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린 카리코 (1) 뉴클레오사이드 화학으로 포착한 mRNA의 신비
나는 먼저 2023년 노벨의학상/생리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출신 과학자 카탈린 카리코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카리코 박사가 다른 두사람보다 최근에 노벨상을 받았다거나 나이가 가장 많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다. 카리코 박사가 나와 비슷한 커리어 여정을 밟았기 때문에 먼저 카리코 박사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많은 연구자가 핫한 최신 기술이나 유행하는 테마(Hot Topic)에 마음을 빼앗겨 쫓아다닌다. 그러나, 카리코 박사는 가장 밑바닥의 기초에 천착했다. 그녀의 독보적인 커리어는 대단한 발견이나 유행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분자를 한 땀 한 땀 짓는 **'정직한 뉴클레오사이드 유기화학자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카리코의 과학적 고향은 헝가리 세게드 생물학 연구센터(BRC)의 옌뉘 토마(Jenő Tomasz) 박사 실험실이었다. 토마 박사는 유기화학자로서 뉴클레오사이드 화학의 대가였다.
연구비가 부족했던 당시는 시약을 사서 쓰는 대신 원료 물질부터 직접 합성해야 하는 지독하게 열악한 곳이었다.
카리코는 그곳에서 '뉴클레오사이드 화학'과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짧은 RNA 조각) 합성'을 배웠다. 뉴클레오사이드 화학은 유기화학자에게도 어렵기로 유명한 합성 화학이다.
그녀가 안뇌 토마 연구실에 들어간 해는 1978년 (23세)이었다.
카리코는 1982년 (27세)에 세게드 대학교에서 뉴클레오사이드 합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표적은 항바이러스제였다.
당시에 뉴클레오사이드 합성은 매우 지루하고 반복적 작업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RNA라는 분자가 어떻게 연결되고, 왜 그토록 쉽게 파괴되는지 '손끝'으로 익혔다. 훗날 전 세계 생물학자들이 mRNA의 불안정성 앞에 고개를 저을 때, 뉴클레오사이드 화학자 카리코가 분자 구조를 세세히 뜯어보며 분자구조 변경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박사 학위 과정 중 그녀는 "짧은 RNA 조각이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분자가 직접 약이 될 수 있다'
는 개념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1982년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3년을 더 안뇌 토마 교수 연구실에서 포스닥으로 연구를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1984년, 시험관 내에서 긴 mRNA를 합성할 수 있는 혁명적인 기술인 IVT (In vitro transcription)가 발표되었다. 카리코 박사는 즉시 깨달았다.
'짧은 조각이 약이 된다면, 단백질 정보를 담은 긴 설계도(mRNA)는 우리 몸 전체를 치료하는 공장이 될 수 있다!'
이 확신은 그녀의 연구 인생을 '작은 조각'에서 '거대한 설계도'로 확장시킨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카리코는 세게드 생물학 연구센터(BRC)에서 7년간 헌신하며 연구해 왔다. 하지만 1985년 초, 연구소의 예산이 삭감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해고 통보: 연구소는 그녀의 연구(RNA)가 '미래가 없다'라고 판단했고, 그녀를 해고 명단에 올렸다.
블랙리스트: 당시 공산권 국가였던 헝가리에서 연구소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다른 연구직을 구하기 사실상 불가능해짐을 의미했다. 30세의 젊은 박사에게는 과학자로서의 사망 선고와 같았다.
카리코는 살기 위해 전 세계에 편지를 보냈다. 영국, 스페인 등 여러 곳에 지원했지만 답장이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손을 내민 곳이 미국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 로버트 수하돌닉(Robert Suhadolnik) 교수였다.
조건: 포스닥 자리를 주겠지만, 비자와 비행기 표, 정착금 등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환율의 벽: 당시 헝가리 정부는 자국민이 해외로 나갈 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외화를 엄격히 제한했다(인당 100달러 미만). 가족 전체가 미국에 정착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여기서 그 유명한 **'곰 인형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자금 마련: 카리코 부부는 자신들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차(Lada)를 암시장에 팔아 **900파운드(약 1,200달러)**를 마련했다.
밀수: 이 돈을 가지고 나가다 걸리면 감옥에 가거나 영영 출국이 금지되는 상황이었다. 카리코는 어린 딸 수잔의 분홍색 곰 인형 배를 가르고 그 안에 현금을 뭉치로 집어넣은 뒤 다시 꿰맸다.
탈출: 1985년 늦은 여름, 30세의 카리코는 가슴에 곰 인형을 품은 딸과 함께 편도 비행기표 한 장을 들고 필라델피아 공항에 내렸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에서의 시작이었다.
그때 곰 인형을 품은 딸 (수잔)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조정 미국대표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 템플 대학교의 로버트 수하돌닉 랩에서 그녀의 연구는 실전으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그녀는 커리어 전체를 관통할 거대한 장벽이자 힌트를 만났다. 바로
dsRNA(이중가닥 RNA)가 일으키는 격렬한 면역 반응이었다.
실험실에서 만든 mRNA를 세포에 넣었을 때, 세포들은 단백질을 만드는 대신 비명을 지르듯 염증 반응을 일으키며 죽어갔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이를 보고 "mRNA는 치료제가 될 수 없다"라며 포기했겠지만, 카리코는 달랐다. 그녀는 뉴클레오사이드 화학자의 눈으로 질문했다.
"왜 우리 몸은 내가 만든 RNA를 외부 침입자로 인식하는가?
어떤 분자 구조가 이 신호를 만드는가?"
템플대의 낡은 실험실에서 보낸 이 고독한 시간은 훗날 mRNA 백신의 핵심인 '뉴클레오사이드 변형'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인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의 지루한 훈련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카리코가 배운 낡은 뉴클레오사이드 화학합성 기법이 훗날 노벨상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익히는 기초 기술은 미래의 난제를 풀 유일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전문성의 융합을 고민하세요: '화학'이라는 기초 체력이 있었기에 카리코는 '생물학'의 한계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전공 지식을 어떤 다른 분야와 결합할 것인가요?
실패한 데이터 속에 답이 있습니다: 세포가 죽어나가는 '실패한 실험'에서 카리코는 면역 반응이라는 '새로운 질문'을 찾아냈습니다. 당신의 실패한 데이터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