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은 게 왜 중요하냐구?
엊그제 수업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제 슬슬 관리를 할 때가 됐군...." 그리고는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마롱과 함께 즉석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어제 내리 예술담론함.)
타이트하게 관리하던 시절의 2년 전에 비하면 살이 조금 붙어있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지난 일 년을 운동과 식단을 아예 쉬어주는 과정에서 몸이 많이 정상화가 된지라. 애초에 그렇게 많이 먹지도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 이렇게 살고 있어서 되게 다행이다."
뭐 그런 생각을, 안도감이 섞인 찰나의 생각이었다.
"몸이 정신을 위해 버텨주고 있었네요."
4년 전 치료실 침대 위에 처음 누웠을 때였다.
몸을 조금 만져본 치료사 수현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
"문제는, 자기도 자기 몸한테 칭찬해주지 않아."
그때의 나는 침대 위에서 햇빛 맞은 눈사람처럼 울었다.
저는 제 몸이 너무 미웠어요.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다른 애들은 잘 해내는 걸 왜 저는 못 해내는지.
왜 나는 이 지경인지...
"왜요, 얼마나 잘 버텨준 기특한 몸인데요. 정신을 위해 회복하는 속도도 빠른 걸. 위를 만져보면, 이게 다 상처예요. 절식과 폭식을 반복해서 생긴 상처. 근데 '폭식'의 개념이, 극도로 적은 식사를 했다가 갑자기 일반인들이 먹는 양만큼 먹는 것도 폭식이에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아픔을 참는 사람 이상으로, 너무 오래 참아온 사람이었다는 걸. 내가 아프다고 말할 때는 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는 걸.
언제였던가, 국립 암센터를 오가셨던 호흡 교수님께서 하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외모와 인기,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라도 한순간의 사고나 건강 문제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고.
건강이 무너지면 그 위에 쌓아온 것들도 함께 무너진다고. 나는 그 말을 치료를 받던 2년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떠올렸다.
동생인 희현 선생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예술계통 직업군에 계신 분들은, 부상을 입어도 또 잘못된 방법으로 쓰고, 또 써요. 그렇게 해야 당장 이걸 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젊을 때야 몸이 버텨주지만 나중에 가서 인대가 늘어나고 관절이 닳고, 망가지죠. 그러면 은퇴를 하거나 장르를 바꾸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래왔잖아요.
다 알면서도.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해야 하니까.'
"그쵸, 다만 안타까운 건 해야 하는 걸 조금만 더 바른 방식으로, 내 몸이 불편하지 않게 찾아주면 되는데 말이에요."
그 말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친숙한 것과 자연스러운 것을 구분하라는 것. 보여지는 것 너머에서,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고 보살피는 방식을 배우라는 것.
세상은 쉽게 말한다.
"무리는 하지 마. 근데 선택은 네 몫이야."
"그래도 보기 좋은 네가 좋으니까 관리 좀 했으면 좋겠어."
"너 또 아파? 그렇게 아파서 이거 하겠어?"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세계에서 사람이 아니라 소품이 된다. 누군가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거나, 욕망을 투사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는 오랜 시간, 그 안에서 나는 내 몸을 가장 마지막에 두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좀 더 너그러워져 보기를, 내 몸에게 여유와 시간을 주기를 선택했다. 더 이상 극도로 몰아세우지 않고, 무게나 부피감이 커지든 작아지든, 그건 나 자신의 가치가 아닌 내 건강의 현재 상태일 뿐이다. 내 아픔의 크기는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아픈 건 그저 아픈 것이기에 마땅히 치료받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어도 사람에는 귀천이 있다.”
지금의 나는 이 말을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직업이 사람을 귀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사람의 품격을 만든다는 뜻이라고.
그렇다면 나 역시,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면서 귀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는 타인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 역시 나를 아프게 하는 선택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아프면 아무것도 못하거든.
여담
춤을 연습할 때 가끔씩 눈을 가리고 연습을 한 지 1년 정도려나? 수현 선생님이 오른쪽 어깨 재활을 할 때 눈을 감고 움직이라는 조언을 차용해서 찾은 방식. “내가 잘하고 있나?”를 확인하려 할수록 움직임이 끊긴다고. 눈을 가려도 느끼면 된다.
내 몸의 무의식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으니까.
뭐, 내가 외모로 세계를 평정할 얼굴은 아니니까 1년 정도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살아본 거다. (…) 그래도 원칙은 있다. 라면, 밀떡, 중국 음식, 액상과당은 안 먹는다. (어제도 그랬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디저트는 잘 먹고, 본의 아니게 18시간 넘게 하는 간헐적 단식은 매일 한다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