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많던 소녀는, 스승이 준 시계를 매만지곤 했다

너는 너를 어떻게 정의하냐구?

by 도한솔 I Solar


​가끔 10대에서 20대 초중반의 나를 떠올리면 뺨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운 순간들이 많다. 감정은 미숙했고, 태도는 바보 같았다. 매트릭스 세계관을 좀 빌려올 수 있다면, 리모컨 하나로 그 시절의 나를 지켜본 사람들의 기억을 모조리 삭제하고 싶다. 하지만 시간은 단 한 번도 나를 기다려준 적이 없고, 그 모자랐던 기억조차 결국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조각임을 이제는 안다.


​서른의 문턱에 서서 오래된 은사님들께 연락을 드릴 때면, 내 입에선 늘 "감사해요"와 "죄송해요"가 튀어나온다. (특 : "ㅠㅠ"를 연속으로 붙임.) 그때는 왜 그랬을까? 뭐, 내가 인간이라서, 혹은 인정받고 싶어서 이것저것 쑤두룩 빽빽 채우려 한 어린아이여서 그랬을 거야. 수많은 은사님 중에서도 내 안의 심지를 굳건하게 박아주신 분을 꼽자면, 단연 배우 도현 선생님이다.





"한솔이는 항상 질문이 참 많아."


24살에서 25살로 넘어가던 해의 계절학기. 처음 뵈었던 도현 선생님은 나의 모든 부족함을 보고도, 그저 귀엽다는 듯 덤덤히 받아주셨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스승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 귀찮게 질문을 쏟아내던 스물다섯의 여학생. 선생님은 그 당돌한 호기심에도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셨다.


인터뷰中 : 스스로를 '배우'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다. 나한테는 배우라는 게 크게 다가오고 성역 같은 느낌? 스스로를 배우라고 말하는 게 거창하고 부끄럽다. 그 자리에 감히 나를 앉히고픈 자신이 없다. 더 정감 있는 단어가 뭘까 하다가 광대를 떠올렸고, 대한민국의 광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어 '대한광대'라고 스스로를 부르게 됐다.


"한솔아, 너 그러다가 병 나. 너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너무 과하게 의미 부여하는 거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배우를 굉장히 성역처럼 여기는데, 배우는 그냥 '광대'야. 사람들 시선에 맞춰서 웃음 주고 박수받으면 좋아하는 바보 같은 존재들. 이제 안에서 바깥으로 끄집어내려 하지 말고, 바깥에서 만들어진 것을 네 몸에 입혀봐. 그게 네게 필요한 진짜 공부 같아."





감정이 너무 미숙했고, ​늘 완성형인 나만을 추구하던 시절이었다. 나를 정의하는 타인의 시선에 목을 매달고, 그들이 만든 틀에 스스로를 가두며 평가했던 게 나다. 그런 내게 선생님의 말씀은 무겁게 짓누르던 숨을 트여주는 산소 같았다.


항상 차분한 이미지의 내 호흡은, 사실 잘 들어보면 언제나 조급했다. 0.5초만 더 쉬어줘도 괜찮았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 말대로 배우를 손에 닿지 않는 '성역'으로 추대하면서도, 동시에 '비천한 광대'로 멸시하는 세상의 이중성 사이에서, 나는 필요하지만 존중받지는 못하는 존재가 될까 봐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니, 타인이 나를 함부로 정의하도록 방치했던 것이다.


그래도 참 다행이었다. 도현 선생님을 그 시절 만나서, 그리고 선생님이 점점 더 브라운관에서 잘 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래서 나 역시 어디 가서 선생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져서.


무명의 ​스물아홉의 내게, "네가 만약 배우가 된다면 " 계속해서 자신을 찾아오라는 교묘한 목소리가 내 자존감을 갉아먹으려 할 때, 회식 자리에서 우리에게 던지신 선생님의 "사람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시계가 있다." 란 말씀이 내 안의 초침 소리가 되어 더 크게 울렸다. 그 말은 나를 지키는 단호한 방패가 되었다.


"당신은 감히 나를 정의할 수 없어."


라는 진짜 힘으로 말이다.




그 시절 ​도현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우리를 꾸짖으셨던 그 서늘한 순간조차, 지금은 얼마나 큰 가르침이었는지 매일 깨닫는다.


수많은 배신과 투사, 동경과 경계가 뒤섞인 감정의 파도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그 이후의 시간들.

내가 나를 찾고 싶어 발버둥 쳤던 모든 순간.


그 길을 지나오며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묵묵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도현 선생님은 그런 마음으로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서 계셨던 거구나, 하고.


"이 직업에 1등이 어디 있어.
누군가는 그 해에 가장 박수받고,
또 다른 누군가가 다음번엔 박수받는 거야. "


이건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삶이 그럴 것이다. 최고 사원도, 기업 회장도, 환경 미화원도 각자의 자리에서 실수를 하고 다시 박수를 받는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가 아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있는지,

내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게 전부겠지.

너무 일찍 세상을 깨달으려 했던 나를 향해 "너 그러다 병 나"며 안타깝게 웃으며 걱정하시던 선생님의 눈빛이 이제야 이해되는 걸.


​괜찮아요, 도현쌤.

이제 저는 타인의 시계를 훔쳐보지도, 포기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아요.

그저 선생님이 건네셨던 제 시계 초침 소리를 듣고 있어요.





여담


그 시절 내 부족을 모조리 보고도 귀엽다는 듯이 보신 분들 중 한 분. 사실 저 때, 나는 이미 여러모로 병이 나 있었다. 지독한 짝사랑병(전에 썼던 그 글)까지 1년 내리 남몰래 앓고 있던 시기였으니, 은사쌤들이 대체 나를 어떻게 상대하셨을지 이제야 아찔하다니까?


그 시절 내 부끄러운 모습들을 '잊어 주세요'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그 지독한 부족함 덕분에 나는 선생님들로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을 얻었으니까. (물론 타산지석 삼아야 할 인간들도 겪어냈지만.) 그러니 그냥,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하는 수밖에. 그땐 제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요,라고.




근데 제 갈 길 가기로 한 제자가 감히 뭔가를 써보자면, 배우(俳優)라는 한자 뜻이,


俳 : 광대, 익살꾼, 놀이를 하는 사람
優 : 뛰어나다, 넉넉하다, 부드럽다


'優' 자가 수·우·미·양·가의 그 '우' 이기도 하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람,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 1등이 아니어도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 남들이 뭐 천하다, 고귀하다 아무리 뭐라 한들, 그냥...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 아니고, 인간이지만 다른 인물을 살아내는 존재가 배우니까.


시간은 한쪽으로만 흐르고, 우린 조선 시대로 돌아갈 수 없으니 나한텐 선생님이 누가 뭐래도 광대보다는 배우지. 사실 그 말이 그 말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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