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공백이나, 그 어느때보다 나로 충만하다.

19. 비어있는 충만

by 김민경



비어있는 충만


단단한 쇠붙이 조차

속은 텅 빈 공백이라는데

무너지지 않으려 밀도를 높이니

내부가 무거워져 나는 어디에도 없다.


빽빽한 욕심들 사이로

정작 숨 쉴 틈 하나 없었다.


움켜쥔 손을 펴고 모래알 같은

미련과 욕심을 허공에 흩뿌렸다.

비워낸 자리마다 바람이 통한다.


이제 나는 텅빈 공백이나

그 어느 때보다 나로 충만하다.




-




기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완벽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었다. 오차 없는 손놀림과 결함 없는 결과물. 세상은 그것을 숙련자의 당연한 도리라 믿었고, 나 역시 그 기대를 거스르지 않으려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그 성실함의 뿌리는 성취의 기쁨이 아니라, 늘 무언가 모자라다는 결핍에 닿아 있었다. 부족한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스스로를 촘촘하게 메워야만 했다.


나를 채운 것은 실력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날 선 검열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도구를 쥐었지만, 그 예리한 날은 정작 내 영혼의 가장자리부터 깎아내고 있었다. 무너지지 않으려 스스로를 압축할수록 내부의 압력은 높아졌고, 어느 순간 나는 그 하중 아래서 자취를 감췄다. 기술이라는 단단한 껍질만 남기고 속은 서서히 비어갔을 때, 나는 삶의 축이었던 도구를 내려놓기로 했다.


도구를 내려놓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편안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것은 해방감이 아니라 아찔한 진공 상태였다. 중심이 사라진 자리는 거대한 공백으로 남았고, 나는 그 공백 앞에서 한동안 서성였다. 무언가를 움켜쥐고 다듬는 데만 익숙해졌던 근육들은, 아무것도 쥐지 않은 빈손의 가벼움을 도무지 감당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갈 길을 잃었다.


손은 갈 곳을 잃었지만, 무언가를 완벽하게 정돈해야 한다는 강박은 여전히 육체에 각인되어 있었다. 나는 집 안의 가구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몸보다 큰 식탁을 틀어보고, 멀쩡히 벽에 붙어 있던 침대를 방 한복판으로 끌어당겼다. 일터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었던 그 빽빽한 질서들을, 내 공간에서만큼은 물리적으로 뒤흔들어 확인받고 싶었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벽이 깊도록 소파를 이리저리 끌어다 놓으며 숨을 몰아쉬던 순간, 문득 멈춰 섰다. 배치를 아무리 바꿔보아도 마음에 들기는커녕 말로 다 못할 찝찝함만 차올랐다. 거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가구들과 그 아래 드러난 거뭇한 먼지 자국을 보며 마주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무언가로 가득 차 충만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완벽한 구도를 찾아내면 마음의 허기가 채워질 줄 알았지만, 내 안의 공백은 가구의 위치 따위로 메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가구를 밀어내느라 벌겋게 부어오른 손바닥 위로 가구 밑바닥에서 묻어난 하얀 먼지가 지저분하게 앉아 있었다. 낮에는 남의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밤에는 내 집의 가구를 밀어내며 살았는데 정작 내 손에 남은 실체는 이 찝찝한 먼지뿐이라는 사실이 불쾌하게 밀려왔다.


이 손으로 아무리 배치를 바꾸고 밀도를 높여봤자, 내가 가질 수 있는 결론은 결국 씻어내야 할 얼룩뿐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채우려는 시도를 멈췄다. 비어있음을 견디는 고통이 나를 갉아먹던 고통보다 훨씬 정직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진공 상태에서 발을 뗄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광장으로 나섰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었다. 정답이 사라진 길 위에서 나는 매 순간 시험대에 오른 듯했다.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묻지 않은 질문들이 등 뒤에서 환청처럼 감돌았다. 여름의 열기는 기상청의 예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의 눈빛이 내 피부에 닿는 온도였다. 정답이 없기에 결과에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그 두려움은, 직사광선보다 집요하게 뒷덜미를 달구었다. 부채감은 땀방울이 되어 흘러내렸고, 나는 내가 정말 이 열기를 견딜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


시선을 피해 숨어든 곳은 혼자만의 그늘이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순간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여백은 나를 쉬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인 듯했다. 하지만 그늘은 이내 양면의 얼굴을 드러냈다. 타인의 시선을 차단해주는 벽이었던 그늘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고립시키고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는 눅눅한 습기가 되었다. 밖의 시선은 무겁고, 안의 자책은 깊은 진퇴양난의 여름. 뜨거운 볕에 타 죽는 것보다 차가운 그늘에서 망가지는 것이 더 두려웠기에, 나는 다시 눅눅해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시 광장으로 나섰을 때,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여름의 징후들이 보였다. 공중에 부유하는 날파리떼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 발치에 바짝 붙어 지나갔다. 그것들은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몫의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발밑에서 낮게 엎드려 있던 풀들이 어느새 발목까지 차오르며 무성해질 때, 나는 그 거침없는 생장 속에서 묘한 생동감을 느꼈다.


세상은 이미 뜨겁게 들끓고 있는데, 나는 이제야 그 계절의 한복판에 발을 들인다. "비어있는 충만"이라는 제목을 붙여보지만, 나는 아직 그 순간에 도달하지 못했다. 비어있는 공간은 여전히 나를 불안하게 하고,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하루는 허무의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이 막막함이야말로 내가 정면으로 통과해야 할 여름의 첫 번째 관문임을 안다. 이제 나는 완벽한 배치를 찾는 일을 멈추기로 했다. 비어있으면 비어있는 대로, 찝찝하면 찝찝한 대로 그 여백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스스로를 단단하게 가둬두었던 시절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로였다.


빈틈없이 채워져 있을 때는 결코 보이지 않던 내 안의 사소한 무늬들이, 공백을 허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 빛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텅 빈 공백을 억지로 채우려 애쓰지 않는 평온. 이 충만함은 밖에서 끌어온 성취의 무게가 아니라, 내 안에 원래 있던 것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내어준 정갈한 부피다. 비어있기에 비로소 다른 것을 담을 수 있고, 비어있기에 진정으로 자유롭다. 나의 여름은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 젖은 채로, 혹은 타오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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