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다운로드'가 아니라 '진화'다

공자와 파스칼, 그리고 진화론적 공부법

by 고도

창조는 '무(無)'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천재를 오해한다. 그들이 허공에서 번개 같은 영감을 받아 무언가를 창조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내가 깨달은 진실은 다르다.

창의성은 '발명(Creation)'이 아니라 '연결(Connection)'이다. 천재란 남들보다 빠르게 기존 지식을 흡수하고, 그것들을 잇는 사람들일 뿐이다. 나는 이 학습의 원리를 진화론에서 찾았다.


변이(Variation): 일단 많이 쏟아부어라

진화가 일어나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유전자 풀(Gene Pool)'이 넓어야 하고, 다양한 '변이'가 존재해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입력값이 없으면 출력값도 없다.

공자는 《논어》 술이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이 듣고서 그중 취할 만한 것을 배우며(다문, 택기선자이종지), 많이 보고 마음속에 기억하는 것(다견이식지), 이것이 차선의 지혜다."

공자조차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아는 천재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다문(多聞)'하고 '다견(多見)'했다. 이것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다. 내 뇌라는 생태계에 최대한 다양한 생각의 씨앗을 뿌려 변이의 가능성을 높이는 작업이다. 무작위로 쏟아부은 잡다한 지식들이 진화의 재료가 된다.


생존경쟁(Struggle): 뇌는 '사냥'을 원한다

왜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공부는 지루할까? 뇌 안에서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지식은 내 머릿속에서 상반된 의견들이 충돌하고 싸우는 생존경쟁을 거쳐야 한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이런 본성을 정확히 꿰뚫었다.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싸움 그 자체를 즐긴다. 발견된 진리(토끼)를 바라보는 것은 달갑지 않다. 우리는 사물의 추구가 아니라, 사물의 '추구'를 추구한다."


우리는 결과를 원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뇌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은 모르는 것을 알려고 끙끙대며 '사냥'할 때다. 이질적인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서 치고받고 싸우게 둬야 한다. 그 치열한 논쟁 끝에 살아남은 지식(적자생존)만이 진짜 내 것이 된다. 이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작위적이지 않은 공부다.


시간은 줄일 수 없는 상수다

나는 효율성을 숭배하던 엔지니어였다. 늘 '어떻게 시간을 단축할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진화'와 '공부'라는 생명 활동에는 압축할 수 없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태어나려면 10달이 걸리듯, 지식이 지혜로 진화하는 데는 절대적인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공부는 작위적으로 할 수 없다. 여유를 두고 끊임없이 시간을 투여하는 것. 그 지루함을 견디는 힘만이 유일한 지름길이다.


결론: 나는 사냥을 나간다

진화론적 공부법이란 거창한 기술이 아니다. 공자처럼 다양하게 입력하고, 파스칼처럼 치열하게 싸우게 두며, 다윈의 자연선택이 일어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안식년인 지금, 나는 결과물(토끼)을 얻기 위해 조바심 내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이 즐거운 '지식의 대전투' 자체를 즐기고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책을 펴고 사냥을 나간다. 잡히면 좋고, 못 잡아도 그만이다. 나는 이미 사냥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이전 13화공자와 함께한 안식년:군자를 향한 서툰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