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1~3부 통합) —
[PART 1/3] 너를 품에 안으면 [9장-1부] — 사라지지 않는 피 냄새: 친구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 9-1)
(※본 편에는 폭력·총기 관련 장면과 심각한 상해/치명적 결과에 대한 묘사, 일부 욕설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다시는 채팅에 들어갈 일 없다고 다짐했으면서도,
가끔은 ‘나만의 꿈’이 꾸며 놓은 방에 이유도 모르게 발이 갔다.
그때마다 방 안에는
모노의 ‘넌 언제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만의 꿈’은 보이지 않았다.
예전처럼 로그인 표시도 꺼져 있었다.
한두 번쯤 들렀을 뿐인데,
들를 때마다 같은 노래가—
마치 일부러 반복 재생을 걸어 둔 것처럼
똑같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잠시 듣다가
청년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 다시 기다려 볼까.
내가 너무 말도 없이 나와 버렸나.
변명이라도, 이유라도… 들어볼까.
그런데도 결국,
청년은 공허함을 등에 업은 채
완전히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는 채팅에 빠질 일 없다.”
그 말은 다짐이기도 했고,
도망치기 위한 주문이기도 했다.
일상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빈틈이 생기면,
청년은 그 빈틈을 술과 사람들로 메웠다.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어울렸다.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클럽을 돌았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늘 같은 말이 나왔다.
“오늘 밤 어디 갈까? 어디가 물 좋냐?”
“여자 좀 꼬셔야지.”
그리고 가끔—정말 가끔—취기가
올라오면 친구들은
청년에게 뉴욕 이야기를
꺼내 달라고 했다.
“야, 너 뉴욕에서 겪었던 거 있잖아.
애내들한테 한번 말해봐.”
처음엔 싫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뉴욕의 트라우마는
서서히 희미해졌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선명하던 공포는 흐릿해지고,
기억은 ‘과거의 사건’이 되어 갔다.
그때부터였다.
기분이 업되고 분위기가 익어 오르면
가끔—정말 가끔—취기가
더 올라오면 사람들 앞에서
청년은 그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엔 사실 그대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과장도 섞였다.
사람들이 웃고, 감탄하고,
술잔을 채워주면—그게 마치
상처를 지워 주는 것 같아서.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 무렵, 친구들 중에 유난히
튀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양진영.
여자를 밝히고,
대마초도 골초처럼 피우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문제아”라고 불리던 놈이었다.
언제나 선을 넘었고,
그 선이 어디인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진수.
유학생이었다.
원래 청년은 같은 교민 친구또래와
어울렸지 유학생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왠지 진수하고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매번 노래방에서 진수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친구는 한국에서 성악을 배웠던 터라
웬만한 고음은 힘들이지 않고 올려 버렸다.
그 친구가 노래를 부르면,
다른 방에서 듣고
합석을 요청하는 여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오빠, 너무 잘 불러요. 우리랑 같이 한 곡만 더 불러요.”
어떤 여자는 아예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오빠, 노래 진짜 잘하시네요. 한 곡만 더 해 주시면 안 돼요?”
어떤 여자는 수줍은 척
목소리를 가늘게 빼고 웃었다.
근데 웃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문 쪽을 힐끔거렸고,
손끝으로는 옆방 번호가 적힌
리모컨을 슬쩍 밀어 보였다.
내숭이 섞인 합석이었다.
그때마다 항상 진수는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불렀다.
✨♪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청년과 달리,
진수는 농담도 잘했고
진수의 말을 듣다 보면
코미디언처럼 웃겼다가도
어쩔 때는 사람 감정을 움직일
만큼 부드러웠다.
그런데 딱 하나—
청년이 진수에게 미칠 듯이
열받는 점이 있었다.
진수 옆에는 늘 여자가 붙었다.
그것도 눈을 깜빡이면 현실감이
사라질 정도로 예쁜 여자들이.
더 열받는 건…
이 새끼가 거기서
또—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듯”
천사처럼 예쁜 여자들 앞에서 튕긴다는 거였다.
그것도 애매하게 가 아니라, 깔끔하게.
지가 뭐라고.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말이 거절이지, 거의 면접 탈락 통보처럼 정중했다.
여자들은 “어… 네…” 하고 웃다 가도,
나가서 바로 친구한테서 표정이 바뀌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그런 놈을 몇몇 “천사”들이 좋다고,
진짜로 짝사랑까지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세상은 가끔,
이런 데서 사람을 열받게 만든다.
청년은 술기운에 마이크를 잡고 015B 노래를 불렀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그녀 남자친구가 있고…
항상 젤 못생긴 친구가 훼방을 놓지…”♪✨
친구들은 웃었고, 진수도 웃었다.
그렇게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청년의 어머니도 진수를 좋게 봤다.
유학생이었던 진수는 참 제미도 있었고 착해 보였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의리도 있었다.
청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이 못생긴 새끼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도 의리는 있는 놈이네..."
어느 날 저녁, 친구 여럿이랑 진수 집에 있었다.
술이 몇 잔 돌고, 분위기가 뜨거워질 때쯤—
진수가 자랑이라도 하듯 툭 던졌다.
“야, 한국에 나랑 제일 친한 친구 중에
이번에 탤런트가 된 여자가 있다.
진짜… 겁나 예뻐.”
친구들이 바로 받아쳤다.
“설마 네가 어떻게…?”
“개 뻥치고 있네. 네가 그런 친구가 어디 있어?”
“거짓말하지 마 ㅋㅋ”
그때 진수는 친구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웃지도 않고 말했다.
“뭐라, 이 쒜끼들. 내 말이 맞으면?”
그리고 자신 있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농담처럼—근데 어딘가 진심 같은 톤으로 덧붙였다.
“날 뻥쟁이로 만든 쒜끼들… 대골빡 뽀사뿐다.”
방이 터졌다.
“야야야 ㅋㅋㅋㅋ”
“증명해 봐 그럼.”
“지금 한국 드라마에 나오긴 하냐?”
진수가 기다렸다는 듯 비디오를 꺼내 틀었다.
지지직 잡음이 한 번 지나가고,
드라마 화면이 잡히더니—
처음 보는 신인 여배우가 등장했다.
딱 봐도 신인이었는데,
이목구비가 너무 또렷해서
화면이 한 번 더 밝아 보일 정도였다.
눈이 한 번에 붙을 만큼 선이 또렷했다.
진수가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야, 이 쒜끼들아—봐라! 바로 쟤다!”
친구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깔깔거렸다.
“야!, 개—소리 집어치라우 ㅋㅋ”
“저렇게 예쁜 여자가 니 절친이라고?”
“네가 그런 친구가 어디 있어!”
진수는 더 당당했다.
“좋아. 그럼 내가 통화하면 어쩔 건데?”
잠깐의 침묵.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웃겨서,
누군가가 “그래해봐!” 하고 또 터뜨렸다.
곧바로 진수가 또 조롱거리가 됐다.
그날은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넘어갔다.
청년은 그 속에서 이상하게도 편했다.
이전 채팅 같은 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 틈에서 떠들고,
일 얘기하고, 여자 얘기하고,
싸웠던 얘기 꺼내며 지내는 게
생각보다 빨리 적응되고—좋아졌다.
일주일 뒤, 또 진수 집이었다.
또 같은 멤버였다.
드라마 OST 비슷한
노래가 TV에서 흘러나오고,
술잔이 돌았다.
늘 그렇듯, 얘기는 결국 두 갈래로만 흘렀다.
여자 이야기 아니면, 누가 누구랑 싸웠던 이야기.그때 진수 핸드폰이 울렸다.
진수는 받기 전에 번호를 확인하고,
친구들을 한 번 쭉 훑어봤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야. 야야… 조용히.”
진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나 진수.”
“잘 지내지 너는?”
진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뜨기 시작했다.
“그래 연아, 너 드라마에서 봤어.
야, 너 진짜 연기 잘하더라.”
순간 친구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저거 누구랑… 설마 연이야?’
진수는 더 신나서 말했다.
“나도 보고 싶다.
너 이대로 쭉 가면 대박 날 거야.”
그리고—진수가 웃으면서 덧붙였다.
“근데 야… 옆에 내 친구 쒜끼들이
내가 너랑 친구라니까 한 놈도 안 믿는다.
네가 이 쒜끼들한테… 목소리 좀 들려줘라.”
진수는 전화를 진영이에게 먼저 넘겨 줬다.
진영이는 조심스럽게 받았고,
얼굴에서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다음 전화가 청년에게 넘어왔다.
전혀 예상 못 했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정말 드라마에서 듣던 그 신인 여배우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저 연이에요.
반가워요.”
“진수 말대로 저랑 진수는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절친이에요.”
“진수… 잘 부탁드립니다.”
바쁜 와중에도 정말 친구를 위해서 전화를...
또렷하고 친절한 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청년은 목소리만 듣고도
‘아, 진짜구나’라는 게 바로 느껴졌다.
전화를 끊자마자 방 안이 폭발했다.
“야 미친… 진짜였어?”
“방금 그 목소리 들었냐?”
“야, 진수 너 뭐야 진짜로?”
진수는 완전히 이긴 얼굴로 한 번 웃더니—혀를 찼다.
“거봐, 이 쒜끼들아. 내가 뭐랬어?”
그리고 한 박자 쉬고,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히 이 형님 말을 못 믿고… 쯧쯧.”
그날 밤은 진수랑 친구들, 그리고 청년까지
다 같이 오래 기억할 만한 밤이 됐다.
[PART 2/3] 너를 품에 안으면 [9화-2부] — 떠나버린 친구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9-2)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진수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평소와 달리 창백했고, 말수가 줄었다.
“요즘 소화가 잘 안 돼. 답답해.”
“잠만 자고 싶다.”
“야, 날 좀 내버려 둬 너무 피곤해 나중에 연락할게...”
처음엔 그냥 피곤한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진수는 허리까지 제대로 못 쓰게 됐고,
혼자 거동도 힘들 정도가 됐다.
검사 결과는 너무 잔인했다.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수술도 불가능한 말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아, 그럴 리가”라는 문장이 그냥 증발했다.
믿고 싶다 같은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재능도 많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아야 할 친구가—왜 하필.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진수가 길게 기르던 머리도 사라졌다.
그가 스스로 잘라낸 건 아니었다.
치료가—조용히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청년은 숨이 막혔다.
목구멍이 먼저 좁아지고, 가슴이 뒤늦게 따라왔다.
병실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렸다.
진수를 평소 멀리서 바라보며 좋아하던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들으면,
“아… 그 애? 예쁘장하게 생긴 애.”
하고 떠올릴 만큼—그런 얼굴이었다.
딱히 화려하진 않은데, 이상하게 시선이 한 번 더 가는 타입.
그런데 그녀는 한 발 들어오자마자 멈췄다.
진수는 누워 있었고,
머리카락은 사라져 있었고,
몸은 예전의 진수가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 남아 있는 것처럼—가늘고, 조용했다.
여자는 입술을 한 번 열었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눈이 먼저 흔들렸다.
그리고 다리가 풀렸다.
툭.
무릎이 바닥을 못 버텼고,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누가 부축할 틈도 없이—그녀는 그대로 쓰러졌다.
청년이 황급히 다가갔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흘러 있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었다.
울음이 나오기 전, 사람이 먼저 무너질 때 나오는 눈물.
그날 이후, 병실의 공기는 바뀌었다.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결국 진수는 세상을 떠났다.
원망할 대상도 없고, 이유도 없고, 답도 없었다.
그저—한 사람의 삶이 너무 쉽게 꺼져 버렸다.
그리고 청년의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이 먼저 남았다.
술 냄새.
진수 집 거실 바닥에 늘어져 웃던 얼굴들.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서로 빼앗듯이 잡고,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던 밤.
가끔은—술이 과해져서, 아무 이유도 없이 같이 껴안고 울어버리던 순간.
다음 날 기억도 흐릿한데, 그때의 웃음만큼은 또렷하게 남아 있던 시간들.
진수는 늘 그랬다.
어제처럼 굴다가도, 갑자기 진심을 툭 던지고,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
그런 사람이, 그런 절친이—이제 없다.
청년은 가끔,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던 그 멜로디를 우연히 들으면
손이 먼저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잠깐,
진수가 혀를 차며 웃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감히 이 형님 말을 못 믿고… 쯧쯧.”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뉴욕에서 느꼈던 그 불길함.
완전히 잊었다고 믿었던 트라우마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영이와 술을 마시며, 얼마 전 안타깝게 먼저 가버린
진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죽이던 어느 날이었다.
“참… 진수는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갈 수가 있냐.”
청년이 잔을 내려놓고 잠깐 고개를 숙였다.
“참 아까운 녀석이었는데… 친구였는데…”
진영이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하는 말은 길게 하지 않았다.
그 애는 슬픈 얘기를 오래 못 했다.
금방—다른 얘기로 넘어가야 마음이 편해지는 타입이었다.
청년이 다시 말했다.
이번엔 장난이 아니었다.
“야, 진영이. 너 인마 조심해.”
“사람 일…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는 거, 생각보다 한순간이야.”
그리고 말을 낮췄다.
“너 여자 아무나 가지고 놀지 마라. 그러다 너 좃된다.”
진영이는 웃었다.
세상이 다 자기 컨트롤 안에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야, 걱정 마. 다 내 손바닥이야.”
이틀 뒤, 친구들은 클럽에 가기로 했다.
진영이가 청년에게 전화를 했다.
“야, 10시쯤에 데리러 갈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오늘 새로 온 동생들 두 명 소개해 줄게.”
시간 맞춰서 대형 승용차 한 대와, 뒤에는 스포츠카 한 대.
이렇게 차 두 대로 나눠 타고 출발했다.
운전자와 운전자 뒷좌석에 처음 보는
어려 보이는 친구들이 인사를 했다.
대형 승용차를 운전하던 동생은 딱 봐도—
부모님 차를 끌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청년은 앞차 조수석 뒷자리에 탔고,
진영이가 앞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운전은 처음 보는, 나이 어린 동생이 잡고 있었다.
뒤차에 다른 친구들이 따라왔다.
진영이가 나이가 어린 두 동생들에게 말했다.
“야, 니들 인사해. 내가 말한 내 친구야.”
동생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형님 이야기 오래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들 앞으로 귀엽게 봐주십시오.”
순간 청년은 조금 으쓱해진 기분이었지만,
내 이름이 입소문을 타고 돈다는 것에—오히려 신경이 쓰였다.
차 안의 공기는 이미 클럽이었다.
음악은 아직 안 나왔는데, 말이 먼저 흔들렸다.
뒤차에서 누군가 창문을 내렸다.
찬 공기가 들어오자 사람들은 더 들떴다.
한 명은 차량 내 거울을 확인하며 머리를 만졌고,
또 누군가는 향수를 손목에 톡톡 찍었다.
“야, 오늘은 어떻게 놀 건데.”
“일단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자리 잡고.”
“누가 올까? 오늘 사람 많겠다.”
“토요일이잖아. 무조건 많지.”
진영이는 앞에서 계속 웃었다.
괜히 크게 웃고, 괜히 크게 말하고—
세상이 자기 편이라는 얼굴로.
“오늘 새로 온 애들 있다니까. 둘.”
“또?”
“응. 그중 하나는 스물넷.”
진영이가 말끝을 살짝 올렸다.
그 ‘살짝’이—자랑이었다.
“베트남계인데, 조용한 스타일 아니야. 정말 핫해.”
“핫 이래ㅋㅋ”
“야, 너 또 시작하냐.”
“아니, 진짜로. 딱 보면 알걸. 다들 한 번씩 쳐다보는 그런—”
차 안이 한 번 더 들떴다.
“오—” 하는 소리, 짧은 웃음, 농담들이 굴러갔다.
“야, 그럼 오늘 누구 꼬실 건데?”
“일단 분위기 보고.”
“너는?” 누가 청년에게 묻자, 청년은 대답이 늦었다.
청년은 웃어야 할 타이밍을 알고 있었지만, 웃음이 조금 늦었다.
괜히 그랬다.
들뜬 밤의 공기에는, 이유 없이 불편한 구석이 있을 때가 있었다.
진영이가 다시 폰을 만지작거렸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답장이 늦는 걸 못 참는 사람처럼.
화면을 보고 피식 웃는 표정이, 너무 익숙했다.
“뭐 왔냐?”
“별거 아냐.”
진영이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듯 말했지만,
그때 폰 화면에 뜬 문장이 청년의 눈에 잠깐 걸렸다.
‘오빠한테 말할 거야.’
진영이는 바로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었다.
“야, 너는 오늘 뭐 할 건데.”
“너나 조심해.” 청년이 낮게 말하자, 진영이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마. 다 내 손바닥이야.”
그리고 밤 10시 반쯤.
클럽까지 얼마 안 남았을 때였다.
[PART 3/3] 너를 품에 안으면 [9장-3부] — 트라우마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9-3)
(※본 편에는 폭력·총기 관련 장면과 심각한 상해/치명적 결과에 대한 묘사, 일부 욕설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빨간불.
차가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순간—
운전석 옆으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끼—이—이익—!
진영이가 고개를 돌리며 내뱉었다.
“뭐야 저 새끼들—”
그리고 순간, 동시에—
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탕!...
탕! 탕! 탕!...
단발이 아니었다.
자동소총 같은 연속 사격이었다.
총성이 아니라—차체를 갈아버리는 진동이 먼저 왔다.
창문이 아니라—차 자체가 “찢기는” 소리가 났다.
툭—, 툭—,
파—파—팍...
청년 귀 옆으로 총알이 공기를 뚫고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슉—, 슉—, 슉—,
핑~!
청년은 본능적으로 몸을 최대한 아래로 눌렀다.
차 바닥에 밀착하듯 웅크렸다.
무릎이 시트 밑 금속에 부딪혔는데도, 통증은 나중에 왔다.
귀가 먼저—먹먹해졌다.
“Ah— Sh*t! F—k!”
(자막: 아… 젠장… 씨발!)
여기저기서 유리 파편, 쇠 조각,
차 시트는 너덜너덜 조각들이 찢기고
터져 나오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팍! 팍! 팍! 팍! 팍!
그리고 그 사이사이—총알이 지나가며 남기는 “슉—슉—” 하는 소리가 있었다.
공기가 찢기고, 시트가 찢기고, 무언가가 계속 얇게 찢겨 나갔다.
그때 들렸다.
“Ah… Ah… I— I… got shot…”
(자막: 아… 아… 나— 맞았어.)
운전하던 동생이 가슴을 움켜쥐고,
그 짧은 말과 함께 운전대 앞으로 꼬꾸라졌다.
벨트가 몸을 붙잡아 매달아 놓은 것처럼—고개만 꺾였다.
뒷좌석에 있던 막내의 친구가
비명을 삼키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
운전대가 꺾이기 전에—
손이 먼저 닿으려는 순간—
퍽!.
둔탁한 충격음이 났다.
반대편 유리창이 깨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동생은 아무 소리도 없이—앞 좌석 가운데로,
마치 무거운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은 무게로
차 중간 좌석 사이로 툭—하고 무너졌다.
운전석 뒷좌석에 앉아 있던 동생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움직임이 “멈춘”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고요했다.
조수석에 있던 진영이도 피를 쏟아냈다.
그의 비명 소리가 차 안을 진동했다.
“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머리와 어깨 쪽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오며 차 안을 물들였다.
어디를 정확히 맞았는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뒷좌석에서 움츠린 채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청년은
목등과 손등에 무언가 뜨겁고 끈적한 것이 튀는 걸 느꼈다.
곧이어 목덜미 아래로—미지근한 덩어리가 미끄러져 흘러내렸다.
비릿한 코 안쪽을 찔렀고, 손가락 사이로 작은 조각들이 걸렸다.
그제야 청년은 깨달았다.
저건 유리가 아니었다.
피 냄새가 확 밀려 올라오자,
목구멍 안쪽이 익숙한 철맛으로 가득 찼다.
그 순간, 청년의 머리를 무언가가 수백 배로 후려쳤다.
뉴욕 클럽에서 보았던 피.
피 냄새.
화약 냄새.
기다렸다는 듯, 기억이 폭발하듯 되살아났다.
‘또야.’
심장이—가슴이 아니라 뇌 안에서 뛰는 것 같았다.
두 눈알 뒤에서 맥박이 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크게 뛰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총성이 끊겼는지 아닌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귀가 먹먹해서—세상이 멀어졌다.
그 와중에 청년은 몸을 더 낮췄다.
‘움직이면 끝이다’라는 감각만 또렷했다.
총성은 멈췄다.
차 안에는 한동안 귀가 먹먹한 정적만 남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차 밖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영어가 먼저 튀어나왔다.
“Go! Go! Go!”
(자막: 가! 가! 가!)
그 위로 베트남어가 겹쳐 터졌다.
“Tụi mày là đồ chó đẻ, chết đi!”
(자막: 이 개새끼들아, 죽어라!)
“Đi! Đi! Nhanh lên!”
(자막: 가! 가! 빨리!)
“Lái xe! Lái xe!”
(자막: 운전해! 운전해!)
고함이 서로를 밀치듯 엉키는 사이,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었다.
끼이익—! 고무가 눌리고 뜯기는 마찰음이 길게 찢어졌다.
엔진이 한 번 크게 치고 올라가더니,
소리들이 통째로 멀어졌다.
영어는 먼저 끊기고,
베트남어는 몇 마디 더 날아오다—
도로 끝으로 빨려 들어가듯 희미해졌다.
마지막엔 타이어 소리만 남았다가,
툭— 하고 끊겼다.
얼마가 지났을까.
뒤차 친구들이 뛰어왔다.
문을 열자, 피 냄새가 확 밀려 나왔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야… 야… 괜찮아?!”
“Oh… Sh*t! What the F—k!”
(자막: 아… 젠장… 뭐야 이거?!…)
처음에 뒤에서 나중에 도착한 친구들은 소리를 질렀다가—
처참한 광경을 보는 순간,
마치 누가 목을 잡아 끊은 것처럼 말이 뚝 끊겼다.
누군가는 입을 벌린 채로 멈췄고,
누군가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헐떡임만 남았다.
말은 사라지고, 숨만 남았다.
한 친구가 폰을 더듬으며 꺼내려 했지만,
손이 떨려서 화면을 제대로 누르지 못했다.
누가 떨어뜨렸는지 바닥에 깔린 폰은 화면이 깨져 있었다.
잠깐 켜졌다가—그대로 멈췄다.
전화는 아무도 못 걸었다.
걸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청년은 ‘911’이라는 숫자를 떠올렸는데,
그 숫자가 손끝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명령”을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뇌가 다른 걸 못 했다.
그때—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빨랐다.
너무 빨라서—오히려 더 무서웠다.
이건 ‘우리가 신고해서 오는 속도’가 아니었다.
이미 어딘가에서 들었고,
이미 어딘가에서 봤고,
이미 접수된 속도였다.
파란 불빛이 교차로에 박혔다.
경찰차가 먼저 들어왔다.
“Hands! Hands up! Stay back!”
(자막: 손 보여! 손 들어! 뒤로 물러!)
친구들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 묻은 피가 불빛에 반사돼—더 붉어 보였다.
경찰이 차 안을 보자 눈빛이 바뀌었다.
짧고 낮은 무전이 오갔다.
차문 근처로 누구도 못 오게 막았다.
“Don’t touch anything. Step back.”
(자막: 아무것도 만지지 마.) 뒤로 물러.)
그 뒤로 구급차가 붙었다.
문이 열리며 들것이 나오고,
장갑이 끼워지고, 거즈가 찢어졌다.
구급대의 목소리는 빠르고—감정이 없었다.
감정이 없어야 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Multiple victims. Keep pressure. Don’t remove the cloth.”
(자막: 다수 환자. 압박 유지. 천 절대 떼지 마.)
진영이 쪽으로 붙은 구급대원이 고개를 가까이 댔다.
“Hey, look at me. Stay with me. Can you hear me?”
(자막: 나 봐. 정신 붙잡아. 내 말 들려?)
진영이는 소리도 제대로 못 냈다.
입이 열리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숨이 새었다. 짧고 거칠게.
운전석을 확인하던 다른 구급대원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동료에게 뭔가를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움직임이 달라졌다.
살릴 수 있는 곳엔 손이 빨랐고,
이미 늦은 곳엔—말이 더 짧아졌다.
청년은 그 차이를 보자,
속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또 하나가 도착했다.
뉴스 차량이었다.
경찰차 뒤로 몇 분 차이로 뉴스 밴이 붙었다.
마치 이 교차로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너무 자연스럽게.
테이프 바깥에서 삼각대가 펴지고,
LED가 켜지고, 마이크가 올라갔다.
렌즈가 현장 쪽으로 맞춰졌다.
세상은 너무 빨리 “기록”을 시작했다.
친구 한 명이 그걸 보는 순간—완전히 무너졌다.
“야… 이게… 뭐냐…”
울음도 분노도 아니었다.
사람이 이해를 포기할 때 나는 소리였다.
그 뒤로는, 소리치던 친구들도 조용해졌다.
강한 척하던 애는 눈을 피했고,
농담 잘하던 애는 바닥만 봤다.
누군가는 차 안을 다시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끝까지 돌렸다.
현장은 “난장판”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될 만큼 처참했다.
신음 소리.
비명 소리.
무전 소리.
그리고 그 사이사이—텅 빈 침묵.
여전히 청년의 심장은—뇌 안에서 뛰는 것 같았다.
꼭 뛰는 무언가가 두 눈알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얼굴은 확 달아올랐고, 가슴과 머리는 터질 듯 쿵쾅쿵쾅.
심장이 어디서 뛰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입고 있던 옷과 피부엔 피범벅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청년은 큰 부상을 피했다.
유리 파편에 긁힌 상처뿐이었다.
또 한 번.
총알들이 청년을 비켜갔다.
응급실은 각자 다른 곳으로 흩어져 도착했다.
그리고 청년과 뒤차에 있던 친구들은
곧바로 경찰 앞에서 진술해야 했다.
진술실의 공기는 차가웠다.
물 한 컵이 앞에 놓였는데,
청년은 그 물을 마시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손을 못 댔다.
형사는 질문을 던졌고,
청년은 대답하려다 몇 번이나 멈췄다.
몇 발인지.
어느 쪽에서 쐈는지.
얼마나 가까웠는지.
기억은 뚝뚝 끊겼다.
끊긴 부분마다—피 냄새만 남아 있었다.
며칠 후, 밝혀진 이유는 더 더러웠다.
시발점은 진영이었다.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며 놀다가—선을 넘었다.
문제는 그게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 베트남계 스물네 살 먹은 여자만이 아니었다.
진영이는 ‘그 주변’까지 건드렸다.
그 여자의 친구까지.
그리고 그걸—
상대가 결국 알아버렸다.
그 여자는 그날 이후,
진영이를 더 이상 사람 취급해 주지 않았다.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표적처럼 박혔다.
그리고 결국—오빠에게 말했다.
진영이는 그걸 “별거 아니겠지” 하고 넘겼다.
늘 그랬으니까.
자기가 저지른 일을,
남이 감당할 일로 만들어버리는 방식.
하지만 그날 밤, 교차로에서 돌아온 건
경고도, 말싸움도 아니었다.
두 명이, 어이없이 희생됐다.
누군가의 ‘가벼운 행동’ 때문에.
진영이가 퇴원했을 때,
뒤통수와 오른쪽 어깨엔 총탄이 스치고 찢어 놓은 살을
스테이플러로 찍어 놓은 것처럼 처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청년은 그를 보자마자 참지 못했다.
“야, 이— 씨발놈아. 너 때문에 두 명이 갔어.
네가 죽인 거야, 이 개새끼야.”
진영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 채, 숨만 쉬고 있었다.
청년은 그 뒤로 진영이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청년은 이제 알았다.
트라우마는 “잊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더 잔인한 방식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라는 걸.
—다음: 10화-1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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