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는 항상 이모없이 할머니집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맨션. 숨 가쁘게 올라갔던 꼭대기 층엔 그녀가 살고 있다. 항상 열어두었던 푸른빛의 회색 현관문, 언제나 신발로 가득 차 있는 현관, 신발을 벗을 때쯤 나던 향냄새, 고개를 들면 보이던 달마도, 하얀 옥빛의 반짝이는 장판, 양 옆으로 페르시안 풍 카페트와 언제나 깨끗한 레이스 식탁보가 놓여진 식탁. 펜스가 쳐진 옛날식 베란다, 거실과 맞닿아있는 베란다 입구... 를 브라운관TV가 살짝 가로막고 있다. 그녀의 집에 갈 때면 나는 항상 TV앞에 고정되어있는 페르시안풍의 구식 카페트에 자리를 잡고 그 옆에 큰 오디오 기계가 들어있는 유리 상자에 기대어 앉았다. 할머니, 그녀는 항상 거실을 전부 내려다볼 수 있는 부엌 의자에 앉아 허공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단 한 번도 거실 카페트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부엌 가장 가까운 식탁 의자에, 항상 같은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었다. 그녀는 TV를 보지도 책을 읽지도 않았다. 하기사 그녀는 글을 몰랐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그녀가 식탁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물 다듬기, 마늘 까기, 과일 깎기, 장아찌 담기, 무 썰기 ... 등의 순전히 음식 재료 손질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가면 까슬한 카페트 끄트머리에 앉아 기대어 옥빛의 맨질맨질한 장판을 만지기를 좋아했다.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리면 그녀는 식재료 손질을 하거나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허공에 뭐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그런 그녀가 활기를 찾는 순간이 있었다. 좁다란 베란다에 길게 늘어진 화분들을 돌볼 때다. 광나는 갈색과 파란색의 타일들. 퍼석한 화분들. 키가 커 길게 늘어진 식물들. 계단식 선반 위에 놓인 색이 화려한 꽃 화분들. 하얀 레이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그녀를 떠올리면 꼭 생각나는 유독 주황빛의 태양. 그녀는 태양의 공기 속에서 자신만의 정원에 들어갈 때마다 젊어지는 듯 했다. 꽃잎을 만지고 줄기를 묶고 습관처럼 쓰던 하얀색 천으로 잎사귀를 닦을 때 그녀의 주름진 손은 그 어떤 손보다 고왔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녀가 베란다로 화분을 돌보러 나갈 때면 그 뒤꽁무니를 쫓아 몇 분이고 베란다 턱에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잠자코 있던 그녀는
“얘덜도 다 알어. 예뻐해주는 거. 예뻐해줘야 예쁘게 크는겨.”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 중 사랑초, 그것만은 자리를 지키며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 다른 꽃들은 이제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사랑초만은 그녀의 곁을 언제나 지키고 있었기에, 그녀처럼 붙박이였기에, 내 머릿속에 가장 선명히 남아있다. 꽃은 봄과 여름에 개화하지만, 새까맣게 핀 보라색 잎사귀는 항상 그대로다. 까만 보라색 나비 떼 같은 잎사귀. 사랑초는 신경 써서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런 사랑초를 터줏대감처럼 옆에 끼고 사랑초가 서운하리만큼 다른 화분들을 정성껏 돌본다. 그럼 나는 할머니가 그 유기체들을 어떤 방식으로 예뻐해주는지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한참 동안 그 손짓을 쪼그려 앉아 바라보았다. 그 손동작을 보고 있자면 마치 할머니가 나를 쓰다듬어 주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따뜻했다. 하지만 내 사촌들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할머니 옆을 졸졸 쫓아다닐 때면 그 애들은 카페트에 앉아 시큰둥하게 TV만을 쳐다보았다. 사촌들은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매일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그 애들은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많아야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꼴로 그녀의 집에 갔었고, 작은 이모네 아이들은 그녀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방 3개는 할아버지, 막내 이모, 막내 삼촌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와 유진이, 동진이는 항상 거실에서 먹고, 거실에서 숙제를 하고, 거실에서 잤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와 세 사람은 언제나 같은 공간 안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작은 이모는 미혼모다. 돈을 벌러 나가면 애들을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사촌 언니, 나랑 동갑인 유진이, 새이랑 동갑인 동진이를 여기 맡긴다. 우리가 올 때면 나이대가 비슷한 우리는 어릴 때 할 수 있는 놀이는 다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은 항상 엄마가 당일 저녁에 우리를 데리고 갔기 때문에 매번 다 놀아놓고서도 아쉬움을 느꼈다. 엄마는 언제나 할머니네의 하얀 레이스 커튼이 붉게 물들어갈 때쯤 전화를 하곤 했다. 할머니네 집 전화는 거의 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간 날 전화가 오면 무조건 엄마에게서 온 전화였다.
“야, 닌엄마 전화 왔다.”
할머니는 그래도 첫째인 나에게 항상 전화를 바꿔준다.
“응! 엄마.”
“응, 연이야. 엄마 곧 간다.”
“엄마, 우리 할머니네에서 자고 가면 안 돼?”
“안 돼. 할머니 피곤해.”
더 놀고 싶은데 항상 우리를 억지로라도 데려가는 엄마에게 미운 감정도 든다. 우리가 올 때면 항상 저녁 일찍 데리러 오는 엄마에게 할머니는
“얘덜 자고 가라혀 ~ 내일 일요일인데 뭣허러 데려가냐?”
라고 했었기 때문에, 나는
“아니야! 할머니는 우리 있는 거 좋아해! 엄마 오지마!”
라고 투정을 부렸다.
“너 진짜 혼날래? 암튼 엄마 지금 가니까 새이랑 갈 준비하고 있어.”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 ~ 진짜 !! 알겠어 ...”
전화를 끊으면 할머니와 사촌들이 더 눈에 밟혔다. 어릴 땐 모든 순간이 마지막 같다.
“닌엄마 또 오라지? 왜 너네를 못 데려가서 안달여. 걔도 참 피곤허게 살어. 맽겨놨는데 뭣하러 금방 데려간댜.”
할머니는 그때마다 궁시렁댔다.
그럴 때마다 유진이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부럽다. 나도 엄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