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모던코리아 <민족·기록 : 화>

지난 연말인 12월 27일(토)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속으로 봤다. 다큐멘터리를 실시간으로 두 편을 보다니 이런 일은 거의 없는데... 일반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다큐멘터리 시청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만큼 집중력이 필요하고 몰입해서 봐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이날은 KBS 대구총국에서 제작한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이 끝나자 <모던코리아>라는 다큐멘터리가 연속으로 방송됐다. 일부러 작정하고 보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이번 <모던코리아>는 무슨 내용인가 하고 보게 됐다. <모던코리아>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어서 무슨 아이템으로 방송할까 하는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번 <모던코리아>는 한국 미술에 대한 방송이었다. 에피소드는 2편으로 12월 27일(토)과 28일(일) 이틀 연속 방송했다. 1부는 ‘민족·기록 : 화’라는 부제였고 2부는 ‘여성-민중-미술’이라는 부제였다. 2부는 보다 말았고 1부는 끝까지 봤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1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로그램 타이틀 : 모던코리아 1부 - 민족·기록 : 화
방송일 : 2025년 12월 27일

연출 : 이태웅


다시 보기 링크 :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5-0633&program_id=PS-2025239470-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section_code=05


<모던코리아>는 KBS의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로 하나의 다큐멘터리 장르로 자리 잡았다. KBS <모던 코리아>라는 타이틀을 계속 유지하면서 매년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편성했다. 2019년 이후 2025년까지 5개의 시즌을 방송했다. 대단한 일이다.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는 쉽지 않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는 주제를 잡고 스토리를 구성한 다음 그에 맞춰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면 된다. 모자라는 부분, 촬영을 할 수 없는 내용들은 인터뷰, 컴퓨터 그래픽, 자료 영상으로 대체하면 된다. 취재 기간도 제한되어 있고 촬영분도 제한적이다.


반면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는 아카이브가 스토리를 구성할 만큼 충분히 모아 놔야 된다. 얼마만큼이 적절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아 놓은 영상 중에 쓸 만한 영상도 있을 것이고 쓸모가 없는 영상이 있을 수도 있다. 일반 다큐멘터리는 내가 취재한 내용이라 어떤 내용을 촬영했는지 안다. 몇 번 파일은 어디에서 무엇을 찍었고, 누구를 인터뷰했으며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안다.


하지만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는 얘기가 다르다. 아카이브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일단 찾기부터 해야 한다. 검색어를 입력하고 나오는 영상들을 찾아서 살펴봐야 된다. 원하는 영상이 아닌 경우도 많다. 일단 늪이다.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아카이브로 구성되는 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노동의 강도는 높아진다.

이런 장르적 특성을 지닌 다큐멘터리를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다.



모던코리아.jpg 모던코리아의 초성인 <ㅁㄷㅋㄹㅇ>으로 프로그램의 타이틀을 만들었다. 자막의 서체와 사용 역시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많이 다르다.


다시 <모던코리아>로 돌아오자.


<모던코리아>를 맨 처음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정말로 불친절한 다큐멘터리구나”. 제작자 중심의 사고방식일 수도 있고, 방송 다큐멘터리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때때로 설명이 필요하다.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 팩트를 정확히 알 필요도 있고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기도 하고 역사적 맥락을 이해가 필요할 때도 있다. <모던코리아>는 이런 것을 무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뉴스를 포함한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이 뒤섞여있다. 계속되는 자료 영상으로 그 맥락과 팩트를 알아서 이해하라고 한다. 정말 불친절하다.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는 기록을 재구성하는 기록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다큐멘터리가 기록이라는 의미인데 ' 기록을 재구성하는 기록'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 것이고, 그것이 매력이다.


이번에 방송된 <모던코리아 1부 ‘민족·기록 : 화>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학창 시절 사회 교과서나 국사 교과서에 실려있던 그림들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교과서에는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그린 그림들이 교과서에 실려있었다. 그 그림들을 민족기록화라고 한다.


이종상-후연정벌(광개토대왕)-1975s.jpg 민족기록화 : 후연정벌(광개토대왕) - 이종상 화백 1975년 / 사진 출처 : 민족기록화 가상 미술관 https://dh.aks.ac.kr/Encyves/wiki/index


<모던코리아 1부 ‘민족·기록 : 화>는 민족기록화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누가 참여했으며, 민족기록화를 그린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민족기록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살펴보는 다큐멘터리다. ‘민족기록화’ 사업은 박정희 시대의 국가사업이었다. 민족의 자긍심을 살리려는 대형 그림을 제작하는 명분으로 당대의 화가들이 참여했다. 고대에서 4 공화국에 이르는 시기를 초대형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이었다. 3 공화국의 실세였던 김종필과 인연이 있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었던 박광진 화백이 이 사업을 주도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 프로그램은 불친절하다. 서브타이틀 ‘민족기록화’를 왜 ‘민족·기록 : 화’라고 했는지는 설명이 없다. 나는 왜 서브타이틀을 평범하게 하지 않았는가 궁금했다.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인데 알 수가 없다. 정 궁금하면 시청자가 알아서 머리를 굴려 스스로 답을 구하라고 하는 것 같다.


<모던코리아>가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영상 문법이다. 30년간 오소독스 한 편집 문법에 젖어있어 그런지 <모던코리아>의 편집은 낯설다. 아마도 ‘낯설게 하기’가 <모던코리아>의 기획 의도일 것이고 성공한 전략이라고 보인다.


방송 프로그램은 한 번 놓치면 앞선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고, 내용이 어렵고 재미가 없으면 채널이 돌아간다. <모던 코리아>는 그런 면에서 불친절하다. 제작자는 잘 알겠지만 시청자는 맥락을 잘 알 수 없는 영상 자료가 많다고 느낄 때도 많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자료도 있지만 드라마도 있다. 이런 내용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 흐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료로만 구성했던 초창기의 모던코리아와는 많이 달라진 면모였다. 불친절함이 <모던코리아>의 특징인데 인터뷰를 통해 ‘친절하게’ 스토리를 모아간 것이 과거와 달라진 면으로 보였다.


이번 모던 코리아는 과거의 <모던코리아>와는 달리 박광진 화백의 인터뷰를 많이 첨부했고, 민족기록화 사업에 참여했던 화백들의 자식들의 인터뷰도 많이 포함시켰다. 박광진 화백은 90의 나이였지만 생생한 기억으로 민족기록화 사업에 대해 인터뷰했다.


다행히도 민족기록화 사업을 주도한 박광진 화백의 인터뷰로 민족기록화 사업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민족기록화 사업은 3 공화국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사업으로 보인다. 정부가 나서서 민족의 자긍심을 키우는 대형 그림을 만들었다. 그 그림은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과서에 실려 학생들의 교육에도 사용되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예술... 그리 낯설지 않다. 사실 예술의 주요 고객은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들이 그림을 주문하고 즐겼다. 우리가 아는 많은 그림들이 그렇다. 이탈리아에서 만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그림의 주문자는 교황이었다. 그림의 한 구석에 교황의 얼굴을 그려 넣어 주문자를 드러낸다. 도시 국가의 군주들도 주요 주문자였다. 교황이 그림을 주문한 목적은 자신의 권력을 그림으로 드러내려는 프로파간다이다.


민족기록화 사업도 그런 차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시대, 즉 3 공화국과 4 공화국의 경제발전을 담았다. 표현하기에 따라 ‘관제 미술’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림이었다. 3선 개헌을 넘어 유신헌법 시대의 독재자의 치적을 그려내는 미술이었으니 이러한 호칭이 어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540px-박득순-현대조선소-1973s.jpg 민족기록화 :현대중공업 -박득순 화백 1973년 사진 출처 : 민족기록화 가상 미술관 https://dh.aks.ac.kr/Encyves/wiki/index.p


대학 시절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라는 개념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가 제시한 개념이다. 군대나 경찰 같은 실제적인 물리력을 가진 억압 기구가 아니라 학교, 가족, 종교, 대중매체, 문화기관 등이 이데올로기와 '동의'를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산해 지배 체제에 순응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에 이르는 기간 동안은 두 개의 억압 기구가 독재체제를 강화하는데 이용됐다. 경찰이 그랬고, KBS로 대표되는 방송이 그랬다. ‘민족기록화’ 사업도 크게 보면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국가 권력이 주문한 예술이라고 해서 어용 미술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그림을 보고 어용 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들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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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Louis David -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1807) /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아이러니한 것은 <모던코리아>에서는 영상이 촬영 당시의 목적과는 다르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카이브 다큐멘터리가 갖는 특징 중의 하나다. 영상은 중립적이거나 비판적인 내용으로 사용된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지나온 시대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영상자료로 보는 한국현대사라는 의미로 살펴볼 때 기획의도가 잘 구현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적을 앞세우고 싶어 했던 권력의 모습과 당대를 대표했던 화가들의 고민들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잘 그려냈다. KBS 대구총국의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과 <모던코리아>로 2025년 연말을 잘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를 곧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