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간]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찾아서

10화 정철조

by 초로의 궁사

서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였고, 해부학자이자 발명가였으며, 검술의 달인이었다. 수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원근법과 비례법 등 회화의 과학적 토대를 다지기도 했다. 그래서 특정 영역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이런 천재들을 우리는 그 시대와 묶어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역사에도 이런 ‘르네상스적 인간’이 존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널리고 널렸다. 조선의 선비라는 개념 자체가 신언서판(身言書判)에 육예(六藝)를 두루 갖춘 다재다능형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선의 이상적 인간상 자체가 이미 르네상스적이었다.

우리 민족이 낳은 최고의 천재 정약용은 물론이고, 흔히 꽉 막힌 성리학자로 여겨지는 이황조차 도인체조를 고안해 보급한 ‘체육인’이었다. 조선의 선비는 철학자이자 의사였고, 농장을 운영하는 바이오 중소기업 대표였으며, 동시에 각자의 방식으로 격물치지를 실천하는 현장 연구자였다.

붓을 내려놓고 망치를 든 선비

18세기 조선의 밤을 밝힌 석치(石痴) 정철조는 그중에서도 특히 버라이어티한 인물이다. 그는 글로만 우주를 논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망치와 정을 들고 돌의 결을 깨뜨리며, 사물의 이치를 손끝으로 증명하려 했다.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손은 늘 돌가루와 쇳가루로 거칠었다. 당대 선비들이 ‘천한 일’이라 외면하던 수공 노동을 그는 학문의 연장으로 받아들였다.

호 ‘석치’, 곧 ‘돌에 미친 바보’. 이 이름은 조롱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마음에 드는 돌을 만나면 며칠을 굶으며 벼루를 깎았고, 모양의 미뿐 아니라 먹이 갈리는 마찰, 물을 머금는 보수력까지 계산했다. 벼루 한 점을 다듬는 일은 그에게 격물치지의 육체적 실천이었고, 앎에 이르는 가장 정직한 통로였다.

톱니바퀴로 우주의 질서를 맞추다

그의 재능은 벼루에 머물지 않았다. 자명종이나 혼천의 같은 국가 표준 기계가 고장 나면 손댈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정철조는 톱니바퀴 하나까지 분해해 다시 맞췄다. 책이 아니라 작업대 위에서 우주의 질서를 배운 사람답게 그는 두려움이 없었다.

‘구고현의 법’, 즉 피타고라스 정리와 기하학 원리에 정통했던 그는 서양의 수학과 과학 지식을 조선의 언어로 번역한 공학자이자 예술가였다. 연암 박지원이 그의 손재주를 두고 “귀신같다”고 탄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철조는 관념에 갇힌 유교가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증명되는 ‘살아 있는 실학’을 증언한 인물이었다. 흔히 조선 후기 천문학 하면 홍대용을 떠올리지만, 정철조 역시 글이 아니라 두 손으로 우주를 이해하려 한 동시대의 학우였다.

기술 관료, 화가, 그리고 폭탄주를 만든 언론인

그가 규장각에서 국가 과학 기구와 제도를 바로잡는 데 전력을 쏟은 것은 인생의 후반기였다. 쉰을 전후해 정조의 신임을 얻어 기술 자문역을 맡았고, 젊은 시절 단련한 손의 기술은 거의 50에 이르러 비로소 나라를 지탱하는 지혜로 확장되었다.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정조 어진 제작의 책임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본업’을 묻는다면 답은 의외다. 그는 사간원의 정언으로 관직을 시작한, 왕과 직접 대면해 간쟁과 논박을 벌이던 인물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에 가깝다.

다재다능했던 만큼 주벽도 별났다. 소주와 막걸리를 섞은 ‘혼돈주(混沌酒)’를 개발하고 즐겼는데, 지금으로 치면 폭탄주에 해당한다. 결국 그 주벽은 병이 되어 그는 갓 쉰을 넘겨 생을 마감했다. 짧은 삶이었기에 오히려 그의 인생은 더 높은 밀도로 빛난다.

이제 시작해보는 르네상스

현대 사회에서는 원래 하나였던 삶과 예술이 분야별로 지나치게 세분화, 전문화되었다. 경계를 넘는 일은 무모하거나 금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은 쭈뼛쭈뼛 눈치나 보던 인생 전반전의 이야기다.

이제 인생이라는 게임의 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슬슬 그 경계를 넘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도, 늦게 피는 르네상스적 인간이 될 수 있다. 정철조처럼 말이다.

#석치
#정철조
#박지원
#홍대용
#르네상스
#북학파
#혼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