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기억 03

by 전우진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핸드폰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일요일 아침에 전화 올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고양이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고양이는 내가 벗어놓은 티셔츠 위에 올라가 자고 있었다. 전화가 고양이 주인에게 걸려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번호가 이상했다. 010으로 시작하는 핸드폰 번호도 아니었고, 02나 070으로 시작되는 일반전화도 아니었다.


“여보세요?”


건너편 상대방은 한참 말이 없다가 대답을 했다. 마치 우주에서 걸려 온 전화 같았다.


“.......오인선 씨 오빠 되시는 분 전화인가요?”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저는 페루 한인교회 목사 고춘석입니다. 이런 소식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어젯밤 인선이가 사망했습니다.”


나는 한인교회 목사라는 사람의 말을 듣자마자 우주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 내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 요?”

“인선이가 어젯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택시 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아마 과로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죽음이었다. 페루까지 가서 과로사로 죽다니. 멍하니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나에게 고양이가 무릎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나는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한인교회 목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으나 전혀 들리지 않았다. 대략 장례는 어떻게 치를 것이며 언제쯤 페루에 올 수 있냐는 질문 같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후 한인교회 목사에게 문자가 왔다. 페루 리마에 있는 한인교회 주소와 자신의 연락처였다. 나는 문자를 확인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초인종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우진이 뛰어 들어왔다.


“뭐야? 저 고양이는?”

“너 연락도 없이 왜 왔어?”

“무슨 소리야? 인선이 죽었다고 네가 전화했잖아.”

“내가? 아. 맞다 그랬지.”

“밥 안 먹었지?”


우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은박지에 쌓여있는 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듯 아무 생각 없이 김밥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 사이에 우진이는 물을 따라서 나에게 준 다음 고양이에 관심을 보였다. 우진이는 고양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핸드폰 충전 선을 뽑아 휙휙 돌렸다. 하지만 고양이는 우진이를 피해 내 발아래로 숨었다.


“이 고양이는 어디서 난 거야?”

“몰라. 토요일 아침에 눈 떠 보니까 집에 있더라고.”

“이거 주인 있는 고양이 같은데? 이거 페르시아고양이라고 엄청 비싼 고양이야.”

“얼마나 비싼데?”


우진이는 고양이에게 다가와 자세히 보더니,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했다.


“오드아이라고 눈 색깔이 다르면 더 비싼데 그래도 이 정도면 한 백만 원 정도 해. 어떻게 보면 땡잡은 거네? 자고 일어났더니 백만 원짜리 고양이가 떡 하니…….”


우진이는 신이 난 듯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표정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그나저나 비행기 표는 구했어?”

“뭐? 어? 아아. 여행사에 물어봤는데 내일 가는 비행기 표 있데. 인천에서 디트로이트로 가서 애틀랜타로 간 다음 거기서 다시 리마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해.”

“그럼, 몇 시간을 가야 하는 거야?”

“갈아타는 시간 포함해서 28시간 정도 되는 거 같던데.”

“그것도 고생이다.”


우진이는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내가 이백만 원까지 빌려줄 돈은 없고. 이거 내 통장에 있는 돈 전부인데. 인선이 부조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나는 우진에게 봉투를 받아 열어보았다. 오만 원짜리 여러 장이 보였다.


“칠십만 원이야. 나도 가진 게 그게 전부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한테 빌려봐.”

“고맙다.”

“고맙긴 뭘. 뭐 못 도와줘서 미안하네. 내가 지금 페루까지 갈 수도 없고.”


우진이와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침묵이 싫었던지 고양이가 “냥.”하고 울었다. 그러다 문뜩 고양이가 걱정되었다. 페루에 다녀오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그동안 고양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우진아. 나 페루에 있는 동안 고양이 좀 맡아줄래?”

“안 돼. 우리 집 초코 있잖아. 걔 고양이만 보면 아주 난리야. 산책하다가도 고양이만 보면 쫓아가서 엄청나게 짖어대.”

“아. 그렇구나.”

“희정이한테 맡겨.”

“희정이. 걔는 좀 그런데.”

“왜? 뭐가 그래? 걔 맡아달라고 하면 바로 맡아줄걸?”

“그건 아는데. 걔 성격상 맡아주기 곤란해도 그냥 알았다고 할 것 같아서.”

“그래 봐야 일주일인데. 뭐 어때. 전화해 봐.”

“모르겠다. 아무튼, 고양이는 내가 알아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