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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오찬은 사과 Aug 13. 2024

이번 생은 알바만 하다 죽나.

세상에는 내게 잘 맞는 것과 잘 맞지 않는 것, 그 두 개밖에 없다.

최근에 저녁에 하는 술집 알바를 하나 잡았다. 모처럼 길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전에는 나는 사업, 특히 요식업과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쓴소리 좀 들었거든. 전부터 잠깐 잠깐 했던 알바에서 들은 꾸중들을 말해보겠다.


1. 왜 이래 빨리빨리 못해?

이 말은 행동이 굼뜨다는 것과는 다른 뜻이다. 나는 행동이 굼뜨지 않지만 어떤 일을 빨리 쳐내지 못한다. 좋게 말해 꼼꼼한 것이고, 나쁘게 말해 답답한 사람이다. 매번 일을 할 때마다 나는 다른 이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 예를 들면 카페(스X벅스, 탐X탐스 등)에서 일을 했을 때 2층 테이블과 식기구를 정리하는 일을 자주 갔었다. 그때 간혹 다른 이들이 나보고 "왜이래 2층 정리하는 게 느려요?"라고 했는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청소도 마찬가지이다. 매번 청소를 하면 다른 이보다 늦는 것 같았다. (갑자기 과거 일화가 떠오른다. 교무실 청소 당번이라 교무실을 청소하러 갔는데,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빗자루질을 하는 것을 보고는 한 선생님이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는 친구를 보았나, 상을 줘야지"하고 초콜릿을 준 기억이 떠오른다. )


2. 왜이리 답답하게 행동해?

나는 성격이 내향적이다보니 말을 막 잘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에도 조심한다. 그게 누구에게는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유도리 있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꽤 원칙적이다.

전에 스X벅스에서 있었던 사례를 들어보겠다. 계산을 하던 와중에 한 아이가 내게 포크를 하나 더 달라고 말했다. 나는 "네 포크 하나 드릴게요."라고 했는데, 그걸 들은 점장님이 내게 "애한테 그렇게 딱딱하면 애가 오히려 난처하지 않겠어요?"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오히려 고객에게 같은 경험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원칙에 비춰 모든 이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존댓말을 썼을 뿐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겠다.


전에 한 백숙 식당 알바를 하다 말이 너무 없고, 사근사근하지 못하며, 빨리빨리 못한다고 2주 만에 짤린 적이 있다. ....... 그때는 내가 참 도움도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알바는 나를 꽤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덕분에 아직까지 가기 싫은 느낌은 없다. 일이 어려운 것도 없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분위기다. 사장님과 사모님은 굉장히 편하게 해주신다. 게다가 힘들 거나 그러면 꼭 말하라고 하면서 나를 챙기는 분위기다.


탐X탐스 다녔을 때 내게 10분 전 오라고 말하고, 내가 그 10분에서 5분 정도 늦게 왔을 때 왜이리 늦게 오냐고 타박했던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기분이 나빠 이 일은 오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제때 끝내주지도 않았다.) 반면 여기에서는 5분 전에 도착해서 2분~3분 정도는 늦게 간다. 그게 내 입장에서 오히려 편한 것 같다. 오히려 출근을 일찍하라고 하면 기분 나빴을 것을, 제 시간에 오기만 하면 터치를 안 하시는 덕분에 퇴근이 좀 늦어도 일을 마치고 간다.


게다가 손님들도 칭찬을 제법해주신다. 손님들은 내가 했던 다른 알바들과 비슷하지만, 여기는 내가 오히려 서비스를 잘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서 그런지 칭찬받기도 쉽다. 가령 이런 것이다. 테이블에 띵동이 울렸을 때 가기 전 (척봐도 손님에게 필요해보이는) 소주나 맥주를 하나 갖고 가면, 센스쟁이~ 소리를 들을 것이다. 젓가락을 떨어뜨린 소리를 들어 요청하기도 전에 젓가락을 갖다 주면, 센스 장난 아니네~ 소리를 들을 것이다. 손님 자리의 물통이 비었을 때 요청하기도 전에 물통을 갖다 주면, 센스 봐라~ 소리를 들을 것이다. (물론 이 예는 내가 모두 겪은 내용이다.)


사장님도 이런 나를 이해하신다. 테이블을 빨리 치우지는 못하지만, 또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물어보고 어떨 때는 답답하게 보이기도 할테지만,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것 같다. 나랑 사장님은 솔직히 말해 성격적으로 맞지는 않는다. 사장님은 극E성향으로, 한 성깔하시는 분이다. 반면 나는 극I성향으로 웬만하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참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일할 때만은 그게 크게 문제 되진 않는다.


여기서 깨달았다. 세상에는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게다가 맞는 부분 또한 목적과 때에 따라 어느 부분만 맞아도 된다는 것을. 또한 나와 맞지 않는 일조차 다른 방면에서 잘 맞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젊은 이들이여, 타박 받았다고 기죽지 말아라. 타박하는 자는 단지 너와 맞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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