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노란 함구
노란 함구
벗겨진 페인트와
갈라진 담벼락 사이,
붙박인 가로등이 홀로 제 자리를 태운다.
풍경은 낡아가는데
그 아래를 지나는 나의 속도만 여전하다.
콧노래를 섞어 흥얼거리던 밤에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키던 밤에도,
너는 늘 같은 온도의 그림자를 내어주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면
쏟아지는 빛줄기가 마치 내 등을 다독이는 것 같아
나는 차마 발걸음을 빨리하지 못했다.
말없이 지나갈 뿐인데
너는 내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을 고백들을
나는 오늘도 저 노란 불빛 속에 꾹꾹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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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밤은 좀처럼 어두워질 기회를 얻지 못한다. 가로등은 해가 지기 무섭게 제 몸에 불을 지피며 어둠의 가랑이를 찢고 들어온다. 사람들은 가로등을 두고 길의 안전을 책임지는 파수꾼이라거나 밤을 지키는 다정한 눈동자라고 말하지만, 내가 마주한 가로등은 그보다 훨씬 고독하고 완고한 사물이다.
누군가를 위해 길을 밝혀주겠다는 선의보다는, 차라리 제 자리에 붙박인 채 세상의 모든 소음과 고백을 집어삼키고 입을 닫아버린 ‘함구의 화신’에 가깝다. 낡아가는 담벼락과 벗겨진 페인트 사이에서 홀로 매끄러운 수직의 몸을 세우고 빛을 쏟아내는 그 모습은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늘 이 낡은 가로등 아래에서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노란 빛줄기를 맞고 있으면, 차마 발걸음을 빨리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가로등은 어딘가 그슬린 듯 눅진한 노란빛을 쏟아내던 구식이다.
그것은 마치 오래되어 빛바랜 종이 조각 같은 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풍경의 경계를 뭉뚱그리며 나의 일그러진 표정을 적당히 가려주던 사물. 이제 골목마다 낡은 노란색 등이 떼어지고 그 자리에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는 백색 조명이 들어앉지만, 나는 여전히 낡은 종이 조각 같던 위로의 온도를 잊지 못해 자꾸만 그 아래를 서성인다.
내 생의 가장 오래된 소음은 술 냄새에 섞여 들어오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알코올로 온몸이 젖은 그는 비밀을 지킬 줄 몰랐고, 정적을 깨트리는 무책임한 소란들을 쏟아냈다. 그 소란이 집안의 공기를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깊은 방 안으로 숨어들어 숨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어둠 속에 몸을 구기고 숨소리조차 소음이 될까 두려워하며 정적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시간. 아버지가 쏟아내는 소음이 커질수록 나는 입을 더 굳게 닫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때의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법이었고, 말은 뱉는 순간 수습할 수 없는 파편이 된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나의 유일한 방패였다.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홀로 언니와 나를 먹여 살려야 했던 어머니의 뒷모습만 남았다. 결국 우리는 생존을 위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아버지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 싶었던 결핍은 성인이 되어 그를 다시 만나게 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고단함만을 읊조렸고, 자식의 안부를 묻는 법을 잊은 채 자신의 지나온 길만을 더듬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갔다. 우리 사이에 놓인 세월의 너비가 너무 넓어서, 이제는 서로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건너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각자가 선택한 삶의 속도가 빚어낸 필연적인 거리였다.
아쉬움만 남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던 길,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 위로 아버지의 이름이 떠올랐다. 가로등 아래 쏟아지는 빛줄기 속에서 휴대폰은 혼자 바쁘게 몸을 떨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진동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가로등 밑에 멈춰 섰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떨림이 멈출 때까지, 내 안에서는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가로등은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 홀로 세워진, 지붕 없는 나의 방이었다는 것을. 세상의 온갖 소음과 비명들이 제 발치에 머물다 흩어져도 가로등은 결코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벗겨진 페인트와 갈라진 담벼락이 즐비한 골목에서도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침묵하는 그 모습은, 소란이 잦아들길 기다리며 방 안에서 숨을 죽이던 나의 유년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내 방은 왜 아무것도 없었을까. 가로등 같은 사물도, 침묵을 닮은 누군가도 없었다.
휴대폰의 진동이 멈추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세상은 흔히 소통이 치유라고 말하지만, 내게 '말'이란 언제나 수습되지 않는 소음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물리적인 거리감은 결국 우리를 타인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 속수무책으로 미워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이제는 온전히 나의 의지로 밀어내며 마침표를 찍는다. 소동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이 고요한 과정을 나는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가로등은 내가 억지로 비밀을 꺼내 놓지 않아도 나의 그림자를 그대로 비춰주었다. 그 완고한 조명 아래서 나는 안전함을 느꼈다. 삶에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 자신조차 똑바로 직면하기 힘든 덩어리 진 감정들이 있다. 억지로 관계를 잇고 문장을 빚어 전달하려 할 때 진심은 종종 왜곡되곤 한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건 위로보다, 그저 곁을 지켜줄 묵직한 존재였을지 모른다. 가로등은 나를 가엽게 여겨 다가오지도, 무언가를 묻지도 않는다. 내 모든 것을 들어주고 있다는 그 무심한 다정함은, 홀로 침묵을 견뎌야 했던 나에게 가장 완벽한 위로가 되었다.
봄은 도처에서 소란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생명들이 제 목소리를 높이며 존재를 증명하려 애쓸 때, 나는 여전히 가로등 아래의 정적을 먼저 찾는다. 화려한 개화보다는 겨우내 묵혀두었던 소음들을 노란 빛줄기 아래 눌러 담는 시간이 내게는 더 절실했다. 아버지가 쏟아내던 무질서한 소요가 아니라 가로등이 베풀어준 이 ‘노란 함구’가 있었기에, 나의 언어는 비로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가로등이 비추는 낡은 의자에 가만히 앉는다. 사물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어쩌면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는 그 완강한 침묵일지도 모른다. 입을 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선명해지는 진심들. 나는 오늘 가로등 아래에 눌러 담았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문장으로 깎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