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기억 02

by 전우진

잠에서 깨어 핸드폰을 보니 아침 9시 5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우진이를 택시 태워 보내고 길 건너 택시를 탔었다. 대방역에 내려서 집까지 걸어온 다음 세수와 양치를 하고 신서유기 재방송을 보다가 잤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 되었고, 오늘 아침은 어젯밤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7평짜리 원룸 다세대 빌라 2층에 있는 나의 방이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도 그대로고 현관에 벗어놓은 운동화와 슬리퍼도 그대로였다. 교체할 때가 지나 허옇게 된 전자모기향도 그대로였고, 6번 줄이 끊어진 채 방치되어 먼지가 쌓여있는 기타도 그대로였다. 굳게 닫혀있는 현관문도 그대로였고,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구멍이 뚫려 청 테이프로 막아놓은 방충망도 그대로였다.


‘저게 왜 우리 집에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어제 집에 들어와 있을 때부터 있었나 싶었지만, 씻고 텔레비전을 보는 사이에 저걸 본 기억은 전혀 없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들어온 건가?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방충망이 처져 있었다. 저 고양이가 방충망을 열고 들어온 다음 다시 방충망을 닫은 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충망을 열고 창문을 내다보니 고양이가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반지하나 1층이라면 들어올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집은 새라면 모를까 고양이가 뛰어 들어올 만한 높이가 아니었다. 가스관이나 베란다를 통해 들어올 수도 없었다.


솜사탕처럼 하얀 고양이는 볕이 들어오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생각에 빠진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천천히 다가와 내 손에 자기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털이 매우 보슬거리고 부드러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고양이에 매료되어 한동안 고양이의 등을 쓸어 넘기고, 턱을 긁어주었다. 고양이는 분명 누군가 키우던 고양이 같았다. 털도 깨끗하고 눈에 눈곱 같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우선 찬장을 열어 참치통조림 하나를 꺼내서 분리수거 하려고 놔뒀던 햇반 용기에 담아 주었다. 그리고 물도 주었다. 고양이는 천천히 다가와 참치통조림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가 참치를 먹는 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이 고양이는 어디로 들어왔을까? 누가 키우던 고양이일까? 비싼 고양이 같은데. 고양이를 찾아주면 주인에게 사례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고양이가 참치를 다 먹는 걸 기다렸다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고양이를 집에 놔둔 채 밖으로 나갔다. 고양이는 나를 쳐다보며 잘 갔다 오라는 듯 “냥.”하고 조용히 울었다. 피시방에 도착한 나는 핸드폰에 찍힌 고양이 사진으로 전단을 만들었다. 고양이 사진을 가운데 크게 자리 잡게 하고 아래쪽에 내 집 위치와 핸드폰 번호를 적은 뒤 컬러로 인쇄했다.


“30장 컬러 인쇄하셔서 3만 원입니다.”


인쇄비와 피시방비를 계산하고는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에게 피시방에 고양이 전단을 한 장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아르바이트는 흔쾌히 전단을 입구 옆 벽에 붙여주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테이프를 구매한 다음 동네를 돌아다니며 전단을 붙이기 시작했다. 전봇대나 벽,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 경비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파트 게시판에도 붙였다. 나는 전단을 붙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이 얼마나 줄까? 비싼 고양이 같은데 한 10만 원은 주겠지? 전단 만든 비용까지 15만 원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야 어쩌면 더 줄지도 몰라. 만약에 안 준다고 그러면 어쩌지? 법적으로 줘야 하는 것 아냐? 혹시 나를 고양이 도둑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그나저나 고양이는 도대체 어떻게 집으로 들어온 걸까?’


전단을 다 붙이고 집에 들어오자, 고양이가 천천히 다가와 나의 다리 사이에 몸을 비비며 지나갔다. 나는 바닥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테이프를 사며 같이 샀던 육포를 뜯어 고양이에게 주었다. 고양이는 몇 번 냄새만 맡고는 먹지 않았다. 나는 육포를 사지 말고 오징어포를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는 볕이 든 바닥으로 가서 혀로 자신의 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에 들어오면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고 집이 푸근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양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도 안 된 짧은 시간이지만 고양이와 정이 든 기분이었다. 나는 왠지 고양이와 오랫동안 같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고양이 먹이를 사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