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을 무엇으로 시작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될 때마다 마음을 먹고 글을 써 보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쓰다가 접었다.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고 열심히 만든 제작자들의 작품에서 흠을 찾아 쓰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다큐멘터리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한 계기가 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2025년 12월, 다시 돌아온 KBS <역사스페셜>이다.
이번에 재개된 <역사스페셜>은 과거의 <역사스페셜>과는 포맷이 조금 다르다. ‘시간여행자’라는 꼬리가 붙었다. 배우 지승현이 프리젠터로 과거로 돌아가 현장을 직접 소개하는 형식이다. 과거의 경우 MC가 ‘객관적’인 진행을 했다면 새로이 방송되는 <역사스페셜>은 프리젠터가 과거로 가 주관적으로 감정이 이입된 상태에서 상황을 소개한다.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는 2025년 12월 7일 첫 방송을 시작했고, 초반 3회는 ‘세기의 전쟁 3부작’으로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전쟁 3개를 시리즈로 제작했다. 고구려의 살수대첩, 고려의 귀주대첩, 그리고 조선의 한산대첩이다. 세기의 전쟁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이면서 동아시아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전쟁이다. 오늘 이야기는 그중 세 번째 에피소드 한산대첩, ‘한산, 이순신의 바다’ 편이다.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 3회 ‘한산, 이순신의 바다’
방송일 : 2025년 12월 21일(일)
연출 : 정용재
본방송은 KBS의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로 볼 수 있다.
한산대첩을 소재로 삼았을 때 담아야 하는 이야기 속에 담겨야 할 필수적인 요소는 1) 당시의 전황, 2) 이순신의 준비 태세, 3) 왜군의 상황, 4) 조선 수군과 왜 수군의 무기체제, 5) 이순신의 전략, 6) 승리의 과정, 7) 승리의 결과와 의미 등일 것이다. 이 요소들 잘 버무려야 하는 것이 제작자에게 맡겨진 숙제이다. 이 이상의 다른 요소가 담기기는 어렵다.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한산, 이순신의 바다> 역시 이러한 내용들을 충실하게 잘 담아냈다.
한산대첩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이순신 장군이 스스로 작성한 문서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에서 승리한 후 보고서를 조정에 올렸는데 한산대첩 이후 조정에 올린 문서는 견내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狀), 즉 견내량에서 왜병을 격파한 내용을 보고하는 장계이다. 견내량파왜병장은 임진장초(壬辰狀草)에 수록되어 있으며, 당시의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전술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역사 기록물이다.
견내량파왜병장은 단순히 승리했다는 결과만을 보고하는 장계는 아니다. 전투상보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기록이 상세하다. 전투 전날의 상황에서 전투의 개시, 전투의 상황과 결과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에서 ‘한산, 이순신의 바다’ 이전에 ‘살수대첩’과 ‘귀주대첩’을 다루었지만 두 대첩의 경우 전투의 내용이 이 정도로 상세히 기록된 문서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두 전투의 내용은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에 실려있을 것이지만 삼국사기는 고려시대의 문헌이고 고려사는 조선시대의 문헌이라 당대의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1차 자료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견내량파왜병장은 전투를 지휘했던 지휘관이 직접 작성한 문서로 더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한산대첩을 다루는 모든 영상물은 견내량파왜병장을 근간으로 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나 영화는 허구적인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제작할 것이고, 다큐멘터리는 장계에 나와 있는 내용과 다른 역사적 기록을 찾아 스토리를 구성한다. 다큐멘터리 PD의 역할은 이를 근거로 사실에 근거하여 재미있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아쉬운 부분은 거북선에 대한 내용이다.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은 패키지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 밑에 거북선이 있고, 옛날 500원짜리 지폐에도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은 함께 그려져 있다.
한산대첩이 거북선이 처음 등장한 전투는 아니지만 이순신 장군의 해전은 거북선을 빼놓을 수 없다. 거북선은 당대에 가장 혁신적인 무기였다. 배의 천장이 닫혀있어서 왜병이 총을 쏘아도 타격이 적을 뿐 아니라 왜 수군은 그들이 즐겨하는 전투 방식인 ‘등선육박(登船肉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등선육박이란 말 그대로 배에 올라타 육박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왜 수군의 전술인 ‘등선육박’이 많이 보인다. 액션이 필요한 드라마나 영화의 특성상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등선육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조총의 사거리보다 먼 화포의 사거리를 활용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이다. 실제로 한산대첩의 경우도 아군의 피해가 거의 없으며, 수적인 열세였던 명량해전에서도 1척의 전선도 파괴되지 않았고, 사상자는 전사 2명, 부상 2명 정도에 그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아군의 피해는 적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후에도 조선의 바다를 지켜왔다. 비록 그 후 해전이 없어 거북선이 실전에 사용된 적은 없었지만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주요 전선이었다. 조선 후기의 삼도수군조련도를 보면 거북선이 훈련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조실록에도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조선시대의 거북선은 한 척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거북선의 구조에 대해서는 이충무공전서에 나왔다고 하지만 이충무공전서는 선조 때가 아니라 정조 때에 편찬한 책이다. 이충무공전서에도 구조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 설계도는 없다. 따라서 거북선의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거북선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2층설과 3층설이 있다. 내부 구조가 중요한 것은 거북선을 어떻게 활용해 전투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들 그럴듯한 논리로 주장을 하지만 설계도가 없기 때문에 ‘설’ 일뿐이다. 단정 지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한산, 이순신의 바다>에서는 해군사관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을 소개하면서 해사 박물관장의 인터뷰를 통해 3층 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굳이 이 부분이 필요했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은 부분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발포(發砲)’라는 단어이다. 프리젠터인 지승현 배우가 이순신 장군이 되어 “발포하라”라고 전투를 지휘하지만 KBS 전설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 장군은 ‘방포(放砲)하라’라며 전투를 지휘한다. 또한 이순신의 장계에도 ‘방포’라고 쓰여있다.
적장인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에 대한 것은 새로운 것이 있어서 제작진의 노고가 느껴졌다. KBS에서는 한산대첩과 이순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여럿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2003년 6월 방송된 <역사스페셜 특별기획 2부작 이순신> 2부작이다. 1부인 ‘불패의 장군, 신화가 되다’에 한산대첩과 와키자카 야스하루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여기서는 한산대첩에 대한 패장의 기록으로 협판기(脇坂記)라는 문서가 인용되었다. 패전 후 해초를 먹고 견디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후손의 인터뷰로 소개되었다.(이 내용은 다음의 링크 40분 40초에 있다.)
KBS 역사스페셜 특별기획 2부작 이순신 1부 불패의 장군, 신화가 되다
방송일 : 2003년 6월 14일
https://www.youtube.com/watch?v=eUOYPir1T0M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와키자카 가문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박물관을 찾아 송화와 해초를 먹고 견디었다는 와키자카 가보(脇坂家譜)를 소개했다. 후손의 이야기가 가문의 전설이 아니라 실제 사실이었다는 기록을 보여준 것이다.
한산대첩을 다룬 또 다른 <역사스페셜>이 있다. 2011년 4월 방송된 <역사스페셜 철저분석 한산대첩>이다. 두 프로그램의 시차는 14년이나 되지만 둘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두 다큐멘터리 모두 견내량파왜병장이라는 핵심 문서를 갖고 제작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 있기가 어렵다. 인터뷰를 한 전문가들도 많이 겹친다. 하지만 둘은 같지는 않다. PD가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의 <역사스페셜 철저분석 한산대첩>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로 작성된 수군의 해상 훈련 지침서인 수조규식(水操規式)을 통해 구체적인 전투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서양 역사학계의 인식도 포함되어 있다.
역사스페셜 철저분석 한산대첩
방송일 2011년 4월 28일
https://www.youtube.com/watch?v=55-vUiO53kM
이 둘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