏불이 얼굴을 디밀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피할 곳을 찾아 각자 구석진 코너에 붙었다.


그런데 머리를 들이밀었던 핏불이 무서운 힘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지만 같은 힘으로 뒤에서

당겨져서 타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결국 개에게 끌려 얼굴을 보인 사람은 전 세입자였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개를 끌어서 결국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 당황하여 필사적으로

개를 끌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났다.

같은 빌딩으로 이사를 했다고 했었다.


어쩌면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어쩌다 들린 아파트에서 같은 시간에 엘리베이터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과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판결이 나기도 전에 내놓았던 아파트는

좋은 값에 팔렸다



3년 넘게 매달 렌트비를 받을 때마다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고

별일 없는지를 물었지만


“no problem”이 언제나 답이었다.


우리에게 개를 들켜서 그가 분쟁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헛된 기대를 했다.


그러나 전화로 삼자 연결되어 들은 그의 목소리는 판결위원의 질문에 단호했고 판결위원을 압도했다.


우리가 증거를 분쟁위원회에게만 보내고

세입자에게도 보내야 하는 걸

몰랐어서 판결위원에게 질책을 받았다.


세입자는 뭘 질질 끄냐고 자기는 바쁘니

빨리 판결을 해달라고 했다.

오늘도 회사를 못 갔다고 불평을 했다.

우리는 이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전화 속의 말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판결위원은 고맙게도 우리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몇 주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판결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분쟁위원회에서는 집주인 말은 듣지도 않고

무조건 세입자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났었다고

경험을 말해 주는 쪽과


아무리 그래도 증거를 잘 준비하면

공정하게 판결이 날 거라는 쪽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판결이 났다.



“혐의 없음 재심의 신청 불가”


당연한 결과였지만 워낙 세입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우선시하니 알 수가 없었었다.

집주인이 억울한 사연들도 많았다.



그늘이 되어 주었던 나뭇가지를 이제는

바람 소리를 재우기 위해


가지를 하나씩 잘라 나갔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누군가가 늘 내 곁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돕고 계셨다고.



그때는 고통처럼 느껴졌지만

지나고 나면 그 일들이 결국

나를 더 좋은 길로 이끌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하고 집착을 내려놓는다.



그 사건이 끝났을 때 세입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파트를 팔고 나서

얼마 후부터 아파트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그 뒤로는 싼값에도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파트를

제 때 팔지 못했을 것이다



주위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부동산 투자 전문 가세요?

어떻게 그런 타이밍에 사고팔 수가 있어요”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전문가는 무슨, 장님이 어쩌다 문고리 한번 잡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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