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일부터 시작했으니 날을 세기는 쉽다.
처음 안식년을 시작했을 때 건강도 정신도 좋지 않았다. 수시로 찾아오는 공황감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나는 2025년 4월부터 신경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지럼증 때문이었다. 자율신경계 이상, 기립성 빈맥 증후군(POTS)이었다. 자율신경계가 제 기능을 못 해 앉았다 일어서는 것 같은 순간적인 외부 충격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증상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나보다 힘든 사람이 훨씬 많다고 누군가 말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걸 해결하려 했을 텐데.
"회사가 싫고. 꼼짝할 힘조차 나지 않는다."
이틀 뒤, 나는 결심했다.
"1년간 안식년을 갖는다. 연간 생활비는 5,000만 원으로 제한한다.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다."
우선 멈추는 게 필요했다. 내가 하던 모든 것을 멈추고 원인을 파악해야 했다.
안식년을 결심하게 된 데는 찰리 멍거도 한몫했다. 그의 책을 읽다가 내 마음에 깊이 박힌 말이 있었다.
"살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독서하면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파스칼의 팡세 한 대목(269-139)을 찰리 멍거가 주목한 것을 보고 깊이 생각했다.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사실, 즉 그가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른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살아가기에 충분한 재물을 가진 사람이 만약 자기 집에 기꺼이 머물 수만 있다면 거기서 나와 바다로 나아가거나 요새를 공격하러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 사람들이 찾는 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불행한 조건을 생각하게 하는 맥빠지고 평온한 관습적 삶이 아니고 또 전쟁의 위험이나 직무의 노고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에서 마음을 돌아서게 하고 우리의 기분을 전환시키는 소란, 바로 이것이다."
이 구절 전체를 인용하고 싶지만 너무 길다. 독자 여러분께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파스칼에 따르면 내가 불행한 이유는 단 하나다. 집에 즐겁게 머물 수 없어 밖으로 나가 수많은 소란 속에 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찰리 멍거는 하루 종일 집에서 생각하고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며 수십 년간의 수익률로 증명하지 않았는가. 문득 그 삶이 궁금해졌다. 나도 언젠가 은퇴할 것이다. 그 삶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해외여행도 안 하고, 버킷리스트 도전도 안 한다. 가끔 주말에 나가는 것 말고는 집에 머물며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고, 운동했다.
한 달간의 소감은 "매우 만족"이다. 한 달 전의 어지럽고 불쾌한 공황감은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고, 끊임없이 괴롭혔던 브레인 포그도 사라졌다. 생각이 또렷해지고 마음속에서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음악 감상이 되고, 소설책이 읽힌다.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기 편해졌고, 화가 줄어들었다.
한 달 동안 여러 책을 통해 수많은 지혜자를 만났다. 에픽테토스에게서 삶의 한계를, 세네카에게서 시간의 소중함을, 칼 포퍼에게서 합리주의자의 삶과 과학적 지식의 성장을, 쇼펜하우어에게서 뺄셈의 지혜를 배웠다. 공자에게서 배우고 익히는 태도를, 노자에게서 무위자연을 배웠다. 마션을 읽으며 화성에 다녀오고, 1984를 읽으며 전체주의 런던에 다녀왔다. 집에만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읽고 배운 시간이라 자부한다.
그런데 읽고 깨달은 것 위주로 쓰다 보니 가정 경제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았다. 아직 첫 달밖에 지나지 않아 지난달 월급으로 생활한 게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운 좋게도 지난해 성과급이 나와 오히려 풍족한 한 달이었다. 본격적인 돈 고민은 앞으로 시작될 것 같다.
나는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해 세 달간 250만 원씩, 그다음 3개월은 200만 원씩 받는다. 회사 다닐 때는 한 달에 평균 400만 원 후반대를 썼다. 안식년을 시작하며 300만 원으로 지출을 줄였다. 방법은 간단하다. 밖에서 사 먹지 않고, 배달시키지 않고,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서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다.
300만 원 지출에 250만 원이 들어오니 50만 원이 부족하다. 그 돈은 성과급으로 버틸 생각이다. 그래도 부족하면 주식 일부를 팔면 된다. 운이 좋게도 최근 한국 주식이 역사상 최고가를 달리고 있다. 나는 미국 주식은 거의 하지 않고 한국 주식만 갖고 있다. 덕분에 2025년 초 순자산 대비 지금 순자산은 거의 4배에 육박한다.
2025년 연초에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괴로워 찰리 멍거 책을 샀다. 내가 생각한 워렌 버핏과 찰리 멍거는 가치투자와 분산투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연구해보니 그들은 오히려 집중 투자자였다. 자기가 아는 모든 기회 중 가장 좋은 기회에 집중하는 것. 워렌 버핏이 분산투자를 하는 유일한 이유는 규모가 너무 커서 한 번에 넣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가 훨씬 적은 찰리 멍거는 실제로 버크셔 해서웨이를 제외하면 코스트코에 집중 투자했다.
찰리멍거는 드물게 오는 확실한 좋은 기회에 "크게 베팅"하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분산투자는 미친짓"이라고 했다.
2025년 초, 2024년 말 '엄청난 사건' 때문에 주식시장이 바닥을 찍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첫 번째로 운이 좋았다. 당시 내 주식이 다른 주식보다 빨리 올라왔다. 시장은 바닥인데 내 주식은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당시 가장 저평가라 생각한 주식에 과감히 집중했다. 운 좋게도 그 주식이 꽤 올랐다. 그러다 훨씬 더 좋은 기회를 발견하고 다시 집중했다. 또 올랐다. 그 주식은 여전히 갖고 있다. 아직 더 좋은 기회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주식 평가액이 늘어나 안식년 선택에 큰 도움이 됐다.
파스칼의 말대로 "살아가기에 충분한 재물을 가진 사람이 만약 자기 집에 기꺼이 머물 수만 있다면 거기서 나와 바다로 나아가거나 요새를 공격하러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의 조건에는 '충분한 재물'이 있다. 나는 그 수준을 금융자산 3억 정도라 생각한다. 그 정도면 방 안에서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그 규모를 넘긴 시점에 안식년을 생각했고, 지금 더 늘어나 있음에 감사한다.
이건 내적 동기만 설명하다 보니 항상 언급하길 놓치는 사실이다. 아내는 내가 쉬고 싶다고 할 때 한 번도 우려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늘 "때려쳐!"라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굶겨 죽이기야 하겠어? 정 안 되면 내가 알바라도 갈게"라고 말했다. 이런 명랑함이 내게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아내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이제 안식년이 5개월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세네카가 이야기한 대로 나는 이 시간들을 "언제 멈추어버릴지 모르는 거센 물살에서 물을 긷는 것처럼" 절박하게 즐기려 한다.