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꿈, 방
"만화책은 어디 있어?"
내심 당연하게 만화책을 기대한 나는 먼지 쌓인 바닥을 살금 살금 밟으며 방 안 이리저리 살폈다.
형은 폰으로 피자집을 찾으며 대충 "팔았어." 대답했다.
나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팔았다는 익숙한 말에서 오는 기분 나쁜 미시감, 내 것을 판 것도 아닌데 묘하게 화가 났다.
"왜? 작은 방에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다 두면 되잖아."
형은 "됐어." 하고 피자집에 마저 전화를 걸었다.
형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니... 그걸 진짜 다 팔았다고? 그걸 왜 팔아."
나는 이 순간에 왜 이다지도 기분이 상했는지 알 수 없다.
그 많은 만화책을 파는 데에도 오랜 세월이 걸렸으리라.
"가지고 있으면 뭐 해."
형은 또 대충 대답하더니 티비를 켰다. 강호동이 나오는 예능이었던 것 같다. 형은 그걸 보기 시작하더니 웃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 재미없어."
형은 또 채널을 돌려서 또 다른 예능을 찾고 다시 웃기 시작했다. 나는 한 인간의 그렇게 빈 껍데기같은 웃음을 본 것이 난생 처음이었다. 나는 괜히 화를 내기 시작했다.
"형, 방청소 좀 해. 먼지 좀 봐."
형은 "고양이 때문에 금방 생기는거야." 라고 했지만 내 눈에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가 어디 있는데?"
형은 벽에 기대고 있던 고개를 삐죽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밖에 나갔나? 맨날 어디 숨어있어." 하고 다시 그 예능에 시선을 붙였다. 더러운 화장실, 오랜 기간 쓰지 않아 녹슨 싱크대, 언제 썼는지 모를 냄비와 수저. 고양이를 찾기 전에 그런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숨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형, 뭐하고 살아?"
형의 생계가 궁금해졌다.
"나 그냥 알바하고 살지."
엄마에게 형이 알바하는 곳을 들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반만 믿고 있었는데. 나는 그 이후로 한동안 화난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계속 채널을 돌리면서 웃음을 찾는 형을 바라보며 형이 사준 피자를 먹었다. 꼭 슬픔에 피자를 찍어먹는 것 같았다. 나는 왠지 침을 꿀꺽 삼키고 진짜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형... 공부는 안 해? 형 공부 잘 했잖아.”
형은 말이 없다. 나는 말없이 피자를 우물우물 먹고 있는 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응?”
“잘 하면 뭐하냐.”
“형!!”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주체가 안 되어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형이 놀라 날 돌아보는 눈에는 슬픔이 잔뜩 어려 있었다. 난 알 수 있었다...
“어떡하라고?”
형은 거의 울 것 같다.
“형...”
형은 굳이 큰 길까지 나를 바래다주었고 나는 "형, 또 봐." 하는 말을 남겨두고 여태, 그러니 이 이야기로부터 5년이나 지난 지금도 형을 또 보지 못하고 있다. 형을 그렇게 보내고 몇 달 후에 이모네 집을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형 방이었던 곳은 원래 창고였던 것처럼 탈바꿈했다. 형 자취방처럼 퀘퀘하다. 나는 이모 몰래 그 방에 들어가 남아 있는 만화책이 있을까 하고 몸을 숙여 뒤적였다. 들킨다는 말이 우습지만 그냥 이모가 창고를 뒤적이는 나를 발견했고 들켰다.
"뭐해?"
"형 만화책요. 심심해서요. 남아있는 거 없어요?"
"그게 언제적인데 ~ 몰라 나도, 계속 없어지더라?" 이모의 새된 말투가 들렸다.
이모가 미웠다. 나는 왠지 눈이 뜨거워져서 이모가 있는 쪽을 바라보지 못했다. 잡동사니와 얹힌 먼지로 꽉 찬 창고가 나에게는 텅 비어 보였다. 형의 존재는 아주 작은 점으로, 방 안의 가장 어두운 귀퉁이 모서리의 한 점으로 소멸해버린 것 같다. 형이 여기서 어린 시절을 전부 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어떤 흔적 없이 완전한 창고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어있었다.
나는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 형은 어디 있어요?"
이모가 대답했다.
"몰라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