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1~3부 통합) —
[PART 1/3] 너를 품에 안으면 [10장-1부] — 잠복기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0-1)
(※본 편에는 폭력·총기 관련 장면과 심각한 상해/치명적 결과에 대한 묘사, 일부 욕설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클럽 근처 도로 위 총격사건 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청년은 늦게야 알아차렸다.
트라우마는 “사라진” 게 아니라—
숨은 거였다.
그것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몸속 어딘가에 잠복해 있었다.
한 번 들어오면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신경 깊숙한 곳에 숨어 버티다가
피로가 쌓이고,
잠이 무너지고,
마음이 얇아지는 순간을
정확히 기다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때가 오면
조용히, 갑자기,
마치 원래 거기 살던 것처럼
다시 올라왔다.
마음 가장 깊은 곳,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마치 “때가 되면 다시 온다”는 걸
확신한 놈처럼,
숨도 쉬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뉴욕 클럽의 총성.
바닥에 번지던 피.
주유소에서 벌어진 강도와 총격.
절친이었던 이진수의 죽음.
그리고 이유조차 납득되지 않는,
그 시절 처음 만난 두 동생의 허망한 죽음.
그 모든 장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머릿속 스크린이 지독하게 선명해져서,
현실이 오히려 꿈처럼 느려졌다.
세상은 느려지고—
소리는 멀어지고—
심장은 귀 옆에서 둔탁하게 울렸다.
트라우마는 복수라도 하듯,
복합적으로 그를 물어뜯었다.
그리고 하늘은, 정말로 벌을 내리는 것 같았다.
몇 해가 지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끝내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술에 기대며 버티던 몸은 급속도로 망가졌고,
결국 건강 문제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날 이후, 청년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어졌다.
예전처럼 친구들과 술 마시며 떠돌아다니던 방황도 사라졌다.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식어 있었다.
그나마 속으로 붙잡고 있던 신앙심마저—
물에 젖은 종이처럼—점점 녹아내렸다.
시간이 더 흐른 뒤,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를 통해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가정을 꾸리면 좀 나아질까?’
처음엔 사랑도 없었다. 기대도 없었다.
그저 나이가 찼고, 남들 다 하는 결혼을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것 같아서” 했다.
청년은 솔직히 말해…
그저 지금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사업도 시작했다.
결혼 초기에 사소한 다툼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밤, 다시 총이 나타났다.
이번엔 길모퉁이도 아니었다.
집 앞이었다.
가게 일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귀가하던 밤이었다.
미국에서 장사하는 한인 업주들 사이에선,
영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제일 취약한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가게에서 나오는 순간부터—차가 집 앞에 멈출 때까지.
그 짧은 구간에서 ‘집까지 따라붙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벌어진다.
청년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갓길엔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문제는, 강도들도 예전처럼 무식하게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법도 같이 바뀌었다.
집 앞 정원에도, 카메라를 달아둔다.
화분 뒤, 정원등 옆, 관수 장치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케이스 속.
멀리서 보면 그냥 장식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들여다봐야 겨우 이상하다는 걸 느낄 정도로 교묘하다.
그 카메라가 보는 건 얼굴이 아니라 패턴이었다.
언제 차가 들어오고, 언제 불이 꺼지고,
언제 우편함이 비고,
언제 며칠씩 인기척이 사라지는지.
그렇게 “비는 시간”을 확인한 다음에야 움직인다.
사람이 없을 때.
딱 그때, 문을 따고 들어간다.
그리고 따라붙을 때도 한 대가 아니다.
이제는 두세 대가 역할을 나눠 움직인다.
한 대는 바로 뒤에서 붙고,
한 대는 앞쪽으로 넘어가 길목을 잡고,
다른 한 대는 멀찍이 떨어져 ‘감시’처럼 따라간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마치 경찰이 용의자를 추적하듯
신호에 걸릴 때도, 차선을 바꿀 때도
끊기지 않게 이어 붙는다.
그래서 청년은 더 번거롭게 움직였다.
가게 문을 잠그는 순간부터 눈이 바뀌었다.
주차장 모서리, 맞은편 차 안, 뒤쪽 그림자.
누가 서 있는지보다, 누가 너무 오래 머무는지를 봤다.
차에 타면 먼저 거울을 맞췄다.
뒤차의 헤드라이트 간격, 속도, 신호에서의 반응.
한 번, 두 번— 같은 타이밍에 같이 멈추면
그때부터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 같은 길로 집에 가지 않았다.
오늘은 고속도로를 타고, 내일은 로컬로 빠지고,
어떤 날은 일부러 한 블록을 더 돌아
불필요할 만큼 번거로운 길을 골랐다.
때로는 일부러 사람이 많은 주유소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불이 환한 교차로에서 한 번 더 돌았다.
확신이 들기 전까진—절대 집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
아내는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이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걸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막연하던 공포가 현실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날도 가게 일을 마치고,
동선을 바꿔가며 아내와 함께 귀가하던 밤이었다.
차에서 내려 현관 쪽으로 몇 걸음 옮기려는 순간,
길 건너편에서 빨간색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다가와 멈춰 섰다.
밤은 깜깜했고,
차 안은 짙은 틴트로 가려져
안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청년—
이제는 누군가의 남편이 된 그는—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차문이 열렸다.
복면을 쓴 세 명이 내려왔다.
천천히, 그러면서도 확신 있게 남편과 아내 쪽으로 다가왔다.
남편이 허리에 차고 있던 총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Hey, hey, hey! Stay back!”
(자막: 야, 야, 야! 물러서!)
“Stay the f—k back or I’ll shoot!”
(자막: 씨발, 물러서! 안 그러면 쏜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더 느리게, 더 뻔뻔하게.
가로등 아래에서 금속이 번쩍였다.
손에 든 권총이 불빛을 튕기며 반짝였다.
그 순간, 남편은 아내를 뒤로 확 밀어 넣었다.
“Run! Call the police!”
(자막: 도망쳐! 경찰 불러!)
그리고—
탕— 탕— 탕!
세 발이 밤을 갈랐다.
가운데 서 있던 강도가 그대로 몸이 뒤로 접히듯
꺾이더니, 바닥에 고꾸라졌다.
쓰러지는 동안에도 남편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침착함이 아니라—
그냥… 익숙함 같았다.
그게 더 끔찍했다.
왼쪽 강도는 번개처럼 차로 돌아갔다.
오른쪽 강도는 왼쪽 이웃집 앞마당 정원 쪽으로
재빠르게 빠지며, 몸을 숨기는 듯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 꺾여 쓰러졌던 가운데 강도가,
말도 안 되게 다시 일어났다.
휘청. 중심을 잃은 몸을 억지로 지탱한 채,
타고 온 차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총을 들고 쏘기 시작했다.
탕! 탕!
총구에서 큰 불꽃이,
마치 대포처럼 펑! 펑! 하고
내뿜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밤공기가 찢기고,
귀가 한순간 먹먹해졌다.
순간 남편은 그의 집 앞 나무 뒤로 몸을 숨겼고,
총격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탁—! 탁—!
총알이 나무를 때릴 때마다 껍질이 얇게 뜯겨 튀었고,
바닥의 자갈이 촤르륵 튀어 올랐고, 숨이 목에 걸렸다.
심장은 귀 옆에서 둔탁하게 울렸고,
손끝은 차갑게 굳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귀에 익은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사이렌.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가 겹쳐 들려왔다.
사방에서 울리며 동네를 찢었다.
빨간 불빛이 담장과 나무와 창문을 번갈아 물들였다.
동네가 갑자기 살아 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그때, 이웃집 정원으로 몸을 숨겼던 오른쪽 강도가—
남편과 불과 5~6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갑자기 튀어나왔다.
도주를 시도하고 있었다.
강도는 차 쪽으로 전력질주했다.
남편은 반사적으로 총구를 그쪽으로 틀었다.
등이 조준선 안으로 들어왔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그대로 끝낼 수도 있는 거리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남편은 순간 멈칫했다.
오른쪽 강도의 실루엣이 이상하리만큼 작았다.
복면은 썼지만, 좁은 어깨와 가는 팔다리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성인 남자라기보다, 아직 덜 자란 몸처럼 보였다.
무기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남편의 머릿속에 다른 장면이 겹쳐졌다.
어린 시절. 골목. 겁먹은 눈. “어른 흉내”를 내던 아이들.
사람들은 말한다.
총격전에서 잠깐의 멈춤은 곧 죽음이라고.
그런데도—그는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어려 보였다”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남편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계산이 동시에 돌아갔다.
비무장처럼 보이는 도주자.
등을 보인 채 달아나는 사람.
그리고 미성년자로 보일 만큼 왜소한 체구.
쏘면 맞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저 복면 속이 정말 미성년자로 밝혀지는 순간,
그 한 발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평생 지워지지 않을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정당방위로 처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다음은, 법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현장 조사가 이어질 것이다. 진술은 몇 번이고 반복될 것이다.
CCTV, 이웃이 찍은 휴대폰 영상까지 전부 돌아다닐 것이다.
뉴스가 붙고, 댓글이 붙고,
“집 앞에서 도망가던 애를 쐈다”는 한 줄이 사람들 입에 먼저 오를 것이다.
민사소송도 곧바로 뒤따를지 몰랐다.
가족이 나타나고, 친척이 나타나고,
심지어 ‘전 여자친구’ 같은 사람까지 어느새 관계자라는 얼굴로 끼어들 것이다.
돈 냄새를 맡은 벌떼처럼 달려들 수도 있다는 걸—
남편은 너무 현실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영업자라는 게 한 번 찍히면,
그다음은 “끝없는 뜯김”이다.
가게, 통장, 보험, 집.
말 한마디, 장면 한 컷으로
몇 년이든 사람을 붙잡아 늘어지는 것들.
그 1초 동안 남편은,
총구 앞의 실루엣보다
그 뒤에 따라올 “끝나지 않는 전쟁”이 먼저 보였다.
그래서 멈췄다.
그 틈을 타 강도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듯
차에 욱여넣었고,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갔다.
사이렌은 더 가까워졌다. 더 크게, 더 날카롭게.
조사는 길었다. 말은 많았다.
경찰은 진술을 받아 적다가,
남편이 마지막 도주 강도를 일부러 쏘지 않았다고 하자 짧게 말했다.
남편의 말을 듣던 경찰관 한 명이 낮게 말했다.
“You should’ve shot him. He could’ve turned around and shot you.
All it takes is one round.
If that was me… I would’ve.”
(자막: 쐈어야 했어요. 그가 돌아서 당신을 쐈을 수도 있어요.
한 발이면 끝입니다.
그게 나라면… 전 쐈을 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 남편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입 밖으로 꺼내면 싸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날 밤 남편이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낀 건,
총알이 아니라—“절차”였다.
정당방위든 뭐든,
결국 남는 건 종이였다.
누가 먼저 총을 들었는지보다,
누가 더 ‘설명’할 수 있는지.
법이 누구 편인지,
강도를 위한 편인지,
선량한 시민을 위한 편인지—
남편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
살아남은 쪽이 “증명”을 해야 했다.
도망치는 사람을 쏘지 않은 이유를 말해도,
그건 칭찬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위험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걸
남편은 너무 현실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남편에게 법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라기보다
“나를 묶어 두는 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남편의 머릿속은 계속 한 장면만 재생됐다.
‘내가 멈췄던 그 1초.’
그날 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트라우마가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쾅.
쾅, 쾅.
실제로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둔탁한 울림은 자꾸 머릿속 안쪽을 찍어 눌렀다.
막 잠에 빠지려는 순간이면 더 선명해졌다.
누가 바로 귓가에 대고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쉴 틈도 없이.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귓속에서 삐이—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길게 울었다.
처음엔 작았다.
신경 쓰지 않으면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그런데 한 번 의식하고 나면 달라졌다.
가늘고 날카로운 그 소리가 귓속을 긁듯 버티고 서 있었고,
그 위로 다시 쾅, 쾅하는 둔중한 울림이 겹쳐졌다.
마치 머릿속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들어와
안에서 문을 두드리고, 벽을 치고, 신경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했다.
무감각 때문이었을까.
예전 같았으면 몸부터 굳었을 그 소리를,
그는 어느 순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밀어내고 있었다.
피곤해서 그런 거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거다.
귀에서 소리 좀 날 수도 있지.
그는 그렇게 넘겼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는 듯.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삐이—
쾅.
쾅, 쾅.
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
그가 못 들은 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치 이미 너무 많이 당해서,
이제는 통증을 모르는 사람처럼.
하지만 트라우마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그를 덮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병이었다.
이유는 뻔했다.
어릴 때부터 술과 담배로 버텨온 몸.
무너질 때가 오면, 예고 없이 온다.
수술 후에도 후유증은 집요했다.
몸 안 어딘가가 “벌어진 채”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배 안에서 뜨거운 것이
툭— 하고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마다 남편은 식은땀을 흘리며 벽을 짚었다.
화장실까지 가는 몇 걸음이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생존처럼 느껴졌다.
변기에 앉는 순간,
통증은 “참는 수준”이 아니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찢기고, 긁히고, 뜯기는 것 같았다.
피가 쏟아지는 소리가 물소리와 섞여서
더 끔찍하게 크게 들렸다.
그런데 그 지옥 위에,
약이 또 하나의 지옥을 얹었다.
의사가 처방해 준 항생제는 너무 셌다.
문제는—누구도 그 약을 “어떻게 복용하면서 버텨야 하는지”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의사도, 간호사도, 약사도.
부작용이 어떤 식으로 오는지,
속이 망가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먹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뭘 보완해야 하는지—
그냥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남편은 약을 “그냥” 먹었다.
시키는 대로.
그리고 그다음부터
위가 먼저 무너졌다.
위벽이 헐고, 속이 타 들어가고,
물 한 모금이 들어가도
불을 삼키는 것처럼 쓰렸다.
장 안은 더 참혹했다.
몸을 지켜주던 좋은 균들이 한꺼번에 전멸한 것 같은 느낌.
그 빈자리를, 나쁜 것들이 순식간에 차지하는 느낌.
배는 계속 뒤틀렸고,
몸은 열이 올랐다가 식었다가,
새벽이면 오한이 올라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후에는 더 강한 항생제가 다시 들어왔다.
검사 결과가 바뀌었다는 말,
염증 수치가 올라갔다는 말,
“균이 말을 안 듣는다”는 말.
남편은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몸으로 먼저 알아차렸다.
기존 약이 통하지 않는 내성.
슈퍼박테리아.
그 단어가 현실이 되는 순간,
남편은 다시 병실의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구나.’
화장실에 앉으면 속에서 무언가를 뜯어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고, 피가 쏟아졌다.
약은 독했고, 위장은 헐었다.
물 한 모금도 몸이 거부했다.
남편은 생각했다.
‘차라리… 끝내면 편하지 않을까.’
총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그것은 “도구”이기 전에 “유혹”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귓속에서 속삭였다.
“지금 끝내. 그러면 고통이 사라져.”
그는 총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들 수 있는 무게가,
그날은 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그때였다.
눈앞이 잠깐 뒤틀렸다.
어둡고 넓은 공간.
아래는 불바다처럼 일렁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허우적거렸다.
비명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통”이 공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목소리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메시지가 머릿속을 찔렀다.
‘지금 당기는 순간, 너도 저 안으로 간다.’
남편의 손이 굳었다.
그제야—아내가 보였다.
기도하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기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선명해졌다.
미안함이, 죄책감이, 숨처럼 터져 나왔다.
신앙심이 없다고 믿었던 남편은 결국 울면서 무너졌다.
울부짖듯, 무릎 꿇듯, 살기 위해서.
“하나님… 죄송합니다.
저를 회복시켜 주시고 살려주세요.”
그 순간, 이상하게도 몸이 전율했다.
어디선가 뜨거운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느낌.
그리고 믿기 힘들게도—조금씩—
물 한 모금이 들어갔다.
음식이 아주 조금씩 넘어갔다.
회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 몰랐다.
이 회복이 끝이 아니라는 걸.
트라우마는 늘 그랬다.
사라지는 척하다가,
“잠깐 숨었을 뿐”이라며.
더 조용한 얼굴로, 더 치명적인 방식으로,
다시 돌아오는 법이었다.
[PART 2/3] 너를 품에 안으면 [10장-2부] — 절차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0-2)
남편은 참 간사했다.
아프기 전엔,
오늘은 뭘 더 맛있는 걸 먹을까.
돈은 어떻게 해야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떤 좋은 집, 어떤 차를 살까.
여유가 생기면 욕심은 더 정교해졌다.
“필요”라는 얼굴을 하고,
“보상”이라는 핑계를 달고,
사람 마음속으로 슬금슬금 들어왔다.
근데 그 욕구와 소유가—
진짜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때가 있었다.
남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처절한 고통 속에서 싸웠던 병마...
남편이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를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자기 몸이 아닌 것처럼 꺼졌을 때...
숨이 차고, 손끝이 저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잠깐 앉아 있는 것조차 “버티는 일”이 됐었을 때를...
그때 남편이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낀 건 딱 하나였다.
몸이 안 따라와 주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
침대 옆 서랍에 넣어둔 카드도,
통장 잔고도,
차 키도,
“언젠가”를 위해 모아둔 계획들도.
통증 앞에서는 다 종이쪼가리였다.
남편은 어리고 젊었을 때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트라우마를 겪던 시절엔—
그는 거의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내일이 와도 상관없는 척,
오늘만 넘기면 된다는 얼굴로,
사실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서, 잃을 것도 없는 척.
그때의 그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말했다.
“뭐, 사람은 어차피 죽는 거지.”
그 말이 멋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때의 그는 정말로 잃을 게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고,
돈과 시간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오히려 없던 욕심이 생겨났다.
지켜야 할 것이 생기자,
이제는 잃고 싶지 않은 것들도 함께 늘어났다.
평범한 욕심.
남들도 다 하는 욕심.
좋은 집.
조금 더 안전한 동네.
조금 더 편한 차.
쌓아두면 언젠가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어떤 “여유”.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그저 인간답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인간답다는 건,
동시에 가장 약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조금 일찍이냐,
조금 늦게냐,
어떤 모습으로 끝에 닿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막상 그 순간이 가까워지면,
사람은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어디선가 찾아 붙들고 싶어졌다.
일이 없고,
사람이 없고,
미련이 없을 땐
“지금 떠나도 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죽음 앞에 진짜로 맞닥뜨리면,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남편도 그랬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며 살던 때도 있었고,
이젠 잃을 게 많아서 못 죽겠다고 느끼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까—
그는 다시 달라졌다.
고통 속에서 남편은—영화 장면처럼 선명한 환상을 보았다.
누가 들었으면 몸이 허해져 헛것을 봤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가장 위험한 순간, 두려운 장면이 현실처럼 덮쳐 왔고
그 공포가 그를 멈춰 세웠다.
그 뒤로는 극단적인 걸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고통 속에 있을 땐, 버티는 이유가 가족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이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뜨면 천장이었고,
눈을 감아도 통증이 따라왔다.
자존심? 의미 없었다.
체면? 의미 없었다.
돈? 그 순간엔 진짜 의미가 없었다.
남편은 그날 밤, 숨을 몰아쉬다가
마치 고장 난 사람처럼 중얼거렸던 것을 떠올렸다.
“그냥… 안 아프게만 해줘. 제발.”
그 말은 강한 척하려는 사람이 내뱉는 말이 아니었다.
끝까지 버티던 사람마저 완전히 무너졌을 때 나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남편은 하나님을 찾았다.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했다.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또 살려달라고.
끝없이, 무너진 목소리로 그렇게 빌었다.
어제까지는 하지 않던 말을
오늘은 남편이 하고 있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얼굴이
남편의 눈에도 보였다.
씁쓸함.
그리고 슬픔.
남편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인간은 누구나
위선의 그림자를 달고 산다는 걸.
아프지 않을 때는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를 친다.
버틸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믿지 않는 척하고,
끝까지 괜찮은 사람인 척한다.
그런데 막상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결국 뭐라도 붙잡게 된다.
하지 않던 말도 하게 되고,
찾지 않던 것도 찾게 되고,
끝내는 손까지 뻗게 된다.
남편은 생각했다.
이게 위선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위선조차도
어쩌면 살아남으려는 본능이라면,
그걸 누가 함부로 비웃을 수 있을까.
회복은 드라마처럼 한 번에 오지 않았다.
아침엔 잠깐, 나아진 것 같았다.
몸이 가벼워진 착각이 들 만큼.
그런데 오후가 되면 다시 미끄러졌다.
바닥이 없는 곳으로, 조용히.
조금만 움직여도 코피가 터졌다.
식사하다가—숟가락을 들자마자.
샤워하다가—고개를 숙인 순간.
걷다가—두세 걸음 옮기고 숨을 고르려던 찰나.
예고도 없었다.
따뜻한 물줄기 사이로,
밥 냄새 사이로, 복도 한가운데서도.
그냥 갑자기, 코끝이 뜨거워지더니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피가 목으로 넘어왔다.
휴지로 막아도 새는 건 막히지 않았다.
손바닥에 묻은 붉은색이
“아직 멀었다”는 신호처럼 자꾸 늘어났다.
입맛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밥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물 한 컵을 들고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일이
그날의 “업적”이던 날이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작아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계단 몇 칸을 오르고 내려온 뒤
땀범벅이 돼서 숨을 고르며
자기 자신이 너무 낯설어지는 날도 있었다.
남편은 점점 깨달았다.
인생은 ‘내 의지’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몸이라는 작은 토대 위에 겨우 서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 토대가 흔들리면,
인생 전체가 같이 흔들린다는 걸.
그럼에도—
시간은 조금씩 남편 편으로 돌아왔다.
숨이 덜 가빠지고,
손에 힘이 돌아오고,
어느 순간부터는 통증이 잠깐씩 비켜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회복”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게 붙을 즈음,
남편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살아온 삶을 뒤돌아봤다.
트라우마로 버틴 시간.
무의미한 척하며 흘려보낸 날들.
가정을 이루고 나서야 뒤늦게 욕심이 자라난 과정.
그리고 그 욕심이 한 번에 무너져버린 병실의 밤들.
남편은 생각했다.
‘이대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 똑같이 살 거야.’
다시 돈, 다시 욕심, 다시 바쁨.
그게 인생의 전부가 되는 순간이 다시 올 거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회복이 끝나기 전에, 결심부터 먼저 붙잡기로.
대학에 가기로.
그 결심은 멋있어 보이려고 만든 게 아니었다.
상처를 포장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남은 시간을 허투루 쓰기 싫었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4년 제로 갈지,
2년 제로 갈지.
남편은 둘 다 알아봤다.
4년제는 이름이 컸다.
사람들이 “오—” 하고 반응할 만한 타이틀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과 돈이 부담이었다.
체력도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가정과 생활을 유지하면서 풀타임 학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2년제는 현실적이었다.
단계가 있었다.
숨을 고르면서 갈 수 있었다.
기초부터 다지고,
리듬을 만들고,
가능하면 그다음에 편입도 생각할 수 있었다.
남편은 며칠을 고민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 너무 무리하려는 건 아니지?”
남편은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은 예전처럼 큰소리치는 웃음이 아니었다.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솔직한 웃음이었다.
“무리는 안 할 거야.”
"나… 이번에 알았잖아. 몸이 무너지면 다 끝이라는 거.”
“그러니까 이번엔… 오래가는 걸로 할래.”
그 말이 끝나고,
남편은 결론을 냈다.
2년 제로 시작한다.
커뮤니티 칼리지든, 지역 대학이든—
일단 현실적인 길로 발을 디딘다.
그리고 그 발걸음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날 남편은 침대 옆에 앉아
입학 준비 체크리스트를 적었다.
원서.
성적표.
신분증.
학자금 관련 서류.
학업 계획.
시간표 시뮬레이션.
종이 위의 글자들이
오랜만에 “미래”처럼 보였다.
예전엔 미래가 욕심의 목록이었다면,
이제 미래는—살아있다는 증거가 됐다.
남편은 속으로, 아주 작게 말했다.
‘이번엔… 내가 나를 속이지 말자.’
욕심이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인정하되,
몸이 무너질 때의 그 밤을 잊지 말자.
죽음 앞에서 떨리던 자신을 잊지 말자.
그럼에도 살려달라고 손을 뻗던 자신도 잊지 말자.
위선이든 뭐든,
그건 그냥 인간이니까.
다만—
그 인간이, 이번엔 조금 더 제대로 살아보자는 거였다.
회복이 늘 “거의”라는 단어를 달고 다니던 시기였다.
몸은 살아났는데, 마음은 자꾸 확인이 필요했다.
살아 있다는 감각.
내가 아직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증거.
그래서 대학이었다.
문제는… 입학이 낭만이 아니라 절차라는 거였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지원서를 열었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거주지 증빙.
체크박스들. 질문들. 사소한 칸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지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메일이 날아왔다.
학생 아이디, 포털 로그인, 다음 단계 안내.
문장들이 너무 매끈해서 오히려 등골이 서늘했다.
마치 이런 말 같았다.
‘자, 이제 도망 못 가.’
며칠 뒤, 그는 학교에 직접 갔다.
캠퍼스는 넓었다.
주차장부터 압도적이었다.
라인도 넓고, 간격도 넓고, 표지판도 큼직했다.
“대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공간.
행정동에 들어가자
공기가 확 바뀌었다.
에어컨 바람 때문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의 공기 때문이었다.
카운터 직원이 무심하게 말했다.
“ID, please.”
(자막: [신분증 주세요.] (업무 톤))
그는 순간 멈칫했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심장이 괜히 한 번 튀었다.
신분증을 내밀었다.
사진을 찍고, 서류에 사인하고, 학생증을 받았다.
얇은 플라스틱 카드 하나가… 생각보다 묵직했다.
그다음도 절차였다.
오리엔테이션 예약.
어드바이징 상담.
배치 시험 안내.
예방접종 기록 제출.
재정지원 링크.
이름 적고, 주소 적고, 체크하고, 사인하고—끝도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 과정이 버겁기만 하진 않았다.
‘나… 끝까지 하고 있네.’
오리엔테이션 날, 강당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애들,
군대 갔다 온 것 같은 사람,
아이 둘 데리고 온 엄마,
직장 점퍼 입고 온 아저씨.
그는 그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긴 “천재들의 세계”도 아니고 “낭만의 세계”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 시작하는 곳이었다.
상담실에서 어드바이저가 물었다.
“What’s your major?”
(자막: [전공은 뭐로 생각하세요?] (상담 질문))
그는 대답을 바로 못 했다.
생각은 있었는데, 말로 꺼내는 순간
갑자기 진짜가 될 것 같아서.
어드바이저는 화면을 넘기며 선택지를 보여줬다.
Business, IT, Nursing… 소위 “괜찮다”는 전공들이 지나갔다.
머릿속에도 비슷한 목록이 돌았다.
‘비즈니스면 돈 벌겠지.’
‘IT면 요즘 잘 나간다며.’
‘간호는 안정적이긴 한데… 내가 할 수 있나.’
그때, 병실의 장면이 끼어들었다.
숨이 찼던 밤.
통증이 몸을 잡아 찢던 느낌.
그 와중에 “그냥 안 아프게만 해줘”라고 빌던 자기 목소리.
그때 무너진 건 돈 때문이 아니었다.
몸이 먼저 무너졌고, 인생이 같이 무너졌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Criminal Justice.”
(자막: 형사사법 전공이요.)
어드바이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Okay. We’ll set you up on that track.”
(자막: 좋아요. 그 트랙으로 학업 계획 잡아드릴게요.)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말들을 쭉 던졌다.
배치시험, 상담, 수강신청—절차의 리스트.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웃었다.
‘아… 나 진짜 학생 되네.’
첫 학기 시작.
캠퍼스는 여전히 넓었고, 그는 여전히 길을 헷갈렸다.
건물 앞에서 한 번 멈췄다가,
자기 강의실이 다른 건물인 걸 깨닫고 또 뛰었다.
근데 그 사소한 실수들이,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정상적인 고민을 하고 있네.’
첫 수업에서 교수는 규정을 설명했다.
“Attendance matters.”
(자막: [출석 중요합니다.] (경고))
“Plagiarism will get you a zero.”
(자막: [표절하면 0점입니다.] (규정))
그는 노트에 꼼꼼히 적었다.
옆자리 학생은 대충 듣고, 뒤쪽 애들은 폰을 만졌다.
그걸 보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여긴 전쟁터가 아니라 학교지.’
근데 형사사법 수업에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This is not just about laws. It’s about people.”
(자막: [이건 법만 배우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보는 겁니다.] (강조))
“Why people break. How systems shape them.”
(자막: [사람이 왜 무너지는지, 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요.] (핵심))
그 말이 가슴을 톡— 하고 쳤다.
그날 집에 가서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 이거 재밌어.”
그리고 더 솔직하게 덧붙였다.
“재밌다기보다… 맞는 느낌이야.”
학기가 지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가까워졌다.
이제 캠퍼스는 덜 낯설었다.
주차장 자리도 잘 찾았고,
학생 포털도 익숙해졌고,
교수에게 이메일 보내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에세이를 쓰면 대충 안 썼다.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썼다.
어느 날 교수 피드백이 달렸다.
“Good insight. Keep going.”
(자막: [통찰이 좋아요. 계속 밀고 가세요.] (짧지만 강한 칭찬))
짧은 문장이었는데, 그는 그걸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웃기지.
근데 그때 그는 그게 필요했다.
‘누군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말해주는 거.’
시간은 흘렀고—졸업이 가까워졌다.
캡이랑 가운을 상상하면 뿌듯했다.
2년을 버틴 거니까.
근데 바로 그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그래서, 그다음은?”
4년 제로 전환할까?
편입하면 더 탄탄해 보인다.
“대졸”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삶이 달라질 것 같기도 했다.
근데 현실은 또 계산을 요구했다.
등록금. 시간. 체력. 가정.
그리고… 혹시라도 다시 몸이 무너지면?
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2년제 졸업장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지?’
너무 솔직한 질문이라, 오히려 목이 조여왔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당신, 요즘 그 표정이야.”
“뭔가… 또 혼자 싸우는 표정.”
그는 웃으려다가 말았다.
며칠 뒤, 캠퍼스 게시판 앞에서 발이 멈췄다.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경찰 아카데미 모집.
[PART 3/3] 너를 품에 안으면 [10장-3부] — Congratulations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0-3)
그는 한참을 그 글자를 봤다.
웃긴데… 그냥 종이 한 장인데,
손끝이 조금 저릿했다.
심장이 괜히 빨라졌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날 그는 집에 와서 학교 홈페이지를 뒤졌다.
조건이 쭉 나왔다.
신체검사. 백그라운드 체크. 약물검사. 지문. 인터뷰. 체력 기준.
경찰 아카데미는 생각보다 절차가 까다로웠다.
입학 자격만 놓고 보면 “고졸이면 된다”는 말이 맞는 경우도 있었다.
근데 그 말은—말 그대로 “입구” 얘기였다.
원서를 내는 순간부터 걸러졌다.
범죄경력. 신용 조회. 약물 검사. 지문 채취. 신체 조건. 체력 기준.
하나라도 걸리면 끝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이 떨어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카데미를 졸업한다고 바로 경찰관이 되는 게 아니었다.
아카데미는 “경찰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과정에 가까웠고,
실제 채용은 각 경찰서(기관)에서 절차가 또 따로 돌아갔다.
작은 규모의 경찰서는 고졸부터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규모가 있는 곳들은 최소 2년제, 많게는 4년제를
기본으로 보는 분위기가 분명했다.
지원서 한 장으로 끝나는 구조가 아니었다.
신원 조회에서 한 번 걸러지고,
아카데미 과정에서도 다시 걸러지고,
그다음엔 각 기관에서 치르는 필기·실기 시험, 면접, 거짓말 탐지기, 체력…
“다 했는데 끝”이 아니라,
“끝인 줄 알았더니 다음 단계”가 계속 나왔다.
지원서를 쓰면서 알아봤던 것만으로도 느껴졌다.
여긴 마음만 먹으면 들어가는 곳이 아니었다.
예전에 누군가 “개나 소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경찰 된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말은—70~80년대에나 통하던 얘기라는 걸,
그는 이제야 똑똑히 알았다.
리스트를 보며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속으로 말했다.
‘이건… 진짜다.’
4년제 편입은 “언젠가”의 계획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지금”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경찰 아카데미 지원해 볼까.”
아내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난 당신이 언젠가 그쪽으로 갈 것 같았어.”
며칠을 고민하고, 그는 원서를 냈다.
지원서 질문들은 날카로웠다.
그냥 체크박스가 아니라 “너라는 사람”을 파고드는 느낌.
땀나는 손으로 하나씩 써 내려갔다.
신체검사도 받았고,
체력 테스트를 준비하려고 트랙을 뛰었다.
처음엔 숨이 찼다.
예전 병실의 기억이 문득 올라와서,
그는 트랙 한가운데서 잠깐 멈췄다.
‘또 무너지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들자 목이 잠겼다.
근데 그 순간, 반대로 생각이 돌아섰다.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더 제대로 살아야지.’
그는 다시 뛰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이메일이 왔다.
제목이 눈에 먼저 박혔다.
“Congratulations.”
그는 그걸 보고도 바로 클릭을 못 했다.
마우스 위에 손을 올려놓고, 화면만 멍하니 봤다.
이상하게도 기쁨보다 먼저 온 건 공포였다.
‘내가… 됐다고?’
‘진짜로… 나를 뽑았다고?’
클릭을 했다.
합격 통지 이메일.
오리엔테이션 날짜.
준비물 리스트.
유니폼 규정.
첫날 집합 시간.
그는 모니터를 한참 보고 있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웃다가… 눈이 뜨거워졌다.
아내가 옆에서 물었다.
“What is it?”
(자막: [뭐야?] (옆에서 툭))
그는 말을 하려다 목이 막혔다.
그냥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아내가 이메일을 읽고,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Congratulations.”
(자막: [축하해.] (아내 목소리))
그 말 한마디에 숨이 꺾였다.
아파서 살려달라고 빌던 사람이,
이제는 살아서 뭘 하겠다고
문 앞에 선 거였다.
그날 밤 그는 준비물 리스트를 다시 읽었다.
검정 부츠. 운동복. 노트. 펜. 신분증. 각종 서류.
사소한 물건들이었다.
근데 그는 그걸 하나씩 체크하면서,
마치 자기 인생을 다시 조립하는 기분이 들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도 정리했다.
옷장에 옷도 미리 걸어뒀다.
아침 알람도 맞췄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처음으로 “내일”을 무서워하면서도 기다렸다.
예전의 그는 죽음 앞에서 희망의 끈을 붙잡았고,
이제는 삶 앞에서 두려움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그 끈은 얇았지만—
이번엔,
끊어지지 않게,
그가 스스로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눈이 떠졌다.
천장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그래… 가보자.’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이번엔… 끝까지 간다.’
—다음: 11장-1부 에서…
[업로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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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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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 **『너를 품에 안으면』**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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