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수집함 만들기 #4
어떤 형태의 아이디어 수집함을 만들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다. 지금부터 설명할 규칙을 천천히 읽어보고 정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디어 수집에 관한 규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아이디어 수집함의 목적이다. 아이디어 수집함의 첫 번째 목적은 '불쑥 떠오른 아이디어를 모아두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는 뇌를 도와, 기록으로써 두 번째 뇌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아이디어를 다시 훑어보기'다. 훑어보기를 통해 모은 아이디어들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그럼 첫 번째 뇌와 훑어보기를 도울 규칙들에 대해 알아보자.
: 하나의 공간에는 하나의 아이디어만
아이디어 수집함에 보관할 아이디어는 하나의 공간에 한 가지 아이디어면 충분하다. 하나의 공간이란, 손바닥만한 작은 수첩의 한 면(page) 또는 보다 큰 크기의 노트를 적당히 분할한 '한 칸'을 말한다. 이 공간 하나를 '아이디어 블록'이라고 부르자. 아이디어 블록을 쌓아나가기 위해서는 수첩보다 비교적 큰 노트를 추천한다. 가장 추천하는 것은 A5 또는 B6 크기의 노트다. 너무 크면 휴대하기 어렵고, 너무 작으면 한 몇에 너무 적은 수은 블록만을 만들게 된다. 내가 가진 노트는 B6의 크기(128 x 182mm)로 A4용지의 절반보다 약간 작은 크기다. 한 면을 여덟 칸으로 나눠, 여덟 개의 아이디어 블록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공식적인 아이디어 수집함으로 사용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한 칸을 할애해 적어두기만 하면 된다.
막 떠오른 아이디어는 짧고, 단편적인 경우가 많다. 대단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막상 손으로 써보면 생각보다 쓸거리가 별로 없다. 이렇게 짧은 아이디어를 잡아두기 위해 노트 한 페이지를 전부 할애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주제나 특성이 다른 아이디어끼리 섞어 쓰는 것도 그리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다. 수집한 아이디어를 찾아볼 때, 즉 아이디어를 훑어볼 때 각각의 아이디어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수첩보다 큰 A5크기 정도의 노트를 추천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한 면에 하나의 아이디어블록이 있는 것보다 한 면에 여덟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 편이 훑어보기의 효율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한 칸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쓰고는 것이 좋고, 칸이 모자라면 두세 칸을 할애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쓸거리가 많아 서너 개의 블록에 담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룰 것이다.
: 최소한의 프레임 활용하기
앞서 말한 것처럼 아이디어 수집함의 목적 중 하나는 '훑어보기'다. 최소한의 프레임, 즉 양식에 맞춰 아이디어를 수집하면 더 빠르고 정확하게 훑어보기가 가능해진다. 최소한의 프레임이란, 아이디어 블록 안에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함께 써넣는다는 뜻이다. 막 떠오른 멋진 생각들을 규칙에 맞춰 수집하는 일은 사실 꽤 번거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켰을 때와 아닐 때 효용차이가 크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아이디어 블록의 요소들
: 날짜, 제목, 태그, 출처, 결과
각각의 아이디어 블록은 날짜와 제목, 태그, 출처, 예상되는 결과를 함께 적어 넣자. 날짜는 아이디어블록의 생 성일을, 제목은 아이디어 전반에 관한 요약을 말한다. 예를 들어 클립보드 제작에 관한 아이디어를 만들었다고 해보자. 제목란에 '클립보드 아이디어' 정도로 간단하게 쓰기보다는 '만년필 사용자를 위한 게시형 클립보드'라고 쓰면, 이 아이디어를 훑어보는 미래의 내가, 제목만 보고도 어떤 아이디어인지 쉽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
다음요소는 태그다. 태그는 보통 샵(#)으로 표현되며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디지털 세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아날로그 노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태그 클릭을 통한 검색 등 스마트한 기능을 구현할 수는 없지만, 앞서 소개한 제목요소와 마찬가지로 훑어보기에 도움이 된다. 제목에 미처 쓰지 못한 아이디어의 범주나 내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특별한 키워드를 써넣으면 된다. 태그를 적어 넣은 아이디어블록은 아이디어 수집함 비우기 단계에서 제목과 태그를 먼저 확인하며 내용까지 읽어볼지 아닐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출처다. 이 아이디어 씨앗을 가꾸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출처가 있는 아이디어라면, 출처를 적으면 진짜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어딘가에서 힌트를 얻어 발전시킨 아이디어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멋진 문장이나 영감을 수집하고 있는 문학작가라면, 방금 떠올린 아름다운 문장이 진짜 내 것인지, 방금 읽은 책에서 발췌한 것인지 구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표절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아이디어 블록에 날짜와 제목, 태그 그리고 출처를 함께 쓰는 것이 습관화되었다면,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예상되는 결과를 덧붙여 볼 수 있다. 아이디어가 실행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이 상상은 이 아이디어블록의 존재 이유가 된다. 성공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은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을 생성시키고, 도파민은 실행력과 집중력을 쑥쑥 올려준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셈이다. 사실 이과정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빠르게 그려진다.
클립보드에 관한 아이디어 블록을 만들고 있자면, '진짜 이 클립보드가 멋지게 만들어져 내 책상 위에 있는 모습' 이라던가, '만년필 애호가들의 '자랑템'이 되어 인터넷 여기저기 후기가 쏟아지는 모습' 같은 상상이 저절로 든다. 불행하게도 이런 행복한 상상은 다시 상기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 버린다. 분명 아이디어를 적을 때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덜렁 내용만 써놓으면 '내가 이걸 왜 하고 싶었더라?'같은 의문이 생기고 말 것이다. 언젠가 팔아보고 싶은 상품 아이디어라면 '이러이러해서 잘 팔릴 것 같다' 정도로도 좋다.
아이디어블록의 요소들에 관해 설명이 길었지만, 실제로 이런 규칙들을 적용해서 아이디어를 수집한다고 해도 아주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저 좋은 생각이 났을 때 노트를 펼치고, 쓰기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 간단한 그림 덧붙이기
세 번째 규칙은 간단하다. 짧은 그림을 덧붙이는 것이다. 사람은 글보다 그림을 직관적으로 인식한다.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글로 묘사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그려버리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경우가 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모양의 클립보드' 보다 그냥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을 그려버리는 편이 훨씬 빠르다. 앞서 예시로 든 클립보드의 경우, 만년필을 어떤 방식으로 거치할까에 관해서는 떠오르는 이미지나 참고할만한 이미지를 간단히 그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기록의 방법이 된다. 이미지를 간단히 스케치하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아이디어를 다시 생생하게 떠올리는데도 도움이 된다.
아이디어 수집함의 아이디어들은 대개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다. 그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 기대감 등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으면 되돌아보았을 때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머릿속에 똑같은 것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자세한 기록이 가장 유리하다. 그러나 기록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면 그 또한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아이디어는 빠르게 휘발되는 생각이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빠르게 기록하는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수집 단계에서는 되도록 빠르게 기록하고, 다음 단계에서는 아이디어블록들을 훑어보며 최대한 상기하는 것이 아이디어 수집함의 주된 기능이다. 프레임에 맞춰 아이디어블록을 만들고, 간단한 그림을 덧붙이는 일은 '필요한 내용을 빠르게' 기록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다.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어떤 날은 이 규칙들을 모두 적용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디어블록의 요소를 모두 빼놓을 수밖에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 블록도 수집된 아이디어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자, 지금 떠오른 아이디어로 아이디어 블록 만들기를 시작해 보자. 당장 마땅한 노트가 없다면, 포스트잇이나 메모지를 사용해도 좋다. 이렇게 모인 아이디어들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든든한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다. 타이탄*이 자기만의 도구를 적어도 몇 개씩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도 이 아이디어 수집함이 타이탄으로 성장하게 도울 멋진 도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타이탄 : 각 분야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뜻한다. <타이탄의 도구들>(팀 패리스, 토네이도)에서는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61가지 성공 비밀을 타이탄의 도구들로 비유했다.
✔︎ 이전 글 링크
아이디어 수집함 만들기 #1 : 섬광 같은 아이디어가 내 일상을 스칠 때
아이디어 수집함 만들기 #2 :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하지 않는다
아이디어 수집함 만들기 #3 : 아이디어 수집함 만들기
✔︎ 현재 글
아이디어 수집함 만들기 #4 : 아이디어 수집에 관한 규칙
✔︎ 이어지는 글 예고
아이디어 수집함 비우기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