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른 것이 남긴 선명한 금

18. 균열

by 김민경


균열


가장 견고한 회색 질서의 틈을 타고

노란 비명이 솟구쳐 올랐다.


망치로도 깨트리지 못한 침묵을

초록빛줄기가 밀어젖힌 자리.


빈틈없는 바닥의 민낯을

기어이 들춰내고서야

뿌리는 숨 쉴 곳을 얻는다.


부서진 시멘트 조각을 훈장처럼 두르고

아무도 눈 여겨보지 않는 발밑에서

꽃은 고개를 든다.


가장 무른 것이 남긴 선명한 금.

어쩌다 핀 꽃이라 부르기엔

필사적으로 살아낸 기록이다.




-




도심의 보도블록은 결코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정해진 규격대로 잘려 나간 사각형의 석재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거대한 평면을 이룬다. 사람들은 그 매끈한 질서 위를 걸으며 안도감을 느낀다. 흔들림 없는 지면, 예측 가능한 보폭, 그리고 발끝에 닿는 단단한 확실성. 세상이 말하는 ‘정상적인 삶’의 풍경은 이 보도블록의 배열과 닮아 있다.


교육, 취업, 결혼, 그리고 정해진 궤도 안에서의 성실함. 이 회색 질서 속에 몸을 끼워 맞춘 채 소음 없이 흘러가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지는 시대다. 세상은 이 매끈한 평면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연장을 건넨다. 모나지 않게, 튀지 않게, 규격에 맞는 사각형이 되어 빈틈없이 맞물리는 것. 그것이 나를 지키고 타인과 어우러지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배워왔다.


하지만 이 견고한 평화는 사실 아래에 깔린 흙의 호흡을 잠시 덮어둔 상태이기도 하다. 시멘트는 흙의 생동을 억누르고, 뿌리가 뻗어 나갈 길을 차단하며, 오직 정지된 무생물의 평온만을 허용한다. 효율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덮인 지면 위에는 생명이 가진 불확실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세상이 '미덕'이라 부르는 그 매끄러움 뒤에는,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려는 마음을 '결함'으로 느끼게 만드는 미묘한 압박이 숨어 있다. 우리는 안전을 얻는 대신 스스로 숨구멍을 내어주는 법을 잊었고, 질서를 얻는 대신 발바닥에 닿는 흙의 투박한 촉감을 잃어갔다.


미용사라는 직업은 타인이 기대하는 정답을 거울 속에 구현하는 일이다. 가위 끝이 만들어내는 선이 매끈할수록, 손님의 표정이 규격화된 만족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유능한 사람이 되었다. 거울 속은 언제나 오차 없는 완벽한 질서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매끄러운 평면을 유지하기 위해 애쓸수록, 내 안의 무언가는 조금씩 메말라갔다.


거울 너머의 본질을 끈질기게 붙잡으려는 예민한 시선이나 세상을 향한 뒤틀린 호기심은 이 회색 작업장 위에서 자꾸만 발이 걸리는 돌부리였다. "뭘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해? 적당히 해." 익숙한 조언들은 가장 견고한 시멘트가 되어 나를 틀 안에 가두었다.


단단한 바닥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꾸만 틈을 보려는 나의 기질은 오랫동안 '부적응'이라 불렸다. 나조차 나를 의심했다. 질서를 깨뜨리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이 과연 생존을 위한 숨구멍인지, 아니면 그저 길을 잃은 방황인지 알 수 없어서. 나는 매일 거울을 닦으며 내가 낸 균열의 깊이를 가늠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모든 변화는 늘 그런 '틈'에서 시작되었다. 거대한 질서 아래서도 기어이 자신의 언어를 문장으로 빚어냈던 이들,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는 평면 위에서 홀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질문을 던졌던 이들. 그들이 낸 작은 균열이 없었다면 세상은 시멘트 아래에서 단단하게 굳어버렸을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라기보다, 시멘트 바닥 아래서 숨 가빠하던 나만의 '무른 진심'을 살려내기 위한 조용하고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숨기는 것이 익숙했던 내가 처음으로 나의 문장을 글로 옮겨 썼을 때, 그것은 완벽을 추구하는 질서에는 작은 흠집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비로소 숨 쉴 구멍을 얻기 위해 억눌린 지표면을 밀어 올리는 용기였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문장이 가장 견고해 보이는 현실에 금을 내는 광경을 목격하며, 나는 비로소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있으려 노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균열을 내기 시작하자 주변의 시선은 엇갈렸다. "금방 관두겠지"라며 나의 변화를 일시적인 치기나 가벼운 변덕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들은 "안 되는 일에 기운 빼지 마라"는 말을 충고라는 이름으로 내뱉으며, 나의 시도를 비웃음 섞인 걱정 아래 가두려 했다.


한 사람이 그 틈을 내기 위해 감내했을 수만 번의 자문자답과, 익숙한 세계를 깨뜨려야 했던 고민의 무게는 '되지도 않을 일'이라는 단어 아래 너무 쉽게 요약되었다. 그 무심한 확신들은 가끔 가시보다 날카롭게 박혀, 내가 낸 균열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를 흔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시선에 다시 주눅 들어 스스로를 검열했겠지만, 이제 나는 그 말들의 이면을 조용히 응시한다. 어쩌면 타인의 용기를 시간 낭비로 부르고 싶어 하는 마음 뒤에는, 자신도 단단한 껍질을 깨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망설이는 주저함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어린 줄기를 보고 질서를 해친다며 걱정하는 마음은, 자신의 견고한 세계가 흔들릴까 두려워하는 마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는 이제 그 말들에 흔들리기보다, 그저 그들도 언젠가는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는 진실한 순간을 마주하기를 기다린다. 틈새의 풀 한 포기를 보며 혀를 차는 대신, 그 여린 줄기가 단단한 지면을 밀어 올리기 위해 감당했을 중력의 무게를 상상할 수 있는 여유가 우리 사이에 조용히 깃들었으면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바닥에 난 작은 금이 아니라, 그 어떤 금도 허용하지 않은 채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의 완강함일 것이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부서진 과거의 파편들은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돈다. 정돈된 일상, 익숙한 수입, 그리고 정해진 궤도가 주던 안정감. 시멘트가 깨질 때 튀어나온 그 조각들을 나는 굳이 서둘러 치우지 않는다. 그것은 후회의 흔적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치열한 분투의 기록들이다.


누군가는 이를 무모한 이탈이라 부르겠지만, 완벽하게 정돈된 보도블록 위에만 서 있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들. 발바닥에 닿는 흙의 생생한 온기와 바람이 전하는 자유로운 냄새는 오직 이 부서진 틈 사이에서만 솟아난다.


매끈한 평면이 주는 가짜 안도감에서 걸어 나와, 세상이 정해둔 '정상'의 규격에서 조금 어긋나기로 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숨을 쉰다. 시멘트보다 무르고 투박한 흙은 모든 생명을 품어 키우는 근원적인 다정함을 지닌다. 나는 이제 그 부드러운 힘을 믿는다. 완벽한 질서보다 아름다운 것은, 그 견고함을 깨고 나오는 생동하는 불완전함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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