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쓰는 사람들을 만난다. 대개는 쓰기 시작하려고 마음먹었거나, 쓰는 사람들이다. 이름도 나이도 서로 모른다. 멀리서나마 그들과 유대하며 나는 동료가 생겼다고 기뻐했다. 어떤 이야기는 어떤 삶 속에서 쓰인 것인지 열렬히 궁금해지고, 또 어떤 이야기는 감탄을 부른다. 나는 그들에게 기대어 읽고, 쓰고, 생각한다. 그렇게 100일간의 시간이 마무리되어간다.
써 내려간다는 것은 대체로 힘이 든다. 이를테면 용기 같은 종류의 힘이다. 유독 용기가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 꺼내놓기조차 두려워서 한참을 망설이게 되는 이야기들. 정체는 모르지만 대단하고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뱉어내는 일은 이름 모를 숲을 혼자 걷는 일 같다. 고개 숙인 풀들이 겨우 누군가 지난 흔적을 말하고, 그 길 위에서 한 걸음씩 발을 떼어 나를 옮긴다. 그 이름 모를 숲을 걷기로 결심했으면서도 되돌아가기도, 앞으로 나가가기도 두려워하며 일단 걷는다.
머릿속에 떠도는 말들을 겨우 주워 담아내면, 후련하다기보다는 일단 꺼내 놓은 스스로를 칭찬하게 된다. 잘했어. 입 밖으로, 손끝으로 내밀어지기까지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그 이야기들은, 후련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언젠가 나는 너무 괴로워서, 괴로움을 이기는 방법을 더는 알 수가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 이메일을 열었다. 다행히 컴퓨터를 켤 힘이 내게 남아있었다. 오래된 아이디를 찾아 이메일에 로그인을 하고, [내게 쓰기] 버튼을 눌렀다. 그건 스스로 내 약점을 꾹- 꾸-욱 눌러보는 느낌이었다.
대단히 아플 것 같은, 그래서 왠지 처량한 그 기분을 딛고 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래서 내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꾸며내지 않고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화가 난 것은 화가 난대로,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썼다. 나중에 읽을지도 모를 내가 혹시 나를 비웃는다거나 닭살이 돋는다거나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양 손끝이 멈칫했다. 마음대로 하라지.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의식할 여력이 없다. 미래의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 바 아니지.
노트가 아니라 굳이 왜 인터넷에 접속해 그 버튼을 눌렀을까. 가끔은 미세하다고 말할 만큼 작은 행동이나 말들이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그 버튼이 나를 살린지도 모른다. 나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메일함을 찾았다. 읽지 않는 메일은 클릭할 수 없었다. 클릭은커녕 눈길도 줄 수 없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교묘히 눈길을 돌려 [내게 쓰기] 버튼을 찾아 눌렀다. 온몸을 기대어 폭 안길수는 없어도, 두 손가락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 적당한 안식처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자주 혼자서 썼다. 종종 함께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겨울 동안 함께 쓰던 지난 100일간의 여정이 저문다. 이야기는 나를 두드렸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내 안온한 날이 조용히 진동했다. 하루키의 북소리가 내게도 비슷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떤 날은 글쓰기를 시작할 수조차 없어서 곤란한 날도 있었다. 진짜 나보다 더 대단해 보이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래도 애썼다. 더 잘 말하고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단어를 찾고, 어지러운 문장들을 헤맸다. 성실하게 써낼 수는 없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완벽하지는 못했어도, 그래서 실패라고 불렸어도 괜찮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면 그걸로 됐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학교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20년 넘는 동안 봄마다 새 학기를 맞이했으니 내게도 3월은 시작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달이다. 시작을 부추기는 말들이 좋다. 시작하도록 권유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에너지가 차오른다. 그건 마치 너도 할 수 있다고 꾀어내는 말 같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시작은 새 일기장을 쓰는 날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오래된 일기장을 끝까지 다 쓰고 난 후, 새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것을 신성한 의식으로 여기곤 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시작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삶을 산다. 어쩐지 지루한 매일이 반복되다 보면 하루하루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들면 어쩐지 기운이 난다.
새 일기장을 펼치는 마음으로 지난 이야기를 덮는다. 비대한 자아라는 말을 들었다.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릴 만큼 우리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말이다. 다른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 없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잘난 체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유독 자아가 뚱뚱하단다. 뚱뚱한 자아는 왜곡되기 마련이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종종 비껴가지만. 과도하게 탓하거나 의식하지 말자. 잘난 체 하지 말자. 자, 새 봄이 시작된다. 날씬한 자아로 새 글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