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형 (2)

잃어버린 것

by 정서윤

형은 그 때 고3이었는데, 머리가 아주 빡빡 머리였다. 시간은 밤 9시, 형은 그 때 맞은편 신호등에 서 있었다. 나는 형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형!"하고 외쳤다. 빡빡머리가 고개를 들고 이어폰을 빼며 눈동자를 굴렸다. 형은 나를 발견했는데, 그다지 반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아니면 이번에도 너무 의젓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2년 만에 만났는데 맞은편의 형의 첫 마디는 “어.” 였다. 신호등이 켜지고 난 중간쯤 걸어가 형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형은 나보다 작아져있었다. 난 발걸음을 돌려 형이 가는 길을 잠시 따라갔다.

"형! 어디가?"

"어, 집."

"형,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여?"

형은 진짜로 어깨도 좁았고, 키도 나보다 작아진 탓에 몸이 더 축 쳐져 보였다.

형은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이냐는 내 말에 그냥 웃기만 했다.

"형, 교복 입은 거 멋있다."

형의 교복 입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형은 그냥 또 웃기만 했다.

그러고는

"나 갈게." 하고 말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계속 변죽이 좋았던 놈인 나는 "형 잘가!!"하고 형의 빡빡머리에 대고 외쳤다. 그러고 나서 형을 4년 동안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근근이 엄마 입에서 들려오는 이모네 소식에 형의 소식이 곁다리로 딸려왔을 뿐이다. 나는 이따금씩 형의 소식이 궁금했으나 나는 형의 번호가 없었다. 그러나 형의 번호를 구할 만큼 궁금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4년쯤 지났으려나, 초여름날 밤에 형과 또 길거리에서 마주쳤다. 형은 모자를 쓰고 비닐봉지를 두 손에 가득 들고 있었다. 길모퉁이에 서서 택시를 잡고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발견했다.

나는 또 "형!" 하고 불렀다.

4년 후 만난 형은 조금 더 키가 큰 것 같았다. 머리도 길렀고, 하지만 여전히 말랐다.

형은 뒤돌아 나를 발견하더니 이번에는 "야! 뭐야. 웬일이냐 니가 여기."하고 형 치곤 꽤나 긴 어구를 내뱉었다. 그 사이 택시는 잡혔고 우리는 만나자마자 또 헤어질 것 같았다. 그 때 형이 말했다.

"탈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도 했으나 왠지 신나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데?"

나는 이미 택시에 몸을 실으며 물었다.

"이 시간에 집엘 가지 어딜 가냐."

형은 왠지 나처럼 변죽이 좋아졌고 형의 이런 모습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가벼운 날씨 탓인가?

"밥은 먹었어?"

생각해보니 밤늦도록 저녁을 못 먹었다.

"음... 아니 그러고 보니 안 먹었네."

"우리 집에서 피자 먹고 가."

형이 옛날부터 피자를 좋아했던 게 생각났다. 형은 어느샌가 독립해 혼자 산다고 들었다. 형은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을 가지 않았다. 이모가 형의 등록금을 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괜히 형의 지갑 속이 걱정되어 형이 들고 있는 것을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이건 내 꺼야 임마."

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죽이 좋아졌을까? 어쨌든 나는 비밀 속에 싸여있었던 형의 자취방을 가본다는 사실에 흥분되었다. 다녀와서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해줘야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형이 사는 곳의 대문을 넘어 현관을 열었다. 뭔가 텅 - 비어있다. 좁고 작은 복도 옆에 작은 방이 있고, 복도 끝에 작은 부엌과 안방이 있었다.

부엌엔 먼지가 쌓여있고, 안방엔 고양이집, 침대, 티비뿐이었다. 정말 잠만 자러 오는 곳이라는 느낌이었다. 아니, 나로서는 이 쾌쾌한 방에서 잠도 어렵다.

"만화책은 어디 있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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