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딸깍 시대: 노력을 비웃고 혐오하는 이유

by 주재훈

노력의 명암을 마주한 순간

나는 격투기를 즐겨 본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건드리는 이 세계에서,

피와 땀으로 일궈낸 결과가

이토록 잔인하고 명료하게 드러나는 종목은 드물다.

승자독식의 질서는 링 위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펼쳐진다.

승자가 쏟아지는 조명을 온몸으로 받는 동안,

패자는 피로 얼룩진 몸을 이끌고 어둠 속으로 퇴장한다.

어떤 날은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 극단적인 승패의 명암을 마주할 때면,

인간의 잔혹함에 기묘한 소름이 돋곤 한다.

그래서 내게 MMA는 단순한 스포츠라기보다,

인간의 내면을 가감 없이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최근 김상욱 선수의 결승전이 그랬다.

‘노력의 천재’라는 별명답게,

그는 타고난 재능의 빈틈을

지독한 훈련으로 메워온 선수였다.

그가 흘린 땀방울은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있다’는

오래된 믿음의 증거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냉혹한 링 위에서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만장일치 판정패였다.

경기가 끝난 후,

세상의 반응은 선명하게 갈렸다.

진심 어린 응원도 있었지만,

그보다 날카로운 조롱이 더 깊게 파고들었다.

“노력해서 저 정도면 관둬야지”,

“결국 한계는 뻔했다”는 말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선수의 패배보다

그가 바친 ‘노력’의 가치를 먼저 깎아내렸다.

이제 노력은 숭고한 미덕이 아니라,

가성비 떨어지는 행동처럼 취급받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노력하는 사람을 비웃게 됐을까.


노력은 왜 배신처럼 느껴지는가

이러한 ‘노력 혐오’는 사실 시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방어기제다.

클릭 한 번으로 결과물을 뽑아내는 ‘AI 딸깍 시대’에

인간의 오랜 분투는 효율성이라는 잣대 앞에 무기력해졌다.

여기에 저성장과 경기 침체라는 현실이 겹치며

비극은 더욱 깊어졌다.

피나게 노력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고,

노력은 더 이상 ‘공정한 거래’가 아닌

‘밑지는 장사’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의 노력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노력하는 이를 비웃는 순간,

나의 정체와 실패는 조금 덜 부끄러워진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판이 잘못된 것이라는 위안을 얻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타인의 노력을 짓밟는다.

이제 대중은 단순히 노력을 불신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노력이 결코 보상받지 못하기를 바라는

비틀린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타인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

노력하지 않은 나의 삶이

비로소 진짜 실패로 증명될까 두려운 것이다.


성적표가 아닌 생존 서류

그렇다면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 이 불공정한 시대에,

우리는 왜 그 지독하고 힘든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을 대하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노력은 결과를 보장해주는 ‘보증서’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생존 서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번아웃과 허무함은

사실 노력 그 자체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노력을 결과로 ‘환전’하려 했으나

그 계약이 파기되었을 때 발생하는 통증이다.

우리는 노력을 세상에 제출하여

점수를 따려는 성적표로 오해했고,

그 기대가 어긋날 때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나 노력의 진짜 가치는

타인의 평가나 외부의 보상이 아니라,

나를 집어삼키려는 ‘공허’를 밀어내는 데 있다.

인간은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몰두하지 않으면,

갈 곳 잃은 에너지가 도리어

나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존재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움직임이 멈춘 자리에는 반드시 거대한 허무가 습격해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불안과 무기력은

단순히 몸이 쉬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찾아오는 지독한 허기다.

무엇인가를 향해 애쓰지 않는 상태는 평온이 아니라,

안쪽에서부터 영혼을 갉아먹는 침식에 가깝다.

결국 노력은 성공을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무의미함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가 된다.




이 분투의 과정은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 안에 ‘자아의 근육’을 남긴다.

링 위의 승패나 시장의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변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며 길러진 내면의 단단함은

오직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설령 이번 판에서 실패하여 빈손으로 돌아올지라도,

애쓰고 분투한 시간은

우리를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다.

겉으로는 아무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을 통과한 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것은 ‘딸깍’ 한 번으로 복사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토다.

결국 노력은 나를 성공시키지 못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를 무너뜨리지 않게 만든다.

노력은 나를 증명하지 못해도, 나를 만든다.

그리고 그 ‘만들어지는 나’가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이 차가운 시대에 먹히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목요일 연재
이전 05화챗GPT로 육아하고, 재판에서 이기는 엄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