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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바다 Jul 06. 2024

자네, 대체 범죄의 동기가 뭔가?

영화 <범죄도시4> 리뷰

¡스포일러 주의


영화는 처음 누군가가 젊은 청년을 죽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국인 필리핀에서 한국인인 누군가가 도망치는 한국인을 죽인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악당이다. 이런 악당을 보통 메인 빌런이라고도 한다. 도대체 그 메인 빌런은 20대로 보이는 같은 나라의 젊은 청년을, 다름 아닌 타국에서 무슨 이유로 죽였을까. 여기서 바로 메인 빌런의 무자비함을 엿볼 수 있다.


메인 빌런은 필리핀에서 마약 판매를 맡고 있는 '백창기'. 그는 용병 출신으로 온라인으로 마약을 유통하기 위해 한국의 있는 젊은 개발자들을 필리핀으로 유인한 뒤 감금을 하여 착취한다. 감금당한 개발자들은 기계, 아니 흡사 연구실의 생쥐 같이 다뤄진다. 앞서 말한 한국인 청년은 그 지옥에서 도망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런 범죄를 쫒던 메인 히어로 '마석도'는 극악무도한 그들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메인 빌런 백창기는 소위 한국의 IT 천재 CEO '장동철' 밑에 있었다. 무력으로 보면 당연히 백창기가 우위에 있지만, 한동안은 그의 명령을 들으며 행동대장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장동철이 그에게 준 것은 다름 아닌 배신. 이에 백창기는 그를 죽여 응징한다. 이 장면이 바로 이 영화 속 메인 빌런의 뚜렷한 특징이다. 시킨 일은 한치 실수도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지만, 신의나 신뢰를 져버리면 가차없이 응징한다.


하지만 백창기는 이렇게 카리스마 있고 소위 말해 멋진(?) 악당치곤 뭔가 동기적으로 어설프다. 겉으로 백창기는 현실 필리핀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갱단의 우두머리와는 다를 것 같은 면모를 보인다. 왜냐하면 엄청 잘 생겼거든. 다름 아닌 김무열이 그 배역을 맡았으니 비주얼적으로 건달, 깡패, 갱단의 우두머리로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하는 행색도 마찬가지이다. 일은 기가 막히게 처리하며,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 (극중에서 유일하게 화를 낸 적이 있긴 하다. 마석도와 자꾸 마주쳤을 때.) 또한 장동철의 배신에 대한 응징도 끝까지 자신의 신의를 지킨 뒤 해결한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나쁜 짓을 하는 "동기"는 너무 뻔한 "돈"이다.


백창기가 왜 행동하는지, 과연 그 저의가 무엇인지는 자세하게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장동철을 제거한 뒤 그는 그의 온라인 카지노 데이터베이스를 빼돌리기 위해 마석도와 끝까지 싸운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악한 짓의 발로이며, 노다지이다. 만약 백창기가 선천적으로 나쁘게 태어나 원래 사람을 죽이고 극악무도한 짓을 하고 싶은, 그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데이터베이스를 빼돌리는 것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만큼 이 영화에서 메인 빌런이 가진 느낌이 팍 죽는다.


백창기가 태생적인 악이었다면,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같은 이미지로 볼 수 있다. 배트맨의 안티테제격인 조커는 태생적인 악을 상징한다. 혼란, 무질서, 고통 등등 말이다. <다크나이트>의 히어로인 배트맨처럼 탈인간급인 경우, 대항하는 적은 그만큼의 위력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반면, 마석도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감독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선한 사람에게는 푸근하면서도 악한 사람에게는 국물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을 테다. "진실의 방"이라는 다소 어긋난 정의(?) 속에서도 마석도라는 사람의 인격은 무언가 정감이 간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간적인 마석도에게 대항하는 적은 그에 걸맞아야 한다.


그러니까, 백창기는 폼이란 폼은 다 잡고서 실상 자본주의에 찌든 하찮은 악당인 것이다. (그는 지켜야할 패거리 혹은 더 나아가 가족들조차 없었다. 게다가 잔인하긴 하지만, 즐기기 위해 살인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악행을 이어왔다.)


영화에는 이런 오류(?)가 하나 더 보인다. 처음에 죽임을 당한 청년 개발자를 생각해보자. IT 개발 일은 지식 집약적인 일이다. 노동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옛날 노예처럼 채찍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한다고 하더라도 시키는 사람 꼭대기에 서서 느슨하게 일을 할 수가 있다. 극중에 나오는 IT천재 장동철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지식 기반의 직업은 때리거나 강압한다고 해서 능률이 오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스겟소리로(?) 과거 노예제가 무너진 이유는 지식 집약적인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그 노예제가 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차라리 그런 개발자들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선 '돈'과 같은 유인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거든. 범죄도시4에 나오는 나쁜 이들은 (감금당한 선량한 개발자들과는 다르게) 하나 같이 돈을 쫒는다. 정의로운 마석도에게 저지당하긴 하지만 말이다.


착한 놈은 정의롭고, 핍박 받고, 하지만 승리한다. 개발자들 또한 순진무구한 착한 놈들 편이었을 것이다. 반면 나쁜 놈은 하나 같이 극악무도하고, 돈만 밝히며, 항상 패한다. 백창기는 허우대는 멀쩡하고 꽤 세지만, 실상 보면 허접하다. 감독도 아마 이를 의도했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깡패의 카리스마, 멋짐 등이 사실은 별거 없는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현실은 오로지 "돈"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영화 속 마석도가 "돈"을 위해 악행을 하는 자를 때려잡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다. "돈"을 추구하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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