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곰하게 정의하는 행복(幸福)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서점에 가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 코너를 가득 채우고,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사용하며 산다. 내가 글을 쓰는 것 또한 행복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이다. 하지만 정작 그 "행복"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언어로 정의 내리는 사람은 드물다.
정의되지 않은 것은 명확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으니 막연하게 달린다. 목적지가 없으면 방향을 잃거나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은 무심코 지나쳐선 안 된다. 스스로 정의해야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나만의 언어로 정의하는 행복은 '욕망(수요)의 크기와 삶이 제공하는 공급의 크기가 적절한 평형을 이루는 상태'다. 마치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 법칙과 같다.
이 관점에서 보면 행복에는 각자 다른 '가격표'가 붙는다.
누군가는 거대한 성취와 화려한 삶을 욕망한다. 수요가 크니, 평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과 성과라는 '공급'이 필요하다. 이 사람에게 행복은 '비싼 가격'이다. 반면, 누군가는 소박한 일상의 평온함을 원한다. 욕망의 크기가 작으니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도 적절한 평형을 맞출 수 있다. 이 사람의 행복은 '저렴한 가격'이다.
이 가격의 차이가 '옳고 그름'을 나누진 않는다. 더 많은 비용(노력)을 지불하며 화려한 행복을 쟁취하는 삶도, 욕구를 조절하여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삶도 모두 존중받아 마땅한 선택이다. 비싸든 저렴하든 둘 다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 행복이다. 다만, 어떤 쪽을 선택하든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 있다.
우리는 흔히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터부시 한다. 하지만 점잖은 척 외면한다고 해서 내 안의 욕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우리 안에는 세상을 이롭게 하고픈 숭고한 목표도 있지만, 때로는 사회적으로 허용되기 힘든 날 것의 본능과 탐욕도 꿈틀거린다. 이것은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문제는 이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고 방치할 때 발생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한순간의 일탈로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그들은 성공을 통해 삶의 '공급 능력'을 키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욕망을 직시하고 분류해보지 않은 채, 성공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능력을 갖추게 되자, 절제해야 했을 욕망까지 무분별하게 충족시켜 버린 것이다. 힘들게 쌓아온 성공까지 무너지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건강한 야망이나 성취욕이라면 땀 흘려 노력해서 채우면 된다. 그 과정이 너무 고되다면 욕망의 눈높이를 조금 낮추는 지혜를 발휘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의 존엄을 해치는 욕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은 충족의 대상이 아니라 엄격한 관리와 절제의 대상이다. 내 안의 욕망을 투명하게 해부해 보아야 '충족시켜야 할 욕망'과 '다스려야 할 욕망'을 선별할 수 있다.
"참으면 병이 된다"며 억눌린 욕망이 언젠가 터질 것이라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욕망의 폭발은 그것을 직시하지 않고 무의식 속에 억지로 묻어두었을 때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사고다. 내 안에 그러한 욕망이 있음을 인정하고, 매 순간 깨어있는 의식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 직시하는 순간, 욕망은 괴물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데이터가 된다.
살아가면서 내 욕망은 변하고, 공급 능력 또한 변한다. 행복은 한 번 맞추면 끝나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세상의 대부분이 O와 X가 아닌 '정도(Degree)의 차이'이듯, 행복 또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그 변화에 맞게 욕망과 공급의 비중을 조정(Rebalancing) 해야 한다.
욕망에 비해 공급이 과도하면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급 과잉으로 시장에 들이닥친 경제 대공황처럼, 삶에도 지독한 무기력이 찾아올 수 있다. 이때는 새로운 성과에 도전하여 욕망의 크기를 키우거나, 나의 공급(재능, 부)을 타인과 나눔으로써 수위를 조절하며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도 있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면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때는 욕망을 과감히 구조조정해야 한다. 목표를 단계별로 나누어 성취감을 쪼개서 맛보거나,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야 한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며 공급 능력(체력, 경제활동 등)이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시점에는 더욱더 정교한 리밸런싱이 필요하다. 줄어든 공급에 맞춰 욕망을 재조정하지 못하면 허황된다. "왕년"의 영광에 취해 있는 사람을 보면 안쓰럽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덧붙이자면, 현대사회에서 이 밸런싱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SNS다. 나의 공급 능력은 그대로인데, SNS는 타인의 화려한 '비싼 가격표'를 끊임없이 보여주며 내 욕망의 크기만 비대하게 부풀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욕망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타인의 부러움 섞인 시선에서 얻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일종의 '우월감'일 뿐이다. 우월감은 일시적이고 스스로 자생(自生) 하지 못한다. 남들이 봐주고 박수 쳐줘야만 유지되기에, 결국 내 행복의 주도권이 타인에게 종속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더 큰 비용을 지출하고, 더 자극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것뿐이다. 그것은 행복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낭비일 뿐이다.
결국 행복은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다. 내가 가진 욕망의 포트폴리오를 정확히 파악하고, 채울 것은 노력으로 채우고 버릴 것은 과감히 손절하며 스스로 균형점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투자 과정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대답들 사이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 그것이 지속 가능한 행복을 누리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이다.
욕망(수요)의 크기와 삶이 제공하는 공급의 크기가 적절한 평형을 이루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