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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바스 Jan 12. 2022

달리기 (1)

달리기가 유행이라면 유행이다. 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달리기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눈에 띈다. 그들은 하나같이 달리기를 예찬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친구 Y가 달리기 코치가 되어주는 앱이 있다며 소개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조금도 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앱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30분은 거뜬히 뛰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5분, 아니 10초를 뛰는 일도 웬만하면 거절하곤 했다. 그러니까 숨 가쁜 일이라면 질색하는 이런 나도, 달릴 수 있게 되는 마법같은 '무언가'가 세상에 존재한다는건가.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그날은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반 아이들이 전부 달리기 시합에 출전했던 기억이 난다. 막 달리기 시합을 끝내고 관중석으로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선화는 세상 구경 다 하면서 뛰는구나!”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던 것이다. 내 뒤에는 몇 명이나 있는지 그런 게 궁금했을 터였다. 나름대로 재빠르게 발을 구른 것 같은데, 보는 사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그리 빨리  뛸 수 있는 애는 아니라는 것을. 그 후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체력장마다 키와 몸무게는 조금씩 늘어났지만, 달리기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달리기 실력을 좋아지게 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달리기만 느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굉장한 폐활량을 자랑했는데, 남들보다 현저히 그 기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학교 다니던 시절, 운동장 네댓 바퀴를 뛰어야 하는 날에는 숨이 차서 죽을 것만 같았다. 뛰는 것은 물론이고 계단을 오르는 일을 특히 고되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면 아빠는 놓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넌 정말 운동부족이야- 하고. 아마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고, 특별히 사정이 있지 않다면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 애였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정말 행위인데도 전혀 하지 않고 용케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내게는 달리기가 그랬다. 지각이나 애타는 강요가 아니라면 뛰지 않고 용케도 살아왔다. 걷는 것도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차라리 종일 걸으라지, 나는 스스로를 5분도 뛸 수 없다고 여겼다. 평균치보다 저 아래 머무는 폐활량의 기능, 애초에 없었던 빨리 뛰는 재능.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 없음, 거기에 막 영구치가 세상에 나올 무렵 나는 단 한 번의 달리기로 6년 동안 치아교정기를 달고 살아야 했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선뜻 달리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핑계가 되어주곤 했다. 


그런데도 어쩐지 달리기의 세계가 나를 향해 계속 손짓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언젠가 Y의 말이 떠올라 런데이를 다운로드해 둔지도 꽤 되었다. 매일 달리기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교토에서 태어났다고 하던데, 그런 작은 이유로도 한번 달려보자는 쪽으로 마음으로 조금씩 기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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