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肯定) : 마음만 먹어 될거면 영어도 마음먹지.

꼼곰하게 정의하는 긍정(肯定)

by 꼼곰

"긍정적인 자세"는 좋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할 때 에너지를 얻고 그들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자세' 또한 좋은 것이니, 절대 공짜로 얻어지거나 쉽게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물건을 살 때 비싼데 품질이 나쁜 것은 있어도, 싼데 품질이 좋은 것은 찾기 힘들다. '좋은 것'에는 항상 그에 합당한 가격표가 붙어 있다.


지불 없이 사용해 보니 짝퉁.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은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결과를 내놓으라는 무책임한 주문이다. 이는 "긍정적이다"라는 말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낙관적이다'라는 말과 혼용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오해다. 공짜인 줄 알고 덥석 집은 짝퉁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좋게 생각해(낙관해)."라고 하는 것이 방법도 담겨있고 의미도 더 정확하다.


긍정적인 자세는 공부나 고민 같은 노력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마음먹으면 요이땅 하고 시작되는 공짜가 아니다. 마음만 먹어서 될 거였으면, 나는 벌써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긍정(肯定)'의 사전적 의미는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인정함'이다. 즉 수긍, 납득, 동의와 유의어다. 좋게 생각하는 낙관(樂觀)과는 결이 다르다.


흔히 드는 '물 컵' 예시로 이 차이를 명확히 해보자. 물이 반쯤 찬 컵을 보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며 좋아하는 것은 '낙관'이다. 반대로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며 걱정하는 것은 '비관'이다.


그렇다면 '긍정'은 무엇일까? "물 컵에 물이 500ml 남았다."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수긍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긍정=낙관으로 오해하여, 이 '긍정(수긍)'의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낙관'으로 점프하려다 실패한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무조건 좋다고 믿으려 하니, 뇌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짜 긍정은 감정을 섞지 않는 건조한 사실 확인에서 시작된다.


현상이나 상황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수긍) 이 진짜 긍정적인 자세다. 낙관과 비관은 그 수긍이 끝난 '이후'에 일어나는 판단이다.


흔히 "긍정적인 것 = 무조건 잘 될 거라고 믿는 낙관"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맹목적인 낙관은 장점이 아니다. 당장 목이 마른 사람이 들이닥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물이 반이나 남았네, 충분해!"라고 외치는 것은 긍정이 아니라 '무방비'다. 반대로 지나친 비관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기력'을 낳는다.


진짜 긍정의 힘.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주는 매력은 근거 없는 낙관론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다. 현상을 차갑고 냉철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오는 '신뢰감' 때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긍(긍정)한 사람은 행동에 힘이 있다. 상황을 직시했기에, 낙관적인 부분에서는 불안감 없이 편안함을 즐길 줄 알고, 비관적인 부분에서는 담담하게 대책을 세운다. 반면 현실을 외면하고 "다 잘 될 거야"만 외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운전대를 놓은 차에 탄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즉,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고 납득하는 것. 이것이 인생이라는 게임의 '액티브 스킬(Active Skill)'이다. 그래야 지금이 안심할 때인지, 대비할 때인지 판단하고 좌고우면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상황이 아닌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패시브 스킬(Passive Skill)'로서의 긍정은 어떻게 갖춰야 할까? 원리는 같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면 된다.


나는 어린 시절 소아비만이었다. 볼록 튀어나온 배가 부끄러워, 조금이라도 들어가 보이려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다녔다. 몸이 움츠러드니 성격도 자연스럽게 조용하고 소심해졌다. 그러다 사춘기를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이후, 불룩한 배를, 그 뚱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기 긍정의 시작이었다.


더 이상 어깨를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밥을 배불리 먹은 날이면 배를 빵빵하게 더 내밀며 친구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이거 봐라, 곧 단추 발사될 것 같지 않냐?" 친구들은 유쾌하게 받아주며 함께 웃었다. 이것은 나의 모습을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즐긴 것이다. 뚱뚱한 것은 내 특성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내가 뚱뚱하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그리고 다른 매력을 갖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이것은 현 상태를 '비관적(위기)'으로 보고 개선책을 세운 것이다.


만약 지나치게 낙관적이기만 했다면 여전히 배가 나와 있었을 것이고, 지나치게 비관적이기만 했다면 아직도 구석에서 어깨를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수긍)'했기에, 유쾌함(낙관)과 다이어트(비관적 대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누군가 스스로를 바라보거나, 눈앞의 벅찬 현실을 마주할 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직 낙관하기에도 이르고, 비관하기에도 이르다.
일단은 긍정적인 자세로,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판단은 그다음이어도 늦지 않다.
다만, 우리가 경계할 것은 '지나침' 뿐이다.
상황이 낙관적이라면 마음 편히 안심하면 되고,
비관적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개선하면 그만이다.




꼼곰하게 정의해 본 "긍정"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수긍), 그 위에서 낙관과 비관을 담담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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