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2)

아기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by 정서윤

“이모 언제 온대?”

“엄마 다음 주에 온대. 다음 주에는 꼭 온대. 저번에는 엄마가 피자 사줬어. 근데 저번 주에는 못 왔어. 근데 다음 주에는 꼭 온대.”

“나도 이모 보고싶다.... 근데 너네 평소에는 뭐해? 맨날 여기 있으면 안 심심해?”

“몰라. 엄마가 안 데리러 오는데 어떡해. 그래도 학교 끝나고 교회 애들이랑 놀고, 요 앞 놀이터에서도 놀아.”

학교가 끝나고 바로 학원에 가는 나와 새이와는 달리 확실히 유진이와 동진이는 까무잡잡하다. 하지만 언니는 하얗다. 언니는 말수도 없고, 우리 이야기를 언제나 말없이 듣고만 있다. 할아버지 방에는 책이 많고 언니는 학교가 끝나고 아마 그 방 안에 있는 책들을 읽는 것 같다. 언니는 이모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소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작은 이모는 아기를 가졌다. 또 다른 남자의 아기를. 그러니까 유진이네 남매는 이제 세 명의 아빠를 가진 네 남매가 되는 것이다. 언니에 아빠 하나, 유진이와 동진이에 아빠 둘, 새 아기에 아빠 셋. 그 중 유일하게 언니만 자신의 아버지를 모른다. 언니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사람이 살 곳은 누군가의 마음속뿐이라는 작은 이모의 말처럼, 그녀는 마치 자신이 살 곳을 계속 찾아 헤매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살 곳을 찾아 평생을 헤매다가 실제 육신을 뉘일 곳은 얻지 못했다. 작은 이모는 누군가의 마음에 살기 위해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사람을 찾아다니는 데에 매달 월급을 모두 탕진해 항상 쫓기듯 집을 옮겨 다녔던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 셋을 키우리라는 희망은 만무하다. 하지만 이제 넷이다. 할머니는 언니부터 유진이, 동진이까지 모두 키워냈고 이제는 새 아기까지 키워야 할 것이다. 엄마는 작은 이모에게 새 아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우리 앞에서 작은 이모를 욕했다.

“미친년.”

그 당시 열여섯이었던 나는 그 한마디의 뜻을 모두 이해해버렸다. 어쩌면,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모가 싫지 않았다. 어린 내 시선으로 가끔 할머니네에서 보는 이모는 정말 매력적인 여자였기 때문에 ... 언제나 미용실을 다녀온 듯한 세팅된 머리, 곁에 가면 나던 좋은 향수 냄새, 한껏 올린 풍성하고 새까만 속눈썹, 우리 엄마와는 다른 아가씨 같은 옷. 무엇보다 이모의 좋은 점은 우리 자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우리를 엄격하게 기르셨기에 작은이모에게 우리는 어쩐지 제약에 갇힌 아이들 취급되었다. 실제로 약간은, 그러기도 했다. 가끔 할머니네에서 마주치던 이모는 화려한 겉치장을 벗고 언제나 입던 나시, 짧은 바지에 민낯이었을 때도 예뻤다. 이모는 풍만한 가슴을 펼치며 식탁 의자 등받이에 한쪽 팔을 올리고, 다리 한쪽을 접어 올린, 아직도 눈에 그려지는 듯한 익숙한 자세로 우리에게 말한다.

“언닌 얘네를 너무 잡아. 연아, 새이야. 너네는 무슨 여기까지 숙제를 들고 오냐? 나중에 하걸랑, 얼른 피자나 먹어. 숙제 안 한다고 안 죽는다야?”

“안 돼요, 이모. 저 이거 오늘까지 안하면 엄마한테 죽어요.”

“야! 죽기는 무슨. 하지마. 이것부터 먹어 얼른! 언닌 무슨 공부 안하면 굶어 죽는 줄 알어. 공부 못해도 다 먹고 살어. 애들을 아주 들들 못 볶아서 안달이니. 내가 너네 엄마 같았음, 그렇게 안 키워. 우리 애들은 말이야. 하기 싫음 안 시켜. 완전 자유야 자유!”

그러면 유진이는

“맞아. 울엄만 하기 싫은 건 안 시켜. 이모는 너무 깐깐해!”

하며 이미 피자를 반 이상 입에 넣고 씹으면서 말한다. 동진이는 벌써 몇 조각을 해치웠다. 언니는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모의 성화에 못 이겨 숙제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으려 거실로 가는 도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문신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모의 밑위가 짧은 바지 위로 보이는 등허리와 엉덩이 사이에 나비 타투. 나는 어쩐지 그것을 보고 얼굴이 뜨거워져 물을 생각을 못하고 식탁에 돌아와 조용히 피자를 먹기 시작했었다. 나는 우리 엄마와 정반대인 작은 이모를 좋아했지만, 유진이가 부럽지는 않았다.

그런 작은 이모가 몇 년이 지나 또 새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니, 열여섯의 나 또한 기쁜 마음보다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모의 출산 소식이 들려와 우리 가족은 병문안을 갔다. 병실에 들어가니 얼굴이 퉁퉁 부은 작은 이모가 하늘색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다. 아기가 거꾸로 서 있어서 이모는 처음으로 제왕절개를 했다고 하며 출산을 마친 산모답지 않게 평소처럼 깔깔댔다. 할머니는 옆에서 작은이모를 갓 낳은 아기처럼 쓰다듬고 있다. 내 나이의 시선으로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 어떤 것도 읽어낼 수 없다. 하지만 엄마의 얼굴에는 찝찝함을 드러낼 수 없는 찝찝함이 어리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래. 고생했다. 마지막인데 수술을 할게 또 뭐냐. 아무튼 축하해.”

“글쎄, 마지막이면 좋겠지.”

작은이모는 또 깔깔댄다. 옆에 서 있는 낯선 남자와 함께.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남자가 그땐 참 못생겼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또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엄마는 그때 많은 것을 참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기는? 몇 층 가야 돼?”

더 이상 병실에 있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이모에게 물었다.

“응, 4층. 나랑 같이 가.”

이모는 링겔을 꽂은 채로 배를 부여잡으면서 일어났다. 이모는 산발에 얼굴이 퉁퉁 부어도 예쁘다. 이모가 일어나면서 언니가 눈에 들어온다. 언니가 여기 있었구나. 언니는 점점 더 새하얘진다. 언니는 시들어가는 식물 같다. 유진이, 동진이는 동생이 생겼다고 들떠있다. 우리는 다 같이 4층으로 작은이모가 갓 낳은 아기를 보러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마다 언니는 점점 더 희미해져가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주 큰 유리벽 너머 불명의 수많은 아기들이 즐비해있다. 모두 똑같이 생긴 아기들. 하지만 이모는 단번에 알아본다.

“아! 저기 있다!”

남색 반팔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 언니가 우리를 눈짓으로 보고 천사같이 웃으며 아기를 들어 보여준다. 엄마, 아빠, 새이, 나, 작은 이모, 유진이, 동진이는 유리벽에 눈을 붙이고 온 신경을 아기를 자세히 보는 데에 집중했다. 아기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기쁨도 슬픔도 아닌, 도무지 질서가 잡히지 않는 것. 거꾸로 태어난, 역의 운명을 타고난 아직 눈 뜨지 못한 하나의 덩어리.

“우와.......”

“이모, 아기 이름은 뭐예요?”

“응, 수진이, 저기 써 있잖아. 김수진.”

나는 그때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도 한 발짝 뒤에서 계속 아기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때를 짐짓 사무치게 돌아본다. 그때 언니의 눈빛에는 일종의 사랑스러움이 담겨있었다. 갖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닿을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는, 그런 사랑스러움, 혹은 애정과 열망의 눈빛. 내가 언니를 돌아본 이유는 언니가 성을 되찾았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해린, 이해린. 해린 언니는 다시 김해린이 되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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