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시작에 붙은 허물을 동경한다.

20. 벗겨진 허물

by 김민경




벗겨진 허물

등을 찢어 세상으로 향했다.

내려놓을 줄 모르는 갈고리 발톱.

장마에도 젖을 살이 없고,

중력에 무거워질 마음도 없다.

흉터가 집이 되는 법을

여름은 바싹 마른 껍질로 가르친다.

나무의 정상에 붙은 날개달린 것들 대신

나무의 시작에 붙은 허물을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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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정적 속에서 아물어가는 손가락의 흉터를 응시하던 날들을 지나, 한여름의 열기가 보도블록을 달구던 날 밖으로 나섰다. 산책길에서 만난 가장 두껍고 거대한 나무 밑동에 시선이 멈췄다. 그곳에는 네다섯 개의 매미 허물이 다닥다닥 엉겨 붙어 있었다. 세상은 탈피를 완성이라 부르지만, 나무의 정상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축복이라 칭송하는 이들은 그 소리를 내기 위해 제 등을 스스로 찢어야 했던 존재의 비명에는 관심이 없다.


나 또한 한때는 그 화려한 울음소리가 되고 싶었다. 외부가 정해준 목표와 내가 목매달던 기술의 정점이 생의 유일한 날개라 믿으며, 성취감 없는 갈증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쫓던 날개는 나를 높이 올리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은 허기로 몰아넣는 굴레였음을.


탈피를 끝낸 생명체는 즉시 날아오르지 못한다. 등을 찢고 나온 직후의 몸은 눈부신 날개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제 무게조차 지탱하지 못해 흐물거리는 점액질 덩어리에 가깝다. 껍질이라는 유일한 보호막을 스스로 파괴하고 나온 대가는 가혹했다. 익숙한 현장을 떠난 직후, 사람들이 자유라 부르던 그 공백의 시간 동안 나는 시간의 감각이 마비된 채 거실에 던져져 있었다.


해가 밝으면 눈을 뜨고 해가 지면 밤이 됐다는 것을 짐작할 뿐, 숫자로 된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비참한 정적 속에서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창밖을 찢는 매미의 울음소리였다. 무례할 정도로 시끄러운 그 소음은 마치 나에게 왜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있느냐고, 왜 다시 날아오르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세상의 독촉 같았다.


껍질 밖으로 밀려 나온 직후의 감각은 해방감이 아니라 공포였다. 수년간 나를 정의하던 기술과 전문가라는 단단한 외피를 나무에 남겨두고 온 순간, 나는 그저 물러터진 살점을 가진 무방비의 존재가 되었다. 갓 돋아난 의지는 채 마르지 않아 날개 노릇을 하지 못했고, 존재의 질량이 증발해버린 듯한 아득한 소외를 겪어야 했다.


내려놓지 못한 갈고리 발톱은 여전히 과거의 나무둥치를 움켜쥐고 있는데, 정작 그 속을 채우던 나는 이미 유령처럼 껍질 밖을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나무를 놓지 못하는 그 완고한 발톱이 나를 과거에 가두는 미련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거실의 정적 속에서 말라가는 허물을 응시하며, 나는 비로소 그 죽어버린 껍데기가 내게 건네는 다른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탈피를 화려한 도약이라 말하지만, 당사자에게 그 '말리는 시간'은 생의 가장 치열한 정지 상태다. 겉보기에 멈춰 있을 뿐, 그것은 내부의 질서를 재편하는 소리 없는 격전이다. 나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실에 앉아 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사실은 타인의 비위를 맞추느라 닳아버린 억지 미소와 영혼 없는 대답들을 하나씩 닦아내고 있었다. 눅눅한 습기들을 다 뱉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피부는 외부의 자극에 무너지지 않는 나만의 경도를 갖게 되었다.


이 건조의 과정에서 새롭게 마주한 사실은, 내려놓지 못한 갈고리 발톱이 결코 미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무를 파먹을 듯 움켜쥐고 있는 저 허물은, 내가 날개를 말리는 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유일한 지지대였다. 비어버린 껍데기가 여전히 그 자리에 매달려 있는 것은, 내가 완전히 굳어지기 전까지 나를 대신해 세상의 비바람을 맞아준 나의 헌신적인 과거다.


타인의 시선은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는 허물을 무가치하다고 버려두지만, 나는 그 버려진 것들의 고집을 동경한다. 제 몸이 바스러질지언정 나무를 놓지 않는 저 발톱의 악력이야말로, 내가 보낸 그 치열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나만의 유일한 흔적이다.


날개 달린 것들은 일주일의 소란이 끝나면 공중으로 흩어져 소멸하지만, 허물은 제 자리에 남아 자신의 역사를 온몸으로 기록한다. 한 치의 틈도 없던 어둠 속에서 오직 버티는 것만이 생의 전부였던 그 지독한 과정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뼈대를 세우던 시간이었음을 비워진 껍데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면으로 응시한다.


흉터가 집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화려한 날개가 아니라 바싹 마른 껍질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었던 그 견고했던 시간들이 사실은 나를 보호하던 유일한 안식처였음을 인정하는 것. 그 집을 부수고 나와야만 이 뜨겁고 눅눅한 여름의 실체를 만날 수 있음을 말이다. 중력에 무거워질 마음조차 남지 않은 그 건조함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기준도 나를 흔들 수 없다는 극복의 증거다.


나무의 정상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내 등이 갈라지던 그 선명한 통증과, 여전히 나무 시작점에 박혀 있는 나의 갈고리 발톱을 응시한다. 세상이 버린 껍데기 속에 나의 진짜 생이 살고 있다. 비어있으나 단단하고, 가벼우나 굴하지 않는 저 허물처럼, 나 또한 내가 통과해온 모든 비참한 과정들에 나의 진짜 '완성'이라는 이름을 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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