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부쩍 핸드폰을 붙들고 사는 시간이 길어졌다.
늦은 밤,
그날도 아내의 손에 들린 핸드폰 액정이 유독 밝았다.
하도 핸드폰을 붙들고 살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슬쩍 들여다봤다.
화면 속에는,
챗GPT와 나눈 살뜰한 육아 상담 기록들이 빼곡했다.
생후 4개월 무렵 찾아온 아들의 ‘잠 퇴행’ 때문이었다.
순하기만 하던 아이가
밤마다 목이 터져라 오열하며 발악할 때,
아내는 전문가를 찾아가는 대신 AI를 켰다.
AI의 차분한 문장들은 수면 의식을 바꾸고
더 따뜻하게 안아주라는 조언을 건넸다.
그 지침을 따른 지 2주 만에
아들은 다시 평온한 수면을 되찾았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며칠 만에 찾아온 집안의 고요에
나 또한 마음에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뭔가 묘한 서늘함을 느꼈다.
이 풍경은 최근 법률 영역에서
화제가 된 한 성공담과 겹친다.
지인에게 871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사기당한 김수연(가명) 씨는
변호사 사무실의 두꺼운 문을 두드리는 대신
챗GPT 대화창을 열었다.
AI는 증거를 모으는 법부터
소장을 작성하는 법까지 막힘없이 일러주었다.
그녀는 결국 홀로 승소했다.
육아의 고단함부터 법률의 문턱까지,
이제 우리는 사람을 거치지 않고도
기계와 나누는 대화만으로
삶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매끄러운 성공담 뒤에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거대한 침묵이 숨어 있다.
AI로 인해 수많은 인간들이 지탱해온
‘산업의 생태계’가 소리 없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지식은
사람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 우리에게 닿았다.
육아 전문가의 손때 묻은 저서,
소아과 의사의 조심스러운 진단,
변호사와 그 조력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시간들.
그 길목에는 수많은 사람의 생계와 고민이 있었다.
지식의 권력이 수천,
수만 개의 삶의 터전으로 나뉘어 존재했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 그 거대한 인적 인프라는
AI의 ‘대화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AI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는 24시간 대기조이자,
어떤 사소한 질문에도
비난 없이 응답하는 안식처가 되어준 것이다.
이 압도적인 편리함은
개인에게 ‘전능함’이라는 축복을 선사하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인간들이 발붙이고 살던
숲에 한순간에 불을 지른 것과 다름없다.
현재 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전문가와
그들을 돕던 수많은 인력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생태계가 살아있을 때는
서로 다른 목소리와 현장경험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냈지만,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면
오직 알고리즘이 걸러낸 단일한 논리만이
유일한 진리가 된다.
진정으로 위험한 지점은 이 모든 가치가
AI 플랫폼으로 쏠리며 발생하는 ‘거대 권력의 집중화’다.
분산되어 있던 인간의 완충지대가 사라진 자리에서,
AI 플랫폼은 이제 다정한 비서를 넘어
생태계 전체를 통제하는 독재자로 군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직 하나의 창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될 때,
특정 플랫폼의 논리는
곧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규범이 된다.
아들의 평온한 잠과 억울함을 푼 승소는 분명 축복이다.
나도 AI의 혜택을 몸소 누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과도기를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 편리함을 얻는 대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AI 플랫폼의 독재.
지금 그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