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연습」
나는 치료를 하면서 말을 아끼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초반에는 설명도 많았고, 위로도 성의껏 했다.
“조금만 더 하면 좋아질 거예요.”
“이 정도면 회복 속도 괜찮아요.”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나중에 배신처럼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
나는 점점 말을 줄였다.
말은 쉽게 기대를 만든다.
기대는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진 조각들은
대부분 치료사 쪽으로 굴러온다.
치료실에서는 늘 적절한 온도의 언어가 요구된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너무 솔직하면 잔인해지고,
너무 다정하면 거짓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말을 고르기보다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환자의 몸을 만질 때
손끝으로 느껴지는 건 근육만이 아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참고 살아왔는지,
어디까지 기대하다가 포기했는지 같은 것들이
이상하게도 함께 전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보다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먼저 생각한다.
가끔 환자들은 묻는다.
“선생님은 매일 이런 사람들 보면서 안 힘드세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일이라서 괜찮아요.”
일이라는 말은 방패다.
감정을 들키지 않아도 되는 가장 안전한 핑계.
하지만 사실 그 말의 안쪽에는
‘힘들다고 말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 들어 있다.
치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제야 말들이 생긴다.
그때 하지 못한 말,
굳이 하지 않아서 남은 말들.
방구석에 앉아 있으면
그 말들이 나를 향해 몰려온다.
왜 그 사람에게는
조금 더 솔직해지지 못했을까.
왜 그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을까.
그리고 왜
사람 앞에서는 늘 이렇게
조금 부족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는 걸까.
아마 나는
사람이 되는 연습보다
사람 흉내를 내는 연습을 더 많이 해온 것 같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법,
적당히 웃는 타이밍,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관계는 유지하는 거리감.
말하지 않는 연습은
나를 무난한 치료사로 만들어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점점 투명하게 만들었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쪽으로.
그래도 나는 이 연습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누군가는 덜 아플 수 있고,
적어도 그 순간은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침묵은 환자를 위한 것이면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글 역시
사실은 하고 싶었던 말을
조금 늦게 꺼내는 방식이다.
치료실에서는 하지 못했던 말,
사람 앞에서는 삼켰던 생각들.
나는 오늘도
말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그 연습의 결과를
이렇게 글로 남긴다.
사람을 치료하며 살아온 한 오랑우탄이
사람처럼 버티기 위해 선택한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