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린 카리코 (3) 강등, 암 투병, 그리고 복사기 앞의 기적
워싱턴 해군 연구소에서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온 카리코에게 UPenn은 꿈의 무대여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가 마주한 것은 장밋빛 미래가 아닌, 인간의 존엄마저 시험하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1995년, 카리코는 학계의 냉혹한 시스템 앞에 발가벗겨졌다. 당시 그녀는 테뉴어 트랙(정교수 승진 경로)에 있는 연구교수였지만, 수년간 mRNA 연구로 연구비를 따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학 당국으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았다.
대학은 그녀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학교를 떠나거나,
아니면
직급을 강등당하고 연봉을 삭감한 채 남거나."
이는 과학자에게 사실상의 퇴출 선고이자 모욕이었다.
동료들은 그녀를 '가망 없는 연구에 매달리는 고집불통'으로 취급했고, 그녀의 자리는 실험실 메인 공간에서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녀는 굴욕을 삼키며 남기로 했다. 오직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육체마저 그녀를 배신했다.
강등 통보를 받은 직후, 그녀는 침샘암(Salivary gland cancer) 진단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남편 베라는 비자 갱신 문제로 인해 반드시 헝가리로 출국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헝가리로 떠난 뒤, 카리코는 홀로 어린 딸을 돌보며 암 수술을 준비했다. 수술 당일, 보호자도 없이 수술대에 오르며 그녀가 느낀 공포는 암세포보다 차가웠다. 두 번의 큰 수술을 거치는 동안 그녀의 얼굴 근처에는 긴 흉터가 남았다. 하지만 그녀는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회복보다 실험 노트를 먼저 찾았다.
**"내가 여기서 죽거나 포기하면, mRNA의 진실은 영원히 묻힌다"**
는 절박함이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유일한 동력이었다.
수술 자국이 채 아물기도 전, 카리코는 다시 실험실로 출근했다. 연구비가 없어 최신 학술지를 구독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유일한 정보 창구는 의과대학 공용 복사기였다.
1997년의 어느 날, 그 낡은 복사기 앞에서 그녀는 운명의 파트너 **드루 와이즈먼(Drew Weissman)**을 만난다.
당시 와이즈먼은 앤서니 파우치 박사 밑에서 포스닥을 마치고 갓 부임한 신임 교수였다. 그는 복사기 앞에서 한 뭉치의 논문을 복사하며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었고, 뒤에 서 있던 카리코는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카리코: "복사가 꽤 오래 걸리네요. 무슨 연구를 하시길래 그렇게 논문이 많습니까?"
와이즈먼: (무뚝뚝하게) "HIV 백신을 연구합니다. 면역 체계를 자극하려고 RNA를 써보고 있는데, 자꾸 염증이 생겨서 고민입니다."
카리코: (눈을 반짝이며) "당신은 RNA 전문가를 만난 겁니다. 나는 mRNA라면 뭐든 만들 수 있어요(I can make anything). 내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이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선언에 와이즈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강등된 연구자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젊은 면역학자의 에너지가 복사기 소음 속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카리코가 겪은 이 처절한 생존기는 우리에게 세 가지 커리어의 진실을 말해줍니다.
직급은 깎여도 실력은 깎이지 않는다: 대학은 그녀의 직급을 강등시켰지만, 그녀가 10년 넘게 쌓아온 mRNA 합성 실력까지 뺏을 수는 없었습니다. 시스템이 당신을 부정할 때,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타이틀'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숙련도'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기회가 핀다: 카리코와 와이즈먼이 만난 곳은 화려한 학술대회가 아니라 낡은 복사기 앞이었습니다. 그녀가 연구비가 넉넉해 개인 복사기를 썼다면 이 만남은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결핍과 고난이 예기치 못한 최고의 파트너를 연결해 줍니다.
준비된 자의 '한마디'가 운명을 바꾼다: 카리코가 "나는 뭐든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건, 수술실에서도 놓지 않았던 그 지독한 공부 덕분이었습니다. 기회는 우연히 오지만, 그 기회를 낚아채는 것은 평소 갈고닦은 압도적인 자신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