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기여하는 것

16. 둥지의 재료

by 김민경


둥지의 재료


방구석을 구르는 가벼운 털 뭉치들

한때는 누군가의 체온을 덮어주던 누빔옷이었으나,

이제는 허공을 떠도는 유목민의 기록.


사람의 눈에는 쓸어내야 할 번뇌의 흔적일지라도

창밖 어느 부지런한 부리에게는

갓 태어난 생명을 품어줄 가장 안락한 설계도.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기여하는 것

나의 낡은 껍데기들을 모아

다시 집을 짓는 봄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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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깊게 드는 오후, 청소기를 돌리다 말고 방구석에 뭉쳐 있는 작은 털 뭉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이름만큼이나 가볍게 집안을 동동거리며 돌아다니던 반려견 동동이의 흔적이다. 한때는 녀석의 온기를 가두고 있던 조밀한 피복이었을 그것들은, 이제 제 역할을 다하고 몸에서 떨어져 나와 유목민처럼 거실을 표류한다.


예전 같았으면 '지저분한 것' 혹은 '치워야 할 일거리'로만 보였을 이 부스러기들이, 어느 순간부터 전혀 다른 문장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허공을 떠도는 사물의 흔적은 쓸어내도 다시 고이는 나의 번뇌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의 터전을 수선할 귀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목격했다.


나는 평소 새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류 도감을 뒤적이며 새들의 성격과 깃털의 색감을 익히고, 동동이와 산책할 때면 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길 풀숲에 걸려 있던 하얀 털 뭉치 하나를 까치 한 마리가 가차 없이 낚아채 가는 광경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으나, 나중에 찾아보니 그것은 새들이 둥지를 틀 때 가장 탐내는 재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친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뼈대를 세운 둥지 안쪽에, 동물의 털을 촘촘히 깔아 갓 태어난 새끼들의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버려진 쓸모없는 쓰레기일지라도, 새에게 그것은 생명을 품어낼 가장 안락하고 다정한 안감이 된다는 사실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발견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과거의 나는 나 자신을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불량품'이라 여겼다. 어떤 시작이나 변화의 기미가 보일 때면 설레기보다 공포가 앞섰다. 그 공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목록으로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곤 했다.


공포는 시작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감각일 뿐, 그것이 멈춰야 할 타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외면한 채, 나를 찌르는 예민함의 가시들로 안 되는 이유만을 촘촘히 엮어내고 있었다. 그 시절 내 눈에 비친 방구석의 털 뭉치는 내 삶의 지지부진한 정체 상태를 증명하는 부끄러운 부스러기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념은 매일 아침 출근하는 미용실의 풍경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수많은 손님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잘라내는 나에게, 바닥에 떨어지는 검은 조각들은 그저 매일 저녁 빗자루로 쓸어 담아야 하는 폐기물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였다. 허리춤까지 머리를 기른 한 남자가 미용실 문을 열었다. 그는 사진 대신 기부를 하기 위해 머리를 길렀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3년 동안 가위를 대지 않았다는 그의 머리카락은 차분하고 묵직했다.


머리를 한데 모아 가위 날을 밀어 넣자 소리를 내며 잘려나갔다. 그날 내 가위 끝에서 떨어져 나가는 검은 조각들은 누군가의 상실을 메우고,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울 설계도가 될 것이었다.


단단하게 묶인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올 때, 그것은 더 이상 ‘죽은 것’이 아니었다. 주인의 몸을 떠나 비로소 누군가의 둥지가 되기 위한 ‘기꺼운 분산’이었다. 남자가 떠난 자리에 남은 짧은 머리칼들을 보며, 내가 버리고 싶어 했던 나의 낡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실패의 흔적들이, 밖에서 지켜보는 누군가에게는 경험을 쌓아 올리는 공정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낭비라고 믿었던 그 시간들이, 누군가의 부드러운 안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안도가 스쳤다.


효율과 질서가 지배하는 미용실에서 몸을 떠난 것들은 폐기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남들에게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아픈 고통이 될 수 있고, 그 견뎌낸 시간이 역설적으로 타인에게는 절실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머리카락을 기부하러 온 그 남자가 짧은 머리의 편안함을 뒤로하고 수년의 거추장스러움을 견뎠던 것은, 자신이 대단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불편함이 이름 모를 누군가의 시린 자리를 메울 안감이 되길 바랐을 뿐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가 감내한 그 눅눅하고 질척이는 시간들에 철저히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내가 낭비라고 믿었던 무거운 고통들이 타인에게는 경험을 쌓아 올리는 공정으로 읽힐 수 있다면, 나의 낡은 껍데기들은 비로소 제 소임을 다한 셈이다.


세상에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흔적은 하나도 없다. 하찮은 생명부터 굴러다니는 조각들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거창한 자각 없이도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함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의 사소한 말과 행동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타인의 생을 메워주는 재료가 되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가닿는 순간 비로소 쓸모를 얻는다. 대단한 선의가 아니더라도, 서로의 빈틈을 향해 흘러드는 이 무수한 교차야말로 우리가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인지도 모른다.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기여하는 것. 서로의 노고가 누군가의 안락한 봄이 되는 이 신비로운 연대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나의 낡은 조각들을 모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다. 볕이 좋은 오후, 여전히 방구석의 털 뭉치는 바람에 따라 굴러다닌다. 이제는 그것을 번뇌의 흔적이라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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